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베라
마르스와비너스

피에타조각
장크트슈테판대성당 소장. 시신을 둘러싸고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서 사도들, 성자 등이 그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상.
1. 들어가며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자면 우리들이 ‘다시’, ‘재생’이라는 의미로 Re라는 접두사를 붙여쓰듯이 르네상스는 Re+naissance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며 naissance는 ‘태어나다’라는 단어의 어원인 nai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Renaissance 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시 태어나다’로 해석될 수 있으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형태의 혁명 또는 변화중 문화적인 변화를 일컫는 단어가 된다.
2. 르네상스의 발생 원인
어렸을 때 많이 읽던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읽다보면 신들을 인간화시켜 설명해놓고 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가둬두고 바라만 보는게 아니라 우리 옆에서 함께하는 친근한 모습으로 표현하곤 하였다. 때론 인간를 사랑하기도 하는 신들을 보면 우리는 신은 절대자가 아닌 우리들과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며 인간은 신을 찬양해야 했으며 모든 문화, 경제, 사회의 중심은 신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게되어 그 안에서 인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신화의 중심지였던 로마, 즉 이탈리아였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큰 성황을 이루었던 이탈리아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자 문화적인 여유를 찾게되었으나 자신의 위치가 아무리 올라도 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욕망 최종 종착역은 자기 발전과 명예의 욕구인만큼 그들은 절대자인 신을 능가하고싶었고 모든 역사의 중심에 있기 바랬다. 원정의 실패와 함께 신권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마침 14세기경부터 퍼지기 시작하면서 ‘신은 없다’라는 의식이 밑에서부터 생기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재산을 모은 상업계층이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신권을 불신하게 되는 아리러니한 상황이 생기게 된 것이다. 또한, 흑사병의 발생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하게 하였다.
이 시기에 F.페르라크카가 고대 문화를 절정기로 보며 중세는 인간의 창의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기’로 평하며 문명의 재흥을 위해서는 고전학문의 부흥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기본요소를 정립하게 된다. 물론 고전학문이라 해서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의 주장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언급했듯이 인간의 지적인 힘, 즉 창조적인 지식을 믿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3. 르네상스의 발전
‘르네상승’, 즉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는 16세기에 들어와 현실적으로 언급되기 시작되어 유럽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라는 개념은 이탈리아에서만 한정된 게 아니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로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다른 형태로써 르네상스가 넘어가게 되는데 종교적인 비판의식이 강한 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인간을 내세워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꿔갔으며 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무시를 해버리는 문화였다면 다른 나라의 르네상스 문화는 신을 비판하는 종교적인 문화로써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이탈리아는 사람과 자연의 문화를 강조하였지만 다른 나라들은 종교개혁적인 면이 강해 문화적인 작품들도 이탈리아가 ‘모나리자’, ‘다비드상’, ‘서정시’와 같이 인간 중심의 문화를 발전시킨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유토피아’, ‘돈키호테’, ‘우신예찬’과 같은 종교, 사회 비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4. 르네상스의 업적
르네상스 시대는 혼란기였지만 그와 함께 많은 천재성을 보인 예술가, 과학자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업적이자 자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 신체적인 해부학적 구조,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를 통해 천재성을 보여주었으며 인체의 신비함을 조각으로 표현해 낸 미켈란젤로, 중세시대를 풍자했던 데카메론의 보카치오, 르네상스의 고전 예술을 완성했다는 성모상의 라파엘로,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의 극작가가 된 햄릿의 셰익스피어, 기사와 종교의 타락을 풍자한 돈키호테의 세르반데스, 이상적인 세계관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였던 유토피아의 토머스 모어 등……. 현대까지 언급되는 예술가, 과학자들이 이 시기에 몰려있다. 혼란은 영웅을 탄생시킨다는 말처럼 르네상스의 혼란기는 기존의 안정적인 시기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두각될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5. 르네상스의 몰락
먼저 설명했다시피 르네상스는 인간다움, 인간 중심의 문화를 추구했다. 그것을 흔히 ‘휴머니즘’이라 부른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부흥을 이끌었던 ‘휴머니즘’은 몰락도 가져오게 되었다. 자기 중심적, 이상적이 되어버린 휴머니즘은 현실 도피성으로 변질되게 되어 문화적인 정체성과 바로크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와 함께 르네상스의 배경원인이기도 했던 상업이 몰락한 것도 큰 이유중에 하나였다. 아마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세계 중심으로 바뀌면서 지중해 중심이었던 무역이 대서양으로 넘어가고 그로 인해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는 소외되고 에스파냐나 영국이 해상권을 장악하므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이탈리아 전쟁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는 더 이상의 르네상스는 없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6. 마치며
흔히 부흥기를 맞이한 사회적인 변화를 르네상스라고 부르곤 한다.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변화되는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를 뜻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과연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는가라는 말에는 의문이 따르게 된다. 많은 예술적 업적이 나타났지만 사회, 경제적으로는 정체기였기 때문이었다. 비판은 있지만 비판으로 끝나버리는 사회적인 풍토는 사회, 경제 발전을 도외시하고 문화, 예술적인 면으로만 해소할려고 했었던 것 같다. 과도기는 문화적인 면만으로 말하기엔 모자르다는 생각이 든다. 르네상스로 인해 종교개혁, 산업혁명이 차근차근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르네상스는 중세의 종착역이자 근세로 나가는 시발점으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이 옳다고 생각된다. 긴 과도기의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