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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나는 왕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2장 6-12절
찬송 329장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함과 존귀함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십시오. 범죄하므로 타락하기 전 아담과 그의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웠습니까? 그들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온 세상 만물이 다 그들 앞에 즐거움으로 복종하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에서 왕 노릇하며 살아가는데 아무런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사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2:19-20)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하지만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타락하자 인류의 역사는 한없이 비참하고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타락이란 말의 뜻은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본래 서 있던 자리에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가 지닌 고귀하고 존귀한 모든 성품을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한없이 부요하고 풍성한 자리에서 떠나 한없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렘17:9)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가장 부패하고 악한 것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은 더 이상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닙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온갖 정욕과 욕망들을 보십시오. 또 그 탐욕이 만들어낸 끔찍하고 비참한 열매들을 보십시오. 자기 욕망의 만족을 위해 세상 모든 만물을 파멸 가운데로 끌고 가는 끔찍한 모습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 곧 전쟁, 기근, 사고, 온갖 범죄들, 그리고 환경오염으로부터 오는 자연재해. 어느 것 하나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을 통해 그 실상을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타락한 다음부터 인류의 역사는 비참함과 부끄러움의 역사입니다. 끔찍한 악행 가운데 살면서도 인생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역사입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 어떤 피조물도 가지지 못한 고귀함과 존귀함을 사람들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것들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앞서 말씀을 들은 대로입니다. 다른 피조물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 피조물 가운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요? 눈을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놀라운 지혜와 그 지혜를 따라 이루어진 문명의 풍성함과 아름다운 열매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고전들은 또 어떻습니까? 수많은 지혜의 책들과 철학서들은 보고 있노라면 그 생각의 넓이와 깊이에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따름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혜로울 수 있지?
이렇게 인류는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 대부분을 잃어버렸지만, 아주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 타락한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사람들은 위대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왕 노릇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주신 자리가 너무너무 귀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기 전 아담과 그의 아내를 향해서도, 타락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아담의 후손을 향해서도, 그리고 구원받아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향해서도, 서 있는 자리에서 항상 왕 노릇하며 살아가라 하십니다. 서 있는 모든 자리에서 왕 노릇 잘하기를 항상 사모합시다. 그 자리에서 충성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갑시다. 이를 위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또 사모합시다.
하나님, 저를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가 서 있는 모든 자리에서ㅑ 왕 노릇 잘 하며 살게 해주세요.
인류가 생산한 지혜서 대부분은 세상을 잘 다스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서삼경이나 수많은 고대 철학자들의 책들이 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지혜서들과 철학서들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생산하는 거의 모든 책들은 통치자들를 위한 지혜서들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세요? 이는 그냥 읽고 지나가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서들이나 철학서들을 읽을 때 그 저작 목적을 알고 자세히 읽으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습니다.
성경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를 말씀하면서 이 세상의 지혜와 함께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에 대해 말씀하는 성경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고전2:6)
여기서 통치자는 당연히 다스리는 사람, 곧 관원입니다. 앞서 말씀을 나눈 대로 이 세상 지혜의 대부분은 이 세상 통치자들과 관원들을 위한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를 한없이 탄복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하지만 또 그 지혜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통치자들을 위한 지혜일뿐입니다. 왜 이렇게 이 세상 지혜는 이중성을 보일까요? 그 지혜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지혜이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 대부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서 나온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을 향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무릇 통치자는 백성들 앞에서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백성들 앞에서 항상 최대한 위엄을 갖추어 억압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모든 통치자는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섬겨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끔은 억압하여 겁을 주고 가끔은 달래기도 하는 방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입니까? 당연히 모든 통치자는 백성을 어버이처럼 섬겨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항상 이 말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때로 첫 번째나 세 번째가 훨씬 더 지혜로울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락하여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환경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지혜들도 그 한계가 뚜렷합니다. 이 세상 지혜는 겉으로 볼 때, 너무너무 완벽하여 모든 사람을 탄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 너무너무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지혜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한 지혜나 철학이라 할지라도 악한 통치자가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가 다스리는 나라 전체가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도 예외가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 안에 드러난 영적 원리들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런데 그것이 악한 자들, 곧 종교 사기꾼들의 손에 의해 잘못 사용될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됩니까? 생명의 종교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거짓말쟁이들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준다며 미혹하는 사교 집단들이 이 땅에서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들을 보십시오. 어디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이런 일을 행하고 저런 일을 행하는 기독교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끝이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답답한지요.
지금까지 함께 나눈 말씀을 정리해볼까요?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하며 거룩한 존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므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의 대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조차 우리의 탐욕을 위해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타락하여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세상입니다. 통치자가 의를 따라 행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납니다. 이처럼 이 세상 지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를 한없이 실망시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지혜가 가진 모든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지혜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지혜 또한 통치자들을 위한 지혜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어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담아주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세상 만물을 잘 다스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사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