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8일(화) 이사야 40:12-26 찬송 527장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개역 개정)
- 창조자 하나님의 권능 선포 -
어제 말씀(1-11절)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포로 해방의 선언과 함께
귀환한 백성들을 다스릴 새 왕으로서의 하나님 입성을 맞을 준비를 촉구한 데 이어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는 새 통치자 하나님에 대해 장엄하게 소개하고 있다.
즉 본문의 내용을 보면, 먼저 12-17절은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어떤 인간 모사나 강력한 세상 나라에 비할 바 없는
그 지혜와 권능이 탁월하신 분이시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 18-26절은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한낱 생명없는 금속이나
나무 조각으로 만든 우상과 비기는 어리석은 자들을 호령하여 책망하면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과 절대성(絶對性)을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이같은 열거법 형식의 장엄한 소개는
선민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호4:6)이라는 그의 사상의 반영인 듯하다
실로 선민 이스라엘에게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엄청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
그리고 죄악 가운데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죄인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야말로
구원받은 자로서의 새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 할 것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3:18)고 한 사도 베드로의 권면에
우리는 충심으로 귀기울여야 한다.
26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여기서 ‘눈을 높이 들라’는 것은 하늘을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진리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늘은 땅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땅이
세속적인 것, 일시적인 것, 유한한 것, 불완전한 것을 상징한다면,
하늘은 초월적인 것, 무한한 것,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을 상징한다.
그러한 점에서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보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
근본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해되는 곳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존재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은 이 땅에 대하여 초월적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종종 소개된다.
따라서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응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알고자 한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눈을 높이 들라’는 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의미이다.
실로 우리 인간은 눈을 높이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합당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직립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원숭이나 침팬지 등 소위 영장류(靈長類)로 분류되는 동물들이
간혹 직립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는 네 발로 기어다닌다.
그리하여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동물들은 땅을 보며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직립을 하기 때문에 땅보다는 하늘을 보는 것이 더 쉽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며 살도록 지으셨다는 것을 시사하여 준다.
사실 인간은 땅을 바라볼 때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언제 땅을 바라보게 되는가?
낙심되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때이다.
사업에 실패하였을 때나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
그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울 때이다.
이것은 인간이 땅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여 준다.
우리는 땅을 바라보며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되어 고개를 쳐들 수 없으며
하늘을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악을 행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비록 발은 땅에 두고 살아간다고 해도 눈만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
또 하늘을 떳떳하게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악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 사도는 권면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1-2)고 하였다.
우리는 이 권면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늘 하늘을 바라보는 삶,
하늘을 보기에 합당한 당당하고 의연한 삶, 소망에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 (잠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