필로테아 님, 어느 작가는 흠집 없는 살구씨에 글자를 새겨 땅에 심으면, 그 나무에서 열린 살구에는 그 글자가 새겨진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자신을 새롭게 하려고 할 때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비롯한 외모를 먼저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면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요엘 2,12), "너희 마음을 나에게 다오." (잠언 23,26)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은 행위의 원천이고 행위는 마음의 반영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짝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영혼에게 "인장印章처럼 나를 너의 가슴에, 인장처럼 나를 너의 팔에 지녀라."(아가 8,6참조) 하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그렇습니다. 예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간작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그의 모든 외적 행위에서 이를 드러낼 것입니다. |
필로테아 님, 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대의 마음에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을 새겨 주려고 합니다. 살구씨에 새긴 글자가 열매에도 박힌다고 표현하였듯이, 그대의 행위에는 구원의 글자가 각인될 것입니다.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그대 마음속에 사시면 그분은 그대의 모든 행위 안에서 사시며, 그대 몸의 곳곳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도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20)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신심과 더불어 외적 행위의 근원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두세 가지 주의 해야 할 점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그대가 금식을 하려 한다면, 이따금 성교회에서 규정한 날이 아닌 다른 날에도 금식을 하는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식의 효과는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육욕을 억제하며 덕을 닦게 함으로써 하늘나라의 공을 쌓는 것입니다.
또한 금식재 외에 식탐을 절제하고 온갖 육체의 감각을 성령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비록 실제로 금식을 하는 날이 적어도 마귀는 우리가 금식을 할 수 있음을 알고 우리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금식을 한 날이므로, 그대도 영적 지도 사제의 판단에 따라 이날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예로니모 성인은 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특히 젊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과도하게 금식을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어린 당나귀가 굶주리면 도중에 지쳐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듯이 젊은이들도 과도하게 금식을 하면 오히려 제멋대로 굴기 쉽습니다."하고 말했는데, 나도 성인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너무 자주 금식을 하게 하면 금식이 끝나자마자 몸을 보신한다는 이유로 식탐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너무 살이 찌거나 너무 마른 사슴은 위험이 닥쳤을 때 재빨리 피신할 수 없듯이, 우리도 과식이나 금식을 몸이 허역한 상태애서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너무 살이 찌거나 빠지면 의지가 약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용을 잃고 과도한 금식이나 매질, 고복 착용 등의 고행을 하면서 귀중한 세월을 헛되이 보냅니다.
베르나도 성인도 과도하게 고행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가혹할 정도로 몸을 혹사하고 나면 나중에 몸을 돌보느라그만큼 더 애를 써야만 합니다. 그것보다 처음부터 자기 상황에 알맞은 수행을 하는 것이 현명한 수행 방법일 것입니다. |
그대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일해야 한다면 금식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성교회의 판단입니다. 성교회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으로 규정된 금식재까지도 면제해 주고 있습니다.
금식을 하는 사람보다 병자를 돌보고 죄수를 방문하며 고해성사를 주고 강론을 하며 가난한 이를 돕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고행이라도 전자는 자신만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에 후자는 이웃 사랑을 위해 여러가지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미래를 위해 적당히 체력을 보존해 두는 것이 현재의 일에 필요 이상의 체력을 소모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체력이 있으면 필요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일단 소모된 힘은 필요할 때에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주는 음식을 먹어라." (루카 10,8) 하신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나는 일부러 제일 맛없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보다 식성에 맞건 맞지 않건 가리지 않고, 차려진 대로 먹는 것이 한층 더 바람직한 행위라고 믿습니다.
일부러 맛없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 큰 고행처럼 보이겠지만, 가리지 않고 차려진 대로 먹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의지를 꺽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를 다스리면 사람들의 눈에 유별나게 보이지도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으며, 예의를 지킬 수도 있습니다.
고행을 이유로 일부러 육류 음식을 거부하고 다른 요리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사람, 접시마다 검사하고 잔소리를 하며 점잔을 빼는 사람의 고행은 경멸스러운 행동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