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ise the Lord; 여호와를 찬양하라
- 말씀: 시150: 6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 할렐루야
- 주제: 모든 상황에서 찬양하라는 외침은 어려운 시기에 당신에게 어떻게 울려 퍼집니까?
How does the call for praise in all circumstances resonate with you in times of difficulty?
- 어의: 할렐루야(Halleluj(y)ah)는 히브리어 단어인 הַלְּלוּיָהּ 의 음차(표준 히브리어: Halləluya, 티베리 히브리어: Halləlûyāh)인데, 이 단어는 '찬양하다', '영광스럽게 하다', '부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의 2인칭 복수 명령형인 הַלְּלוּ(hallelu)와 'YHWH'의 축약형인 יָהּ(Yah)의 합성단어이다. "'Yah'를 찬양하라"로 직역할 수 있다.
라틴어 형태인 알렐루야(Alleluia)는 또 다시 그리스어의 음차인 알릴루이아(Αλληλούια)에서 유래했다.
영어권에서는 할렐루야를 주로 "Praise (ye) the LORD."로 번역한다. NIV 성경에서는 "Praise the Lord."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는 할렐루야를 사용하고 있으며, 개신교의 예배나, 일반적인 생활에서도 할렐루야라는 말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 우리는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이고 유일하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흙으로 빗져 호흡을 불어넣어주심으로 사람, 아담을 창조하심으로서,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1원리가 된다.
이사야 25:1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라고 고백합니다.
사24장에 이어 27장까지 마지막 날 심판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24장은 세계적으로 임하는 심판에 대해서 그리고 25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받을 자들이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해당 당사자들에게는 절망스럽고 죽음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므로 구원받은 백성들은 끝까지 인내하며 싸운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승리의 날입니다.
할렐루야~~~~ 찬양을 부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구원받은 자들은 찬양하게 될 터인데, 그 찬양은 온 우주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이러한 승리의 찬양 소리가 여러 번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계7:12.
심판의 기준과 방법은,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유하신 성품에 따라 여태 가만히 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심판의 기준과 방법 그리고 그 행사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되고 일사불란하게 각색되어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셔야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Symphony of Praise(찬양의 교향곡) 기념
시편 150편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왜 찬양하든, 어떻게 찬양하든, 우리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예배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보편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선언임을 상기시키며 시편을 절정으로 마무리합니다. 숨을 쉴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이 권고는 시대를 초월하여 울려 퍼집니다.
1-2절: 찬양의 장소와 이유
시편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성소와 강력한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그러한 숭배의 이유로 그분의 권능과 탁월한 위대하심을 강조합니다.
3-5절: 찬양의 방법
시편 기자는 트럼펫, 수금, 거문고, 탬버린, 현악기, 파이프, 심벌즈 등 다양한 악기를 통해 찬양을 표현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음악의 사용은 예배에 모든 감각이 전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열정을 상징합니다.
6절: 찬양하는 자
마지막 구절은 호흡이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찬양을 부르짖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가 모든 경계와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의무이자 특권임을 확증합니다.
맺음:
시편 150편은 시편의 웅장한 피날레로서, 하나님을 향한 보편적인 찬양을 향한 기쁨과 울림의 외침입니다. 시편은 단순히 찬양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왜,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명시하면서 찬양을 명령합니다. 이 시편은 신성과 인간성의 독특한 조화를 제시하는 시편으로, 영적인 감정이 지상의 도구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작정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서 17권이 모두 다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약에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얼마나 자세히 장차 될 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열쇠는 ‘장차 될 일’이라는 말씀이 키입니다. 계1:19
예수님 초림이 성경에 360번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재림에 대해서는 1560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의 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이것처럼 미련하고 무지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심판은 단순한 세상의 멸망이 아닙니다.
세상의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진실하신 속성이 드러나는 시작과 종결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세상의 악들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진실하심 앞에, 거짓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