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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9 꿈꾸던 트레킹(리히-사마가온)
차가 준비되었다는 빠상의 ‘티 레디~’ 소리는 아침 6시, 알람과 같습니다.
찬 바람 때문에 쉭 쉭 소리가 나는 호흡, 코를 훌쩍이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귓가에 바로 들리는 ‘티 레디~’ 소리.
짐을 다 챙겨놓고도 침낭은 벗어던지지 못하고 간밤에 체온으로 간신히 쾌적해진 침낭속에 들어가 있던 저는 반쯤만 빠져나와 플라이 지퍼를 엽니다. 빠상은 늘 ‘굿모닝’하면서 차를 따릅니다. 저역시 "굿모닝"하고 그의 손을 바라봅니다.
빠상이 커다란 양철 주전자에서 김이 나는 차를 따릅니다. 훅하고 올라오는 홍차향기는 차가운 공기와 섞여서 새아침의 기분을 만듭니다. 그는 언제나 ‘슈거?’ 하고 묻는데, 저는 언제나 ‘노’입니다. 찻잔을 받으며 ‘땡큐’의 유-라는 발음을 길게 늘리며 제 목소리가 활짝 개인 기분좋은 울림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빠상은 한결같이 짧게 ‘웰컴’하고는 쉿소리 나는 숨을 쉬고, 콧물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사라집니다. ‘티 레디~’ 그의 목소리가 다음 텐트앞에서 울려퍼집니다.
저는 따뜻한 차를 몇 모금 마시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침낭에서도 벗어납니다.
찻물이 쏟아지지 않게 찻잔을 텐트 가장자리에 놓아두고 플라이 밖에서 식고 있는 작은 세수대야의 물을 가져다가 대강의 세수를 합니다. 침낭을 돌돌 말아 카바속에 집어 넣고, 텐트 속을 정리하고, 카고백은 그냥 둔 채, 배낭과 스틱, 모자와 장갑, 스텐레스 찻잔을 가지고 등산화를 끌다시피 신고 나오면 식당텐트를 걷어버린 야외탁자에 아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을 먹는 사이 밍마 세르파와 스텝들이 카고백과 침낭과 매트를 꺼내고, 텐트를 걷습니다.
이것이 트레킹 중에 반복되는 아침의 일상입니다.
규칙적인 이런 풍경에 달라지는 것은 플라이의 지퍼를 열 때마다 느껴지는 날씨의 변화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침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밤새 풀밭은 흠뻑 젖었습니다. 구름이 많이 몰려와 있고 안개도 조금 끼었습니다.
그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우리를 구경 나온 동네꼬마들이 있습니다. 녀석들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재미난 구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여겨 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우리의 아침 메뉴는 라면 아니면 누룽지입니다. 삶은 계란과 풀빵 같은 핫케이크와 잼과 꿀도 언제나 빠지지 않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둥글레차나 오룡차, 한국에서 가져간 차를 새로 우려서 한 잔 마시고, 날찐물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온기를 팔에 느끼면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아무리 끓여도 높은 고도 때문에 너무 뜨거워 데일 일은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구름 아래 눈을 꿈뻑이듯 초르텐도 우리를 내려다 봅니다.
날씨이야기, 운행이야기를 조금 하고나서, 일어나 양치를 하고 등산화 끈을 묶고 나자 이제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꼬마들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우리를 구경합니다.
운행을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도, 안개도 걷힙니다. 구름과 안개 걷힌 하늘은 짱짱하게 푸르고, 멀리로 하얀 설산의 몸체가 제법 많이 보입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아침에 꺼내 입은 조끼가 제법 보온효과를 냅니다. 다음 마을로 이동을 해서 잠시 쉬는 사이, 새로운 아이들이 또다시 우리 주변으로 몰려듭니다. 헝클어진 머리, 콧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 새카맣게 때가 낀 맨발을 한 아이들이 눈에 시립니다.
한참을 힘들여 고도를 높이고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합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설산들과 확실히 달라지는 풍경들로 마음은 설레입니다. 며칠간 괴로웠던 구토증상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열심히 다이아목스를 먹었고, 향신료가 들지 않은 한국음식들을 먹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고산병의 특효약이 누룽지라고 하더니, 누룽지덕도 톡톡히 보았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수목한계선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수목한계선의 나무들은 바람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가 된다고요, 악기장들은 일부러 그런 곳의 나무만 찾아서 바이올린을 만드는데, 바람에 시달려 가장 고통받았던 나무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공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트레킹 내내 알게모르게 우리의 벗이 되었던 나무들이 어느순간 시야에서 툭 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 슬픈영화를 기대하듯이, 조금은 놀랠준비를 하며 기대가 되었습니다.
사마가온 가는 길에 숲의 향기가 아찔하도록 신선했습니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 빚어내는 가장 진한 향기일까...문득 고개를 들면 그 모든 이야기에 초연한 흰 산이 햇빛에 빛납니다.
낭랑한 햇빛과 함께 설산을 보며 걷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저 멀리 돌로 만든 집들이 한눈에 보입니다. 한편에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털과도 같은 누런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아낙들이 허리를 굽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햇빛은 곡식밭과 여자들의 옷에 공평하게 내려와 펼쳐진듯,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은 옷도 너무나 ‘내츄럴’하고 ‘에스닉’하게 보입니다. 그러한 색감들은 제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자신들에게 집중되어지는 시선을 의식하고 허리를 펴고 일어난 여자들이 손차양을 만들며 웃습니다.
햇빛같은 웃음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눈 앞에 마나슬루!"
희게 빛나는 설산의 모습은 모두가 아름답지만, 특별하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M자형의 설산을 바라보고 잠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운행방향으로 약간 왼쪽으로 보이는 그 봉우리가 마나슬루의 북서면이라고 했습니다.
설산에 주석하는 신들은 모두 여신이라고요, 마나슬루는 '영혼의 산' '지혜의 산' '정신이 깃든 산'이라고 불리운다고요.
저는 그 중에 '지혜의 산'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해발 8,163m의 높은 봉우리가 친근하지만 위엄있게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보면 트레킹중에 가장 흥분되고 아름다왔던 하루입니다
높은 영혼, 높은 지혜의 산이 저를 내려다 보고 있고, 저의 옆으로는 길고 긴 아름다운 마니월들이 늘어서 있으며, 낮게 내려온 초르텐의 붓다아이(buddhaeye)가 가만히 저를 마중나와 줍니다. 우리의 옆으로는 응원하듯 수줍게 웃어주는 여인들의 미소가 있습니다.
트레킹을 상상하며 꿈꾸던 모든 풍경이 완성됩니다. .
물론 라르키아 라를 넘는 날이야말로 잊지 못할 날이지만...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햇빛과 바람을 한껏 느끼면서 처음으로 눈부시게 가까와진 지혜의 산과 인사하는 일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흐뭇하여 더이상 바랄것이 없는 상태..가 바로 행복이라고 했으니까요.
여전히 오르막이어서 힘이 들기는 하지만,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늘 마음으로 불러보던 '마나슬루'를 바로 코앞에서 만나니 숨찬 것도 참을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분위기, 성스러운 분위기는 우리가 만나는 마을들의 풍부해지는 마니석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해발 3300m의 시얄라 마을의 카니와 초르텐과 마니월에서는 그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나무향내가 너무 짙어서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벌채된 나무들에게서 나오는 진한 냄새였습니다.
한 노인이 길게 쓰러진 나무를 깔고 앉아서 설산을 마주보며 휴대용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따사롭고 그의 얼굴은 평온하였습니다.
더이상 바랄 바가 없는 듯한 그런 모습은, 이방인인 저의 마음에까지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평평한 마당에서 배낭을 풀러놓고, 포토라인에 선 배우들처럼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출발하여 한참을 내리막과 오르막을 지났습니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화창했던 날씨가 점점 구름낀 날씨로 변하면서 스산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놀랄만큼 드넓은 평원이 나타났습니다.
눈이 시원하고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넓은 평원을 지나 멀리서 시작되는 마을을 보니, 다시 마음은 안정되고, 기운이 솟아납니다.
사원인듯 한 중간에 규모가 큰 초르텐이 있고, 벽을 에둘러 마니차를 만들어 놓은 그마을은 어쩐지 영적인 기운이 가득합니다. 가까이에 가보니 마니차 벽 안쪽에는 마니석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습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벽을 걸어갔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해발 3530미터의 사마가온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마나슬루가 가장 잘 보인다고 했습니다. M자형의 마나슬루 모양을 왕관모양으로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악마의 이빨 모양으로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지인들은 팔찌로 묘사한다고 했습니다. 마나슬루의 현지 이름이 '풍겐'이기도 한데 풍겐은 그곳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자 팔찌라는 뜻이라고요.
세계 8위봉인 마나슬루를 등반하고자 하는 원정대들에게 사마가온 마을은 전진기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마을의 입구까지 뛰어나온 아이들이 '푸- 푸-'하면서 풍선을 달라고 했습니다.
집들은 대가 아래층은 가축이 사는 외양간이고 윗층은 사람이 사는 살림집인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집안 마당에서 곡식들을 털고있던 어른이 아이들과 우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돌로 만든 집들을 한참 통과하니 롯지들이 나타납니다. 욕실 완비, 샤워장, 키친 등등이라고 영어로 적어놓은 입간판이 반가왔습니다. 롯지 마당에 텐트를 다 칠 때까지 우리는 바람과 구름을 피해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박하게 짜놓은 나무 침대와 의자와 식탁이 있는 그 부엌이 퍽 마음에 듭니다. 더구나 앉아서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곳에 유리창이 있습니다. 간유리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주인도 없이 방울소리를 내며 혼자 걸어오는 야크도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접하지 못한 거칠고 성긴 아름다움입니다.
문밖에 한 발자국만 나가면 눈이 시린 자연의 풍광이 넓고 시원하게 한눈에 다 펼쳐집니다. 그런데도, 작은 프레임으로 잘려진 유리창 풍경을 멋지다고 감탄하고, 그 부엌에서 이야기 나누고 밥을 먹는 것을 몹시 즐겁게 여기는 저는 아무래도 완벽한 자연주의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자연을 좋아하긴 하지만, 원시의 자연보다는 조금이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문명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에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부엌 내부에는 나무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밀고 들어가면 조리를 할 수 있는 어두운 방이 또 하나 있는데, 둘러가며 찬장이 있고, 중앙에 작은 홈이 있고 거기에 불을 피웁니다. 굴뚝도 없이 물을 끓이고 있는 화덕입니다. 그 틈에 끼어서 저도 곁불을 얻어 쬐었습니다. 들어도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불 앞에서 손가락을 쫙 펼치고 순진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이 익고 훈훈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곧, 유리창이 있고 식탁이 있는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마당으로 통하는 나무문이 심하게 덜컹입니다. 바람이 몹시 붑니다.
잠시 밖에 나오니 이제 설산은 구름으로 가렸습니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몰려드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아직 오후인데 주변이 어둑어둑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지리산이나 한라산에만 가도 구름이 발아래로 보이는데 그곳에 구름이 대낮부터 그렇게 몰려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빠상이 저녁을 먹기 전 우리에게 찐 감자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향신료를 넣지 않은 알감자는 무척 맛이 있었습니다.
마을 부인이 전화기 앞에서 통화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보고 다시 전화기쪽에 시선을 돌립니다.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져서인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부인의 모습이 신기해서 저는 다시 한 번 부인을 보게 됩니다. 깔끔한 차림에 예쁜 귀고리를 한 젊은 부인입니다.
볼 일이 있거나 궁금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전화기 앞에서 줄을 서서 한국으로 전화를 겁니다.
여행을 떠나면 거의 전화를 걸지 않는 저이지만 멀리 있는 가족들을 오랜만에 떠올려 봅니다. 제가 행복하니 가족들도 모두 행복하리라 믿습니다.
trek10 산뜻한 봄나들이 (사마가온 고소적응일)
트레킹에서 처음 맞는 휴일입니다. 마당에 펄럭이는 타르초가 국경일의 만국기처럼 신나게 팔랑입니다.
저는 멀미하듯 울렁거리던 고산증도 사라지고, 컨디션이 매우 좋습니다. 학생때의 토요일 밤처럼 지난 밤엔, 늦도록 렌턴을 켜놓고, 날짜를 더듬어 트레킹 메모도 하고, 가져온 책도 뒤적여 보았습니다. 집에서 짐을 싸올 때는, 운행표를 참고하면서 책이나 노트를 신중하게 골라서 가져왔었는데, 가져온 책이 잘 읽히지 않습니다.
시간표만 보면 항상 운행이 일찍 끝나고, 식사도 전혀 제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길래 여유가 많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텐트 속으로 돌아오면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잠을 자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만큼 바빴습니다. 사실 시간이 9시 정도이고, 아침에 6시에 일어나니 서너시간쯤 여유를 낼 수도 있지만, 그 시간들은 너무 습하거나, 춥거나, 아프거나 피곤하여서, 집에서도 읽히지 않던 책이 더 잘 읽힐리는 없었습니다.
욕심을 내서 잘 안읽히지만, 읽어야만 할 것같은 교양이 풍부해지는 책을 가져간 것은 판단미스였습니다. 텔레비전을 대신해줄 재미난 책이라면 너무 빨리 읽어버려서 짐이 될까봐 나름대로 머리를 썼는데, 안읽히는 책 역시 그냥 짐이 되고 만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도집이나 경전을 가져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가이드 타시의 배낭에는 커다란 경전이 들어 있어서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독경하는 소리가 들렸었습니다.
느긋하게 일어났는데도, 아침을 먹기까지 시간이 넉넉합니다. 모두들 더 자도 되는 시간인데도 일찍 일어나 초르텐 근처를 산책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늘에 마나슬루가 햇빛을 받아 황금처럼 빛납니다.
모두가 돌아오는 시간에 저도 느릿느릿 아침산책을 나갔습니다.
마을의 풍경은 지금껏 보았던 풍경들과 사뭇 다릅니다. 무엇보다 벌판에 고삐도 물리지 않고 풀어져 있는 야크들이 신기합니다. 간밤에는 소방울 소리들도 들렸는데 야크들 목에 걸린 큰 방울입니다. 움직일 때마다 깊고 고요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설산은 바로 코앞에서 보석처럼 하얗게 빛이 나고, 넘쳐나는 마니월이 풍요롭게 길에 쌓여 있습니다. 깎아지른 높은 산과 초르텐의 나지막한 탑이 이 세상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함께 있었던 듯 정답게 잘 어울립니다.
초르텐 속으로 들어가 희미하게 물감이 빠진 만다라를 구경합니다. 흔적으로만 남았어도 부처님의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마을의 주민들도 가끔은 그렇게 이방인들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그 그림, 그 말씀들을 들여다 볼 것인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빙하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져서 짐도 가벼워질까 약간 기대를 했는데, 배낭 속에 윈드스토퍼를 넣고, 물통과 깔개를 각각 양쪽 배낭주머니에 끼우고,모자를 쓰고 스틱을 잡으니 하나도 뺄 것이 없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게입니다.
정작 진짜 여유로운 휴일을 맞은 이들은 텐트를 가지고 이동하는 우리 스텝들입니다. 하루 텐트를 안걷어도 되니 그들은 자기들 먹을 밥만 해서 먹고는 아침부터 장부를 펼치고 카드놀이를 합니다. 알고보니 그들의 카드놀이는 돈을 걸고 하는 놀이입니다.주방장 노르지는 보온병과 치즈와 비슷켙이 담긴 간단한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배낭에 넣고 타시와 함께 우리를 따라왔습니다.
짧은 지류위에 놓인 다리들을 건너고 야크가 놀고 있는 벌판을 지납니다.
할머니와 어린 아이가 벌판에 나와 있다가 우리를 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줍니다. 그리고 자기 모습을 한 번 보자고 합니다.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보고는 좋아합니다. 욕심없는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저 한 번, 자기의 모습이 어떻게 찍혔는가를 보자고 하는 것 말고는 그저 미소뿐입니다.
빙하에 가기 전 햇빛에 반사되는 마나슬루를 보면서 커다란 돌 사이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었는데도 야크 치즈가 맛있습니다. 어린날에 '하이디'라는 책을 좋아했는데,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살기로 했을 때, 맨처음 놀란 눈으로 바라본 것은 커다란 보시기에 따라주는 염소우유와 두툼하게 썰은 염소치즈입니다.
아무렇게나 툭툭 썰은 야성적인 치즈를 설산을 바라보고 햇빛과 함께 먹으니 어린 시절의 꿈 한가지가 이루어진 것만 같아 흐뭇합니다. 하이디만했던 조카들이 대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하이디를 동경하는 어린이가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야크는 고도 3000미터 이상에서 야생초만 먹고 자라는 설산의 동물입니다.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야크는 야크와 소의 교잡종 수컷 ‘쪼프쿄’나 교잡종 암컷 ‘쫌’이고 순종의 암컷 야크들을 부르는 정확한 용어가 따로 있다고 했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털이 덥수룩한 그 동물들을 구별할 재간이 없어서 모두를 뭉뚱그려 ‘야크’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야크치즈는 요즘 흔치않은 무공해표입니다. 무공해 음식이 대개 그렇듯이 야크치즈도 조금 질기고 거친 맛이 납니다.
빙하의 물은 유록색이었고, 너무 까마득히 낮은 벼랑 아래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빙하는 사실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백록담이랑 비슷하다.”고 했다가 “이것은 만년설이 녹은 물이야.”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래도 하루종일 걸어서 만났던 백록담만큼은 감격적이지도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몇 날 며칠을 걸어서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빙하를 만났는데 말이지요.
아마도 얼음장처럼 차갑겠지, 그런 마음으로, 까마득히 아래로 이어진 빙하에 빠지지 않게 발밑을 주의 하면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노랗게 꽃이 피고 냇물이 졸졸 흐르는 마을도 지나쳐 왔습니다.
그곳에서 설레이는 봄, 기억속의 봄을 만났습니다.
들이마신 숨이 촉촉하게 공기는 신선합니다. 얼었던 땅이 녹아서 질척이고 나비들이 날고 햇빛이 맑고 따뜻한 그 봄의 기운은, 언제나 기억속에만 존재하던 어린날의 봄입니다.
기억속에 봄아침의 풍경은 대강 이렇습니다.
마당에 노란 병아리들이 발자국을 만들며 돌아다니고, 방금 감은 머리를 큰 빗으로 빗던 엄마가 “다람쥐다”해서 제가 돌아봤고, 라디오에서는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라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장면은 곧 바뀌어서 새싹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아지랑이도 피어나고 냇물도 졸졸졸 흐르며 땅이 질척이는 어떤 밭에서 엄마는 햇살을 등에 받고 나물을 캐고 있었고, 저는 작은 냇물을 건너려고 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인생의 단 하루,로 기억되는 그 촉촉하고 선명한 봄날의 느낌은 늘 생생하게 마음속에 살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영 찾을수 없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먼 옛날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복원되듯이 생생하게 그 느낌을 되찾았습니다. 습기, 바람, 햇빛 모두 따뜻하며 설레였습니다. 마음이 풀어져 저는 그대로 봄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놀랍고도 기뻤습니다. 숨 쉬는 일이 가벼웠습니다.
내려오면서 곰빠에 들렀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곰빠의 문은 굳건히 닫혀 있습니다. 곰빠는 티베트식 절인데 스님들이 그곳에 상주하지 않고, 마을에 살면서 시간에 맞추어 기도를 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밖에서나 볼 수 있는 곰빠에 걸린 장식물들은 오랜 햇빛과 바람과 먼지 앞에 빛이 바랬습니다. 하지만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름다움 앞에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설산이 늘 굽어보고 있고, 주변이 황홀하도록 평화로운 그 땅에서 그보다 더 큰 아름다움으로 부처님을 공양하고 장엄하고자 한 사람들의 정성이 갸륵하게 시간의 먼지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뚜벅뚜벅 걸어가 저는 그 아름다움에 경배하였습니다.
저녁시간에 맞추어 다시 곰빠로 올라와 보기로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열어보지 못한 곰빠의 내부에는 어떤 부처님, 어떤 신비한 아름다움이 보존되어 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곰빠를 둘러보느라 일행과 떨어진 저는 언덕을 내려오면서 아주 느릿한 속도로 삽을 가지고 길을 고르는 티베트 스님을 만났습니다. 다시 길을 돌아서 잃어버린 길을 찾느라 한참을 헤맨 다음에 만났어도 노스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 흙을 다독입니다.
길을 다시 찾아서 빙하갈 때 보았던 마니월과 마니석들을 보았습니다. 혼인을 치르거나,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사람들은 돈을 내서 절에 부탁을 하고, 그러면 곰빠의 스님들이 손수 마니석의 그림을 그려준다고 합니다.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쌓여있는 마니월, 초르텐, 곰빠 등이 모두 마음에 무언가가 사무친 한사람 한사람의 발원으로 이루어졌고, 좀 전에 길을 고르던 스님의 그 느릿느릿한 속도로 그 모든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하니 새삼 고맙고 경건했습니다.
제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을 낮추고, 근원을 돌아보고, 영혼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과 마음들이 돌 위의 글씨로 따뜻하게 새겨졌습니다.
오전엔 날씨가 좋았는데 오후부터는 어제처럼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곳은 높은 곳이라서 항상 그렇게 오후가 되면 구름이 낀다고 했습니다.
빙하에 다녀와서 모두가 쉬고 있는 사이에 저는 준비해간 고무장갑을 끼고 차가운 냇물에서 빨래를 했습니다. 냇물은 몹시 차가와서 그야말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빨래비누가 아닌 가루비누를 가져갔는데 거품이 너무 많이 일었습니다.
차마 냇물 위편에 야크가 물을 먹고 있는 그 맑은 냇물에 거품을 버리지 못하고 덤불이 있는 땅에 버리는데 그래봤자 흙속에 화학성분이 스밀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심심해보이는 아이 하나가 저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어느날, 아이가 환경오염이니 화학세제니 이런 것들을 깨우치게 된다면, 기억속에 좋지 않은 이방인으로 제가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매우 미안했습니다.
내복을 입고 다운점퍼도 입었는데도 빨래가 끝날 때쯤이면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현지인들처럼 나무덤불위에 빨래들을 던지듯이 널어서 물기를 뺀 다음에 텐트 사이에 연결된 줄에 널었습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빨래집개가 여러 개 필요했습니다. 빨래집개는 열 개를 준비해 갔는데 그나마 몇 개를 잃어버려서 아쉬웠습니다. 빨래를 안해도 땀에 축축해진 옷들을 말려야 하니, 빨래집개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잠깐 텐트속에서 휴식을 하다가 오후 느지감치 마을 산책을 했습니다.
납작납작 엎드린 듯한 마을 집들은 저마다 분주했습니다. 마당에서 탈곡한 곡식을 말리거나, 연기를 피워놓고 곡식을 볶거나, 볼이 빨간 아이들이 신나게 마을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활기와 온기가 가득해 보입니다.
저아래 연기가 나는 외딴집에 까지 가보니, 한 부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곡식을 볶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봅니다. 서있는 저를 보고는 수줍게 웃습니다. 그곳에 들어간다면 볶은 보리가루로 만든 차를 얻어마실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그냥 저도 한 번 웃고는 돌아섭니다.
여인들의 부엌은 신성한 공간이어서 외부인들을 잘 들여놓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네팔’이라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오후 티타임의 주된 화제는 며칠 후 라르키아 고개를 넘는 일입니다. 오후가 되면 구름이 몰려와서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서둘러 출발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밤에도 너무나 추웠는데, 라르키아를 넘는 새벽은 얼마나 추울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탁이 있는 부엌방이 제일 따뜻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나서도 우리는 타시가 가져다 준 가스불을 켜놓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람이 덜컹덜컹 유리창을 흔들었습니다.
바깥에 퍼진 검은 어둠은 불빛으로 발갛게 물든 우리의 얼굴을 한 장의 사진처럼 간유리에 새겨주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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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비로운 설산...사진으로도 가슴 찡하는 감동이..._()()()_
요즘은 혜명화님의 트레킹기 읽는재미가 좋습니다, 사진도 좋고..글도 좋고..
얼른 사진만 훑어 보고 갑니다.
힘들고 알찬 여행을 하면서 소중한것들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전해 주섰서 고맙습니다._()()()_
마나슬루의 신성한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시니 몸과 마음에 맑은 기운으로 한가득입니다...
지혜의 산 마나슬루 ... 느낌이 좋습니다 ^^
라르키아 고개를 넘는 새벽이 넘 춥지 않길...^^ 티비에서 만화로도 보았던 알프스 소녀디다시 보아도 어릴 적 그 느낌일까 궁금해집니다......
慧明華님의 秀麗한 筆致, 含縮된 慈悲, 法華行者的(?) 銘想, 物我一體 自然接近, '코스모포리탄'적 人間 사랑의 좋은 글 잘 읽고 있답니다,,, !
함께 춥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또 따뜻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고,,, 혜명화님과 함께하는 트레킹. 몸도 마음도 새로와집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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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을 여행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해 주시고 사진까지 준비해 주셔서 같이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임니다.고맙습니다._()()()_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감사히 잘 보고 읽고 있습니다..ㅎㅎ
파란 하늘 설산 거기에 혜명화님이 들어 있네요.옴마니 반메홈...._()()()_
덕분입니다 _()()()_
혜명화님 덕택에 가만히 앉아서 좋은 여행 잘 했습니다....고맙습니다.
대단 하십니다.혜명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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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뒤에 찾아온 慧明華 님의 행복에 대하여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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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 너무 아름답습니다.
마나슬루의 하얀 자태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