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金容大 (1883 ~ 미상)】 "1920년 군비단 군사참모, 1921년 대한국민단 창설"
1883년 5월 14일 태어났다. 본적은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이인면(里仁面) 신풍리(新豊里)이며, 주소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이다. 이명으로 김농대(金瀧大), 김용대(金用大, 金龍大, 金溶大), 백두산인(白頭山人) 등을 썼다.
1919년 11월 1일 만주 창바이현(長白縣) 17도구(島溝) 삼림 중에서 이희삼·김찬·김덕은·윤덕보·박동규·염학모·강건·박주섭·박기윤·박춘근·김탁·김종기·김정기·이동백 15인과 함께 모여 군비단(軍備團)을 조직하였다. 군비단은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였던 독립운동가,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던 애국지사가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군비단은 단장 이희삼을 중심으로 조직을 중앙과 지단으로 나누고, 중앙조직으로 총무부·이사부·군사부·경호부·문화부·서무부·교통부·외교부를 두었으며, 지방에는 지단을 두었다. 이때 김정부·박주섭과 함께 중앙의 이사부를 담당하였다. 1920년 7월경 창바이현 왕개골에서 개최된 군비단 총회에서 군사 참모로 임명되었다. 1921년 봄 일명 ‘무기운반대’라고 칭해졌던 군비단 도수대원들이 군사 참모인 그의 『행군요략』 1부와 노정 지도를 소지하고 연해주 이만을 향해 이동하였다. 그 해 8월 8일 군비단 대표로 태극단·대진단·흥업지단·광복지단과의 대표 회의에 참여하여 외교와 군대 행동 방략을 논의하고 향후 군사행동은 합동전선을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1922년 3월 1일 군비단과 흥업단이 창바이현에서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통합하였다. 이때 윤덕보·강건과 군비단의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이사부를 담당하였다.
1922년 5월 4일 대한국민단은 대진단·태극단·광복단 일부와 통합하여 대한광정단(大韓光正團)을 조직하였다. 회의에서 광정단의 중앙총부는 마오쑹현(茂松縣)에, 군대는 창바이현(長白縣)·린장현(臨江縣) 두 곳에 두고 창바이·린장·마오쑹·안투(安圖)의 4개구로 관할지구를 구분하여 각 지방 총부을 두어 행정에 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회의에 대한국민단의 대표로 참가하여 윤세복·석기만과 함께 이사부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8월 남부 광정단 비서부장을 맡고 있던 중,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될 국민대표회의를 위한 국민대표주비회에 북부광정단 비서부장 김성제와 함께 광정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3년 4월 남부(창바이현) 지역의 단장으로 창바이현의 무장투쟁과 광정단의 군수 구입을 담당하였다. 광정단에는 단장 김호익을 중심으로 마오쑹현에 참모부(참모장 이덕신), 창바이현에 암살단(단장 원문화)이 있었으며, 동부([안투현(安圖縣)] 단장은 이범윤, 서부(린장현) 단장은 임석우가 맡았다.
1923년 9월 10~11일경 일본 간토(關東)지역의 대지진을 독립 활동의 기회로 보고 다른 독립군단과 연계하기 위해 박봉일 등 단원 4명을 마오쑹현으로 파견하였다. 9월 말 광정단 총무 석기만, 남부총무 강건을 비롯하여 단원·학생 등 약 50~60명과 함께 창바이현 동평덕리의 기독교 예배당에 모여 일본 간토지역 진재(震災) 축하 잔치를 열어 암소를 잡고 축하연설을 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였다. 1923년 말경 광정단의 비서부장 겸 고문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에는 광정단 민정위원 겸 학무위원을 겸임하였고, 광정단 산하 독립신문 국장도 역임하였다.
대한통의부를 주축으로 군정서·광정단 등 남북만주의 산재한 독립군단들을 통합하기로 1924년 10월 18일 결정한 뒤, 11월 24일 정식으로 정의부(正義府)가 출범하였다. 정의부에서는 이듬해인 1925년 봄 조직을 중앙위원제로 결정하고 중앙행정위원 등 간부진을 구성하였다. 1925년 3월 정의부의 중앙조직 구성 시 중앙행정위원으로 선출되어 중앙선전부 소속으로 학무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1926년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될 때까지 계속 중앙행정위원을 역임하였다. 4월부터 중앙행정위원과 함께 학무위원장도 역임하였으며, 4월 9일 제3회 중앙행정위원회 결의로 지용기와 함께 전 대한통의부 사무 인계위원도 맡게 되었다.
1926년 11월 지린성 반석현(磐石縣)에서 열린 정의부 제3차 중앙의회에서는 중앙위원을 5명에서 11명으로 증원하자, 김동삼·현익철·오동진·고활신·김학선·이광민·김원식·강하제·김철·이욱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이후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