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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3년 09월 15일 청년법회<수행법회 질의응답>.hwp
원기 103년 09월 15일 청년법회
<수행법회 질의응답>
설법 :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 초벌)강혜지, 완성)박준성
Q. 심현승 교우님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되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군대에 대해 안 좋게 생각 했습니다. 어차피 시간 보내야 하는 거 즐겁게 다녀오라고 말했더니 저를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어차피 가야할거 즐겁게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얘기했는데 친구가 그렇게 나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 보산 김제원 교무님
군대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분단된 한국에서 젊은이라면 법에 따라 군대를 가야겠죠. 예외가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국가가 국민을 이용하고 악용하는 경우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있는데 입법기관에서 그것이 세워졌죠. 행정기관은 그것을 시행하고 있고 사법기간은 그것을 지키도록, 또는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감시하고 법으로 대가를 지불합니다. 역사적 안목이라던가 또는 국가적, 법률적인 것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되면 그것이 억울하고 아까운 시간이죠. 그러나 한국 사람이면 피할 수 없죠. 유승준이 군대를 가야할 때 도망가 버렸죠. 아직도 입국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지 10년이 넘었지만 입국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켜야 합니다. 법이 있는 것은 결국 필요의 이유,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켜야 합니다. 세금을 안낼 수 없죠. 국가에서는 사대 의무가 있습니다.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국민으로서 누구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지만 국가나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누구나 다 수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승교우는 어차피 법을 지켜서 가야한다면 그 안에서 최대한 배우고 즐겁게 건강하게 잘 지키고 와라 한거죠. 국가에 입장을 떠나서 어떤 환경에서든 내가 그 환경을 대할 때에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천지차이입니다. 누군가 여러분한테 일을 시켰습니다. 사장이 직원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님이 제자에게 시켰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학교를 안다니거나, 집안을 나가거나,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가능하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때 그것을 찡그리면서 할지 웃으면서 할지는 자기 맘이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찡그리면서 하는 사람이 손해입니다. 인상 찌푸려져, 일 효과도 없어, 훨씬 피곤해, 옆 사람도 짜증나죠. 그러나 웃으면서 그것을 기쁘게 수용한다면, 원불교 법으로 말하면 그 일에 일심을 한다면 그 일속에서 업력을 쌓기도 하고 능력을 얻기도 하고 그것이 보은이 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현승교우는 그런 입장에서 말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분은 지금 이게 즐길 일이냐 그런 입장인 것이죠. 본인이 그렇게 되면 잘못하면 군대에서 사고 칠 수도 있습니다. 군대에도 수많은 경계가 있잖아요. 무기를 다루고, 밤에 근무를 하죠. 지금은 폭력이 없지만 저는 군대에 가서 매일 맞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다녀왔습니다. 국민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더 가까이 말하면, 나의 연인을 위해 부모를 위해 가족을 위해 간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꾸로 말해서 우리나라가 부패하고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거기서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의 가까운 인연들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위안부 문제이고 아직까지도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국가의 은혜 또는 많은 주변의 은혜 원불교로 말하면 사은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인데 그 친구는 그런 것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국가가 당연히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내 것만 챙기겠다. 하는 좁은 생각이라면 그 사람은 앞으로 큰 인물이 되기도 어렵고, 그런 사람은 사은의 은혜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질문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국가에 어떤 은혜를 입었는가?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여러분들이 교육의 의무를 통해서 학교를 다니고, 국방의 의무를 지켜주기 때문에 우리가 편안하게 경제활동, 산업 활동을 하고있는거죠. 납세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서 기관 산업 국방, 교육 이런 것들이 다 이뤄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서로 간에 시너지 효과로 도움을 주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는데. 국가가 왜 존립하는가? 나는 국가 속에 어떤 존재인가? 하는 큰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이 교당을 새로 신축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땅 값이 30억 됩니다. 건물을 다시 지으면 50억이 들어갑니다. 80억짜리 공사입니다. 여기를 세를 주면 얼마일까요? 여러분들이 이 건물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가장 큰 은혜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공기를 마실 때 돈을 내고 마시지 않잖아요. 국가 사회나 천지자연의 은혜를 모르고 나 하나 잘 살겠다는 생각은 엄청나게 좁은 생각입니다. 엄청난 은혜의 연결고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도 때로는 받기만 하지 말고 주고 받아야한다. 그렇게 순환을 시켜야 이 세상이 함께 돌아간다는 안목을 가지시면 훨씬 기쁘게 적극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울 것도 많아요. 특히 사람관계, 내가 맘대로 하고 싶은 것을 제재도 받아봐야 합니다. 군대는 때로는 구속입니다. 구속 속에서, 인내 속에서 때로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함께하는 사회성, 양보, 배려, 단합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적극적 사고를 가지면 손해 볼 것만은 아니다. 저 같은 경우는 수색대를 다녀왔는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받아본 사람입니다. 우리 소대원들은 밤에 보면 살기가 있어요. 반짝반짝합니다. 거기서 무엇을 배웠냐. 이 마음, 깨어있는 마음, 인내의 마음, 성취의 마음으로 내가 사회에 나가면 정말 못 이룰게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돈 주고 살수 없어요. 책 몇 권 읽는다고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배울 수 있는 것이 찾기만 하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며칠 체험한다고 가기도 하잖아요. 군대라는 것이 무지막지한 곳만이 아닙니다. 군대 조직이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조직이고, 천주교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다 나름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안목을 키우는 기회입니다. 어떤 것들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때로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도덕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 생각은 이래. 그래서 자유분방합니다. 자행자지 합니다. 그것이 상대적 도덕주의라는 현대사회의 무지막지한 병입니다. 그래서 계문을 어기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서도 내 자유, 마음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알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천지가 없으면 1초도 살수 없으며 부모가 없으면 몸도 받지도 못하고 동포가 없으면 내가 어떤 것도 활용할 것이 없습니다. 법률이 없으면 어떤 사람이 저녁에 돌아다니겠어요. 어떤 약자가 어떻게 당할 줄 모르는데. 엄청난 은혜 속에 살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세상이 마치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은 나를 위해서 서비스만해라 나는 이용만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역대 성자는 자기를 불고하고 세상을 위해서 아낌없이 기쁘게 다 바치고 가신 분들이 성자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의 은혜 속에서 진리를 눈치 채고 공부하고 또 그런 분들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죠. 여러분들이 어떻게 참 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겠어요. 저는 대종사님을 못 만났으면 어떤 것이 참 나인지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이 육신이 나고, 이 안의 에고가 나고, 힌두교의 아트만 같이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있는 것처럼 있지도 않은 것이 나인줄 알고 착각하고 한생을 살아요. 죽을 때 되어서 생각해보니 ‘이게 내가 아닌가봐’ 하면 일생을 남의 다리 긁다가 끝났습니다. 얼마나 괴로운 일이에요. 나를 위해서 산다고 살았는데 나를 모르고 사는 인생이 어떤 인생이겠어요? 여러분 다 자기를 위해 살잖아요 행복을 위해 살잖아요 그런데 봤더니 ‘나’가 무엇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겠어요. 진정한, 영원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행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천하의 그런 바보가 어디 있어. 그래서 성자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아까 그런 이야기는 참 철없는 소리다. 모르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김종도 교우님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지금은 혁명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부정부패가 드러나는 시기가 됐고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촛불시위를 하고 반대의 의견을 내고 개선이 되어가는 단계가 되었다, 그리고 혼돈의 시대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옳고 그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무조건 나쁜 사람들이 없어지고 착한사람들이 채워져야 하지만 그게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그런 혼돈의 시대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그것이 맞는 것인가 의문점이 생겨서 질문 드립니다.
A. 보산 김제원 교무님
대종사님은 그것을 개벽시대라고 하셨죠. 대명천지가 되는 시대다. 과거의 음시대가 양시대로 바뀐다. 수직적사회가 수평적사회로 바뀐다. 폐쇄적 사회가 개방적 사회로 바뀐다. 차별의 세계가 평등의 세계가 된다는 내용인데,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에 했던 관습이라던가 적폐가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이 이제 앞으로 큰 전쟁은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이제는 나라별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도 하나로 연결되고, 국가 간의 이해관계나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힘 있는 놈이 마음대로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국제법도 있고, 국제적 연합체 UN도 있고, 종교적 연합체, 원불교가 주장하고 있는 UR도 있죠. 대종사님은 UR의 세계 본부가 금강산에 생긴다고 하셨고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도 하나 바꾸려면 힘들죠. 똑같습니다. 국가나 사회도 그런 과정을 거쳐 가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전두환 씨가 백담사에 가서 대통령을 한 사람이 있고, 감방에서 죄수복 입고하겠어요? 밝아지는 시대의 현상입니다. 요즘 청문회 하잖아요. 학교 때문에 위장전입하고 한 것들 다 드러나죠. 이번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그랬죠. 국가에서 여러분들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알아요. 큐알코드 딱 대면 돈의 흐름을 추적해요. 다 투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이런 시대가 아닙니다. 아직도 사회는 그동안 수천 년간 묵어온 폐습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씩 개벽해가는 과정입니다. 정치도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과 그것이 너무 빠르다 하는 사람들의 전투인 것이죠.
Q. 양도인 교우님
주인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저희 팀장님을 봤을 때 주인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도 나름대로 다른 직원들에 비해 주인으로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팀장님보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맡은 바를 잘 해내는 것이라고 성욱 교무님이 답해주셨었습니다. 주인으로 일하는 것과 일 중독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팀장님이 주인으로 일하심에 감탄스럽기도 하지만 휴가를 가셔도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일중독인지 주인으로서 일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질문 드립니다.
A. 보산 김제원 교무님
이태성 교우가 이데일리 기자인데, 전에는 휴가를 다 못 내서 출가여행을 일주일 못하고 목요일에 갔거든요. 이번에 편집국장 된 사람이 직원들 휴가기간을 제재하면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말을 했답니다. 그래서 올해는 출가여행을 전체 참석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떤 20대 막내 직원이 휴가를 한 달을 끊어서 갔어요. 그 사람은 제도를 악용한 것이죠. 그래서 온 회사에 소문이 파다하죠. 위에 부장은 말도 못하고. 정말 양심 없죠. 한 달을 가버리면 직원을 한 달 동안 채용할 수도 없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겠죠. 자기는 정당한 휴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일까요? 그렇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을 회사에서 채용했을까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죠. 그 사람은 앞으로 인사고과에서도 피해를 보겠지만 대중들에게 여러 가지로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질문은 주인과 과불급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인의 마음이지만 그 주인이 중도에 맞아야 합니다. 상황성, 시대성에 맞아야 합니다. 주인이라고 해서 휴가도 없이 하는 것은 중독이죠. 중도적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게 진짜 주인이죠. 중이라는 것은 희로애락 미발지중을 중이라고 하죠. 희로애락의 감정이 나오기 이전의 자리. 즉 원불교 용어로 하면 일념미생전, 더 들어가면 분별의 이전자리, 즉 진공을 말합니다. 이 진공의 자리가 바로 중 자리입니다. 그것이 중도에, 상황성에 맞아야한다. 즉 끌림이 없고 집착이 없이, 걸리지 않는 마음으로 전체를 내 집 삼는 것이 주인이지 전체를 내 집 삼았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고 끌려가는 것은 중독입니다. 그것은 나중가면 효과도 없습니다. 사람을 상대를 해보면 착하지 않아요. 그런데 능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착하지만 능력이 없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착하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 또 능력이 있지만 집착이 없고 중도적 원만성을 가진 사람. 만 명에 서너 명 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람을 쓸 때, 이러고 이러지만 좀 더 괜찮은 사람을 뽑지만 여러분들은 만 명 중에 서너 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착하고 사심이 없으면서 능력도 있으면서 그 능력이 중도적 원만성을 가졌다. 그 사람은 백발백중 성공입니다. 이 세상을 살릴 사람입니다. 능력 없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을 시비하죠. 능력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을 착하면 뭐해 일도 못하는데 이렇게 생각하죠. 우리가 추구하는 대종사님의 알뜰한 제자는 정말로 착하면서 역량도 삼학으로서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러면서 원만성을 지키는 사람. 이 사람이 원불교로 말하면 성자적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만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스스로 철저하게 점검하는 가운데 동시에 나보다 더 경험했던 강자에게 계속 지도를 받아야합니다. 동지나 스승을 통해서 계속 지도를 받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치우친 것이 좋게 말하면 개성이지만 독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사람 이상해! 왜냐하면 계속 반복되면 고착되고 더 들어가면 성격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마음을 관리하다보면 이쪽에 있던 사람도 점점 원만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고 영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능력도 성장하고 주위의 인정도 늘어나게 되고 스스로도 행복도가 계속 증장되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사회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쉽게 되지 않아요. 열심히 하면 오히려 씹히고 음해당하고 이런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원불교 신앙입니다.
Q. 이하은 교우님
저희가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스펙도 좋아야 하고, 인성도 좋아야하고……. 계속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보산 김제원 교무님
요구하는 사람 없어요, 회사 안가면 되잖아 시작이 잘못됐어요. 세상이 하은 교우에게 요구한 게 아니고 하은교우가 요구해서 회사에 들어간 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월급을 주니까 그만큼의 대가를, 밥값을 하라는 것이죠. 성공은 실체가 없죠. 기준도 없어요. 그 사람의 마음에 목표를 이룬 것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래서 성공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마음이 계속 살아 있는지, 그 꿈을 놓지 않고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다보면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으면서 결국은 성공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이것이 성공이라고 하면 그것은 그 사람 생각이죠. 다 기준은 다르죠. 그리고 실패 없는 성공은 거의 없습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실패의 경험 중에서 잠깐 있어지는 불빛 같은 것이다. 그 성공에 고착하거나 집착하면 실패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원불교의 성공은 법위를 승급하는 것입니다. 범부, 중생, 소인의 세계를 넘어서 군자의, 성현의, 대인의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성공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원불교는 만사성공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4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음을 정하는 믿음, 나태를 이겨내는 분발심, 멍 때리지 않고 까닭 있게 계속 그 까닭을 연구하는 의문,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정성입니다. 이 네 가지를 갖는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혜지,준성 교우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