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자책골
황보영락
안방 출입문 위에 걸쳐진 회초리가 있었다. 모든 식구들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고개를 들면 그 회초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내 자리였다. 싸리나무껍질을 벗겨 깔끔하게 다듬어놓은 회초리를 바라보며 밥을 먹을 때면 밥맛까지 좋았다. 한 달 정도 그 회초리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회초리가 애물단지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지금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얼마 전 멕시코전에 골을 허용한 뒤에 땅을 치는 선수의 모습을 보니 내 유년의 자책골이 생각난다.
예닐곱 살 정도 되는 봄날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형과 다툼이 있었다. 그러다가 형으로부터 몇 대를 맞았다. 나는 울면서 형이 때린다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울었다. 가까이 있던 아버지가 오셔서
“어린 동생을 그런 방식으로 때리면 되느냐? 나잇값을 해야지.”
“영락아! 밖에 나가서 회초리를 가져와라”라고 말씀하셨다. 내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아버지께서 내 편을 들어주니 기세 등등 했다. 밖으로 나가서 회초리를 찾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급한 김에 땔감이 쌓여있는 나뭇더미로 가서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형을 한 대 때리니까 마른 나뭇가지가 너무 쉽게 부러져 버렸다. 이번 기회에 나를 괴롭힌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날 점심을 먹고 낫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곧게 자란 싸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이 정도의 회초리는 되어야 몇 대를 때려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싸리나무를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그 회초리의 껍질을 벗기고 정성껏 다듬어서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아부지요. 형을 때려 줄 멋진 회초리 가져왔어요”
아버지께서 화답하셨다.
“그래! 잘 만들어놨네. 요놈들 이제 서로 싸우거나 동생을 괴롭히면 저 회초리로 때릴 것이다.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거라”
아버지는 그 회초리를 출입문 위에 올려 두셨다. 맞은편에서 회초리를 등지고 밥을 먹는 형은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그 회초리가 올려져 있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통쾌했다. 꼭 맛있는 음식을 보거나 먹어봐야만 침이 잘 분비되는 것만이 아니었다. 뇌 속에서 행복 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니 싫어하는 꽁보리밥에다 보잘것없는 반찬을 먹어도 맛이 있었다.
아버지의 ‘동생 보호 선언’ 이후에는 형의 부당한 간섭은 없었다. 나를 지켜주는 회초리는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 동생이 문제였다. 엄마 젖을 동생한테 빼앗기고, 뒷전으로 밀려난 이후로 동생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이기심으로 힘이 약한 동생을 윽박질렀고, 조금의 다툼 뒤에 동생이 큰 소리로 울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소란을 일으킨 나를 나무랐다. 형처럼 나도 동생을 괴롭힌 대가를 받아야 했다. 내 손바닥을 내가 깔끔하게 다듬어놓은 그 회초리로 맞았다. 나를 지켜주는 ‘전설의 검’이 나의 행동을 제어하는 체벌 도구로 변해버린 슬픈 순간이었다.
“이놈 회초리 하나는 잘 만들어놨네!”
아버지의 이 말씀이 나의 속을 뒤집어 놨다. 형은 내가 자책골을 넣고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그 회초리를 없애버릴 궁리를 했다. 당장 치워버리면 아버지께 금방 발각되고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서서히 표시 나지 않게 치워야 했다. 부모님은 일하러 가셨고, 형도 학교로 간 조용한 시간을 골라서 회초리를 올려져 있는 곳에서 회초리를 벽과 장롱 사이의 방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다. 아버지께서 회초리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면 “어~ 저기 떨어져 있네요.”라고 둘러댈 작정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한두 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싸우지 않았으니 회초리를 쳐다볼 일도 없었고 아버지께서도 회초리를 찾지 않았다. 없어진 회초리의 위치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회초리를 더 안쪽으로 밀어놓고 다시 한두 주를 기다린 다음에 그 회초리를 아궁이 불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한 달 정도 식사를 할 때마다 눈에 띄어서 나의 얕은 생각을 후회하게 만들고, 나의 체면을 깎아내리던 그 분노의 회초리가 사라져 버린 것만으로도 한 달 동안 막혀있던 체증이 시원하게 사라졌다.
예닐곱 살 무렵의 자책골을 넣었던 행동과 환갑이 지난 할아버지의 나잇값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의 행동은 유치한 어린아이의 행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예순 살이 넘어서도 당장 감정에 사로잡혀 사소한 다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나 역시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직도 인격적인 수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자책해 본다. 공자는 예순의 나이를 이순(理順)이라고 했다.
이제는 어떤 비판이나 충고를 듣더라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남의 말이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행동이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힘을 보태주는 사람, 나잇값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2026. 6. 26
첫댓글 나이에 걸 맞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조금은 할 수 있습니다. 나잇값 일생의 과제입니다.
철없던 어린시절의 행동을 재미있는 서사로 풀어 놓으셨네요
그리고 나이든 오늘의 행동을 어린시절과 대비시켜 나잇값을 정의하셨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부지요 . 형을 때려줄 멋진 회초리 가져왔어요"
어린마음에 얼마나 깜직한 말인가요?
지금은 어느덧 이순 하고도 반을 훌쩍와버린 나잇값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화장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