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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화 무에타이 원문보기 글쓴이: 김대곤
77년생인 남삭노이에게는 세가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수랏트 싸니였는데, 그의 부모님은 무슬림이었고 아이를 모하무드 챠이야마라고 불렀다고합니다. 남삭노이는 9세때 무에타이에 입문했으며, 어릴적 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아 10대때 프로로 전향하면서 '남삭노이'라는 링네임을 받게되었다고 하죠. (남삭노이는 남삭 2세 라는 의미고, 남삭은 과거의 전설적인 낙무아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남삭노이는 머리에 쓰고있는 아라비아풍의 카피예와 아름다운 와이크루로 유명하다.
태국 남부 출신이었던 남삭노이는 트레이너의 인도에 의해 방콕으로 진출했습니다. '세계 입식의 수도'라 할 방콕에서도 그의 능력은 금방 눈에 뜨였던것 같습니다. 남삭노이는 그 당시 막 문호를 개방한 포 푸라묵 도장(부아카우는 남삭노이가 포 푸라묵 도장에 있을 때 남삭노이를 존경하는 마음에 포 푸라묵의 문하에 들었다고 전해짐)에서 둥지를 틀었고 출세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1994년경 부터 남삭노이는 업계에서 '차세대 슈퍼스타'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룸피니 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하고 연승을 거듭하던 96년, 남삭노이는 파이터 오브 더 이어로 선정 됩니다. (이 타이틀은 태국 무에타이계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죠. 메이저리그 야구에서의 MVP나 축구의 발롱도르같은 상이라고 합니다.)
99년, 남삭노이는 룸피니 슈퍼 페더급 챔피언 랑남문 소 수말리에게 도전해 3라운드에 팔굽치기의 일격으로 챔피언을 KO시키면서 두번째 룸피니 벨트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남삭노이는 다시한번 파이터 오브더 이어로 선정되죠. (그러나, 이 파이터 오브더 이어 시상식의 주최단체가 이번에는 태국 스포츠 협회 (sports authority of Thailand)로 되어있네요. 원래 이 시상은 태국 스포츠 기자 협회 (sportswriters association of Thailand) 에서 시상하는것이었는데, 시상의 주최가 바뀐것인지, 혹은 또다른 하나의 시상식이 생겨 시상의 인플레이션이 생기기 시작한것인지는 제가 과문하여 정확히 알지를 못합니다.
2000년, 룸피니 라이트급 챔피언 카올란 카오위칫이 남삭노이의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삭노이는 테크닉의 우세를 바탕으로 이 경기를 완봉으로 이끌면서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남삭노이가 룸피니 3체급을 달성한것입니다.
Spero Spera 님께서 댓글로 남겨주신 카올란 카오위칫에 대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2000 년도에 < 남삭노이 > 와 대결했던 룸피니 라이트급 챔피언 < 카올란 카오위칫 > ... K-1 WORLD MAX 초대 대회에 출전해 결승전까지 진출해서 < 알버트 크라우스 > 의 펀치에 KO 당했던 선수 ... MAX 출전 당시 우승 확률 1000 % 로 평가받았으나, 무에타이의 특장기라 할 수 있는 엘보우 공격이 봉쇄된 K-1 룰에서는 아무래도 복싱이 강한 선수가 유리하기 마련 ... 게다가 크라우스가 워낙 하드 펀처였으니 ...
남삭노이는 룸피니 라이트급 타이틀을 2006년까지 방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소속도장과의 갈등이 이유가 되어 타이틀을 박탈당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단이탈이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남삭노이의 상대편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도박계가 남삭노이를 보이콧 한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디젤노이에 이어 남삭노이도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네요.
남삭노이는 상위체급의 선수들과 체중차에 관계없이 대전했던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디젤노이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하죠, 국제전에서는 무려 10여 kg 이상의 체중차도 괘념치 않았을 만큼 담대한 파이터였습니다.
남삭노이의 특징은 회피와 방어, 그리고 공수전환이었습니다. 특기를 따로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격기들의 퀄리티가 우수했지만 그중에서도 팔꿈치 공격이 특히 출중했습니다. 그는 상대를 되게 못하는 선수처럼 보이게 만드는 특수능력을 가진 슈퍼 슈퍼 테크니션이었습니다.
남삭노이 하이라이트
70년생인 쌈코역시 룸피니 3체급을 달성한 선수입니다. 그는 주니어 페더급, 주니어 라이트급, 라이트급에서 룸피니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두 선수의 전성기가 겹쳤고, 둘 모두 3체급 달성자였기 때문에 이 두 선수의 라이벌리즘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모으게 됩니다. 80년대에는 디젤노이와 사마트가 메가 파이트를 벌였다면, 90년대말-2000년대 초에는 남삭노이-쌈코의 격돌이 무에타이계를 풍성하게 만든것이죠. 그렇지만, 이 시기의 무에타이는 80년대에 비해 다소 내리막인지라 남삭노이-쌈코가 받은 대전료 규모는 그리 크지 못했다고 합니다.
쌈코의 레프트 킥, 막아도 팔이 부러진다는 패도적인 기술이다.
이 두선수는 총 다섯차례 슈퍼 파이트로 대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둘의 대결영상은 웹상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저도 못봤습니다. 이 둘의 대전이 정확히 언제, 언제였고 어떤 승부가 이루어 졌으며 결과가 어땠는지,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거의 구비문학 수준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 중 검색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한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2년전 두 선수의 이름을 처음으로 한국에 알렸을 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혼자 용쓴다라고 핀잔하던 분이 생각납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혼자 침튀기며 떠들어봤자라는 이야기였을듯...그러나 현재 각종 싸이트나 카페에서 두 선수의 이름이 회자되는것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무에타이에 대한 인식이 확대 되었음에 작은 기쁨을 느낍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는 루머들이 떠돌기도 하고, K-1의 선수들과 비교되며 토론의 주제로까지 옮겨지는것을 볼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내에서 무에타이의 인지도가 높아진것이라 생각하며 기분좋을 뿐입니다. 단지 무에타이에 중독되어 있는 저로써는 말입니다.
오늘은 두선수의 다른 이야기는 접어두고, 둘만의 애증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생각없이 편하게 떠들어 보겠습니다.
쌈코와 남삭노이의 캐리어에 대해서는 이미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여 생략하겠습니다.두 선수 사이의 전적은 정확히 양자 모두 2승 2패 1무 입니다.
두 선수간의 첫 대결은 1999년으로 당시 이미 절정에 기량을 과시하던 전성기의 쌈코와 쥬니어 밴텀급부터 룸피니와 라차담넌의 모든 강자들을 차례로 꺽으며 정상을 향해 돌진하던 남삭노이의 대결 구도로로써 그야말로 무에타이 매니아들에게는 꿈의 빅매치였습니다.
그 누구도 승부를 예상치 못했던 경기의 결과는 5R 남삭노이의 판정승이었습니다.
기술에서 웃도는 남삭노이의 원사이드한 경기였고 일방적인 경기 탓에 쌈코는 명성에 금이 가게되었지요.
반면에 쌈코를 제압한 여세를 몰아서, 남삭노이는 룸피니 쥬니어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전설의 챔프, '람남문'선수를 3R 면도날같은 팔굽치기로 KO 시키면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서 랏담넌계 최강자였으며 당시 99년 연간 무에타이 MVP 경쟁상대였던 쎈차이에게도 승리하며 자신의 최고 전성기를 활짝 열었습니다.
이후 2000년에 재대결 하게된 쌈코와 남삭노이....
결과는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남삭노이의 기술과 전술에 휘말린 쌈코의 무기력한 경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체력과 정신력도 바닥나서 경기할 의사 없이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다가 주심의 권한으로 4라운드에 링에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1무효 시합이었습니다. 무승부하고는 다른 개념의...
무에타이 슈퍼스타이자 당대의 전설로 자리해가던 쌈코에게 추방패라는것은 일생일대의 치욕이었습니다.
더불어 도박사들의 사랑이 절실한 태국 낙무아이에게 추방패라는것은 선수생명에까지 위협을 주는것이었기에...쌈코에게 남삭노이는 어떻게해서든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2001
경기 후 남삭노이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엄청난 때카의 데미지 탓에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원시적인 무에타이의 힘을 보여준 쌈코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재활에 힘을 쏟아부은 남삭노이가 리벤지를 시도하지만, 전경기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남았던 탓인지....완전연소하지 못한 경기를 선보이면서 쌈코에게 다시금 판정패 하게 됩니다.
남삭노이의 매니져 말에 의하면.....'두려워 했다,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 했습니다.
누구라도 전성기의 쌈코의 '빅' 킥에 의해 허벅지가 절단 났었다면.....두려웠겠지요.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아 강자들과의 대결을 승리로 장식하던 쌈코와 충격의 2연패를 당했던 남삭노이의 다섯번째 대결은 2002년에 펼쳐지고...이번엔 당시 룸피니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을 갖고 있던 남삭노이에 대한 쌈코의 타이틀 도전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미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슈퍼스타간의 경기였던 만큼 승부가 중요했는데, 결과는 이전의 연패로 절치부심한 남삭노이의 절실함이 힘을 발휘!..
남삭노이의 5라운드 판정 승리였습니다.
이후 두 선수 간의 재대결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었지만, 각각 고바야시에게 순서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에 남삭노이는 돌연 국제식 복싱으로 전향하여 둘 간의 대결은 소원해져버렸습니다.
여기서도 재밌는 이야기는 두선수간의 라이벌 의식은 고바야시와의 대결에서도 발휘되어서...남삭노이와 고바야시간의 대결을 VTR로 지켜보던 쌈코는 '지겹다....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2라운드 남삭노이의 팔굽에 의한 TKO승 장면만 몇차례 반복해서 보고, 자신의 고바야시와의 경기도중 그 장면을 흉내내는 팔굽치기를 시도했다는것입니다.
쌈코는 팔굽치기 없는게 더 편하다고 말 할 정도로 본인자신도, 팔굽치는것을 소홀히 하는 선수였으나, 고바야시전 이후에 팔굽치는것에 재미를 붙여 이후 톤타이에게도 팔굽으로 ko승 하는 등...남삭노이의 예리한 팔굽과는 달리 쌈코의 그것은 마치 도끼로 찍는듯 하니,...역시 생긴데로 논다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천성적으로 늙어보이고 무서워 보이는 쌈코의 쇠파이프를 휘두르는것 같은 킥과 도끼 같은 팔굽,
그에 반해 나르시스 처럼 예쁜 외모에 잔상이 남는 듯한 아름다운 킥과 면도날 같은 팔굽을 다용하는 남삭노이, 어떻습니까?'생긴데로 논다!'는 내생각에는 우리 말이 맞는거 같습니다만...
현재 남삭노이가 무에타이로 복귀했고, 쌈코는 무에타이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두
선수 모두 최고의 위치에 도달했었고, 역시 쓴잔을 마셔봤던 남자들입니다.
오랜 공백 탓에 아직 전성기의 기량을 못 찾은 남삭노이와 이미 절정을 지나버린 나이의 쌈코이지만,
아직도 동체급에서 그들의 베스트 체중을 계약하고 맞상대할 선수는 많지 않습니다. 절정의 테크니션 남삭노이와 원시적인 위력의 무에타이를 구사하는 쌈코, 어쩌면 이 두선수간의 드라마틱한 대결의 파노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은것일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두 전설간의 새로운 마지막 대결을 희망해봅니다. 더불어 두전설이 아직 링을 내려오지 않은 시기에 우리나라의 젊은 강자들이 그들과의 영광적인 대결을 이루어내길 희망합니다.
윗 글의 내용대로라면 남삭노이가 1차전은 남삭노이의 판정 승리, 2차전은 남삭노이의 실격승, 3차전은 쌈코의 TKO승, 4차전은 쌈코의 판정승, 5차전은 남삭노이의 판정승 이렇게 됩니다. 즉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5전 3승 2패로 남삭노이의 승리라는 것이죠.
이전에 제가 알고있던 내용은 5전 2승2패 1무로 호각이었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신분들이 꽤 되세요, 한때는 그게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위에 소개올린 작자미상의 '사가(saga)'에 의하면 그것은 틀린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실만한 명문도장의 관장님께서는 쌈코가 먼저 두번을 이기고 남삭노이가 나중에 세번을 이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도대체 두 선수의 대전은 어땠을까요. 과연 우리가 알고있는 그것이 사실일까요? 저는 언젠가 꼭 태국 여행을 한번 가서 남삭노이, 쌈코를 취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상도 좀 구경하고 싶구요.
아래는 서울 태웅회관 총관장이신 공선택님께서 쓰신 쌈코에 대한 글입니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다시한번 보자고 올려봅니다.
2년전쯤이었을까, 저예산 영화제작사의 영화 감독 일을 하는 선배와 만난 적이 있었다. 이렇다 할 흥행영화를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가히 칭찬할 만 한 사람이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선배가 다짜고짜 묻는다. “이번에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를 하나 기획하고 있는데 운동 잘하고 진짜 악역같이 생긴 선수 한 명 있니?”
뜬금없이 배우도 아닌 선수들중에 배우를 찾는 사람도 웃겼지만 미남들만 모아 놓은(?) 무에타이 판에 진짜 악역같이 생긴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제작하려다 보니 스턴트맨 쓰기에도 돈이 아까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스턴트맨들보다 선수들 개런티가 더 비싸요. 그리고 악당같이 생긴 선수는 없어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머릿속 희뿌연 안개 속을 뚫고 누군가 한 명이 꿈틀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전세계 모든 무에타이 선수들로부터 신전처럼 받들어지는 세계 무에타이 최고 권위의 룸피니 스태디엄의 라커룸. 어두침침한 구석에 홀로 앉아 허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저 눈과 내 눈이 혹시라도 마주치면 나는 무서워서 눈물을 흘릴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그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그를 훔쳐봤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선배에게 그 때 내가봤던 무서운 선수를 추천하지는 않았다. 추천해봐야 그의 개런티도 못 맞춰 줄 것이며 외국인은 안 된다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 멍드는 배우 上(쌈코 편) -
그리고 얼마 전 룸피니 스태디엄에 경기관람차 입장에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내게 플라잉 니킥이 날아들었다. 순간 '그 놈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플라잉 니킥을 살짝 피하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정쩡한 자세로 땅 바닥에 앉아 깔깔 거리며 살려줘~ 살려줘~ 라고 외치는 것은 역시나 삼코였다.
자신의 소속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해서 링세컨드로 경기장에 왔다는 삼코는 그 동안 무슨 할말이 그리 많았는지 내 옆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자신의 경기 이야기와 다른 선수의 경기이야기, 자신이 요즘 운동을 어떻게 하고 밥은 뭘 먹는다는둥 이런 잡다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도 외국인들이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아주 친절한 매너로 사인을 해준다. 누군가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면 나와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순간 무서운 얼굴로 변신하여 포즈도 잡아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삼코는 태국에서도 '때사이(레프트 킥)' 라는 별명으로 통할만큼 왼쪽 킥이 빠르고 강하다. 사실 국내에는 신이 내린 왼발이네, 도끼 같은 왼발이네, 경이로운 왼발이네 하며 그의 왼쪽 킥에 칭송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필자는 그의 발차기나 주먹, 팔꿈치, 무릎 등등의 모든 격투기술 부분과 그의 마인드까지도 칭송을 하는 편이다. 발차기 하나만 가지고 전쟁터 같은 태국 무에타이계에서 에이스 자리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 하기는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태국 내 경기를 보고 있자면 킥은 물론이요 펀치면 펀치, 팔굽이면 팔굽, 빰(클린칭 공방)이면 빰 못하는 것이 없다. 몇 년 전 일본 젠니혼킥복싱연맹에서 열렸던 대회에 연속적으로 참전하여 동 단체의 챔피언 두 명을 왼발로만 무참히 초살 시키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당시의 경기를 동영상을 통해 관람했고 시기와 상대의 움직임, 스텐스에 상관없이 터져나오는 삼코의 왼쪽 킥 위력에 잠시 동안 공황상태에 빠지게 됐다.
일본 내에서도 그의 경기력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팬들은 K-1을 관장하는 타니카와 사다하루 이벤트 프로듀서에게 그를 K-1에서 보게 해 달라며 간곡히 부탁했다. 물론 삼코는 여러 가지 이유로 K-1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타니카와 프로듀서의 러브콜 공세는 긴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후 삼코와 신비태웅, 남삭노이, 펫람엑이 한국경기에 참전하고자 한국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10여일 간 삼코, 그리고 태국에서 온 선수들과 동고동락 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를 ‘선수’가 아닌 ‘사람’으로 알게 되는 시점이었다.
‘멍드는 배우 삼코’ 편이 싸이뉴스에 실리고 나서 격투계 관계자들로부터 ‘왜 한국선수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더니 뜬금없이 외국선수가 왜 나오느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다.물론 안부 차 전화통화하던 몇 명으로 부터 들은 핀잔 아닌 핀잔이었지만. 필자는 성격장애가 있다. 뭔가 하나 숙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아주 치명적인 정신병(?)이다.
삼코의 이야기도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이고 언젠가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시점부터 계속해서 떠오르는 삼코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또한 필자의 손은 이미 삼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삼코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고 삼코가 아닌 다른 선수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졌던 것이다.
-멍드는 배우 下(삼코 편)-
경기 후 며칠간 삼코와 신비 태웅 등의 태국인 선수들에게 한국을 소개해주고 관광도 시켜줄 겸 해서 첫 번째로 들린 곳이 롯데월드였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사진들 중에 삼코가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 하는 모습의 유명한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삼코는 생긴 것과 다르게 스릴이 느껴지는 듯한 놀이기구는 모두 거부했다. 더 무서운 것은 없느냐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남삭노이나 신비 태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필자가 “내 돈으로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네가 안 타0면 돈을 날리는 셈이다”라고 말을 해봐도 “그럼 내가 너에게 돈을 주겠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필자는 약이 올랐다. 어떻게 해서는 삼코를 공포스러운 놀이기구에 꼭 태우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가 눈치를 못 채도록 롤러코스터 앞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이제 잠깐 동안 줄을 선후 삼코를 강제로 태우면 되는 것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앞까지 다가가자 삼코가 눈치를 챘는지 자기는 죽어도 싫다며 빼기 시작했다. 필자는 쌈코를 번쩍 들어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천하의 삼코여도 체중 100kg에 키 185cm의 거구인 필자를 때리지 않고 단순히 힘만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삼코는 살려달라며 발버둥을 쳤지만 필자는 “차라리 죽어라” 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몇 분간 승강이를 벌이자 결국 삼코와 내가 롤러코스터에 탈 차례가 왔다. 곧 롤러코스터가 도착했고 게이트가 열렸다. 이젠 타기만 하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롤러코스터에 타기 위해 삼코를 놔주는 순간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기 시작한다. “돌아와, 삼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0.5초만이었다. 결국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공포에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바이킹, 후룸라이드, 번지드롭, 롤러코스터 등등 롯데월드에 있던 놀이기구 중 쌈코가 유일하게 즐겼던(?) 놀이기구가 회전목마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내가 먼저 시범으로 회전목마를 타며 시범을 보여주고 하나도 안 무섭다는 설명까지 해줘야 했다. 그렇게 오르게 된 회전목마에서 삼코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한바탕 놀이공원에서 놀고 난 뒤 당시 필자가 운영하던 상계동 태웅회관의 사무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밤이 되어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해도 싫단다. 삼코가 밖에 나가서 놀았던 것은 당시 태웅회관 선수들과 근처 운동장에서 즐겼던 축구말고는 없다. 삼코는 무에타이에 미친 사람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드에 저장된 무에타이며 K-1이며 동영상만을 볼 뿐이다. K-1을 보며 선수들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을 찾아내고 보완해야 하는 부분을 지적한다. 200 경기도 넘게 뛰었다면 지겨울 법도 한데 삼코는 무에타이와 각 선수들을 연구한다.
동영상 중에는 삼코가 일본에서 왼쪽 킥으로만 일본의 챔피언을 KO시킨 장면도 있었다. 이것을 보던 삼코가 눈살을 찌푸린다. 필자는 물었다. “저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삼코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왼발로만 싸울 생각을 했느냐?” “다른 공격도 다 잘하지 않더냐? 그리고 다리 하나만 가지고 저렇게 차대면 다리가 아프지는 않더냐?” 삼코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명료 했다. “저렇게 시합하면 아프다.”
눈을 크게 뜨고 궁금해 하는 필자에게 삼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경기가 끝난 후 한 2주 동안 걷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통증을 느낍니다. 왼쪽다리로 차다가 상대의 팔꿈치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제 경기를 보러 옵니다. 제가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기분 좋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저는 주연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하고 이기고 난 후에는 오버해서 기쁨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지요. 극장을 찾은 관람객이 영화가 재미없으면 돈 아깝다고 할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영화가 재미있으면 영화에 대한 칭찬을 하며 돈이 아깝다는 말을 안 하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제 경기를 보고 돈 아깝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할말을 잊은 필자에게 삼코가 바지를 걷어 정강이를 보여주었다. 이틀 전 경기에서 얻은 멍 자국이라며 아직 아프니 만지지는 말란다. 피부가 검은색이라서 잘 안보였으나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분명 피멍이었다. 작은 키의 삼코가 한없이 크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삼코는 우리 나이로 32살이다. 이미 태국인 선수로서 전성기를 훌쩍 넘긴 노장중의 노장이다. “선수본인이 스스로 배우라고 생각하며 고통을 참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태국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한국선수들이 본인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그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음은 물론이다.
최근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겠다는 집념으로 다시 링 위에 서기 시작한 삼코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후배선수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파이터였다. 훗날 그가 체육관이라도 차리게 되면 반드시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KP프로모션 이사, 서울 태웅회관 총관장
쌈코 하이라이트
쌈코는 왼발 킥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외에도 전반적인 공격기들이 모두 하나같이 위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부수는 '파괴의 신' 이었죠. 무에타이는 알고보면 수비능력이 경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쌈코라는 특급 공격수의 가치가 더욱 더 빛나는것 같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