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지하철 성수역 주일 아침은 촌스런 청바지 물결로 넘쳐났다. 서울시민들의 활용도가 현격히 떨어진 공중전화 박스에는 어김없이 청바지들이 일렬종대로 서 있다. 머리 위로 묵직한 전동차 철로를 긁는 소리가 요란하고, 뒷전에 줄지어 선 다른 청바지들의 입은 언제나 얌전한 편은 못된다. 고향으로 간신히 접선된 수화기를 한 손에 쥐고 청바지들은 한없이 명랑하다.
채광상태가 제법 좋은 성수역 역사에 들어설 때면 전화기에 붙어 있는 통짜 청바지 보다는 당연히 잘록하고 맵시있는 청바지에 눈이 쏠리게 된다. 그녀들은 더군다나 가만히 서 있는 법도 없이 깡총깡총 소리까지 내면서 뛰어다닌다. 볕 좋은 주일 오후면 청바지에 원색 상의를 걸친 그녀들은 화사하고 눈 부시다. 나는 내심 그녀들을 '꽃님'이라 불렀다. (영화판 노동자인 한 친구의 전언에 의하면, 원색을 소화할 수 있는 건 꽃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화사한 꽃님들이 나풀거리며 달려가는 곳은 통짜 청바지들의 품이다. 주일 아침이면 나는 가벼운 실의에 빠지곤 했다.
성수역 철로는 네 개나 된다. 간혹 청바지들은 우왕좌왕 분주히 계단을 오르내리다 별 내용 없는 표지판을 멀거니 바라보며 서로 실갱이한다. 이내 그들은 나른한 주일 아침 서울시민들 중 가장 하릴없어 보이는 인물을 찾아낸다. 내가 현장에 있는 한, 대개는 내가 가장 하릴없어 보인다. 억울할 건 없지만 문제는 나도 서울지리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십 여 년을 지하철을 타고 다닌 나는 함께 고심하기 시작한다. 놀이동산...은 특히 쥐약이다. 청바지들에게 "당신 간첩 아냐?"라는 의심의 눈길을 받을 때면 난 정말 쥐약이라도 먹고 싶었다. '차라리... 종로에 가는 건 어떨까, 내가 거긴 잘 알거든....' 속으로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아무튼.
어느 날은 동네 식료품점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가 "얘, 외국애들이 말도 참 잘하네? 얼마예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어디서 배웠나 몰라?" 하며 신통해 하셨다. 그 무렵 한 시사프로에 소개된 외국노동자를 위한 한국어교재에는 "우리도 사람이예요. 함부로 때리면 안되요."라는 사람의 말이 사람의 세상을 모질게 의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주일 오전의 청바지 젊은이들만을 보셨으리라. 아들은 별 말 없이 어머니와 함께 평화롭게 웃는다.
내가 나고 자란 성수동 지역주민들의 주린 밤을 달래주던 건 라면이다. 그 방면으로는 제법 전문가다. 늦은 밤 편의점에서 마주친 청바지는 나와 함께 라면을 고른다. 노란 진라면을 꺼내드는 그를 만류하면서 나는 넌지시 빨간봉다리 신라면을 손으로 가리킨다. "It's better." 엄지를 추켜세우며 씨익-웃음을 날린다. "그래요? 고.맙.슴.니.다" 청바지도 씨익- 웃는다.
주일 아침 어김없이 몰려 나오는 성수역 청바지들은 육중한 콘크리트 역사를 살짝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청바지 물결은 일요일 오전, 아주 잠시만 지하철 성수역을 점령한다. 주일이 아닌 날들, 그들은 청바지 대신 성수동 지역의 남정네들이 입었던 남색 점퍼와 때절은 푸른 바지를 입고 일한다. 선반기와 프레스기 옆에 달라붙어 굵은 땀 흘리는 저이는 분명 우리 성수동 아버지들의 후예다. 휴식시간의 섬유공장 얇은 철벽 틈으로 밖을 흘끔거리다 행인과 마주친 수줍고 야무진 눈매는 성수동 아이들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그것을 꼭 닮았다.
어디선가 프레스기에 잘려나간 손가락을 이국 쓰레기통에 묻고 빈 주머니로 쫓겨나가는 이주 노동자들의 소식. 공장주임 쇠파이프에 갈비뼈 잘게 바스러져 나가는 소리와 "우리도 사람이예요"라는 흐느낌이 환기통 너머로 어수선하게 들려와도 주일 아침 화사한 외출길 나선 성수역 곱게 다린 청바지들을 바라보며 성수동 주민들은 안심한다.
이태 전 겨울에는 성수역으로 닿는 긴 도로 위로 "<경> XX공장 사장님 장녀 A양 서울대 법대 합격<축>"라는 플랜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바람결에 요란히 펄럭이는 플랜카드를 건조히 바라보면서 전도유망한 A양이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기를, XX공장 이주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고 있기를 기원했다. 성수동은 평안하다. ... 지난 10월 26일. 근로복지공단 이용석씨가 분신을 했던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 반대집회가 함께 열렸다. 나는 한 이주노동자 연대센터에 오른 구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nodong_visa jaeng_chi ha_go ingan dap ke sara_boja !
[10월26일 종로. 이주노동자 Biddu씨]
인간답게 살아보자. 그게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2003년 11월(?) 대구지법 박재현 판사님께서는 그들의 ‘인간다움’은 법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듯 '최저임금법 및 근로기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사장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외 산업연수생의 경우 산업연수계약에 따라 국내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돼있고 입국당시 연수계약을 체결한 현지법인이 지급할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들을 고용한 회사는 사실상 고용관계에 있지만 직접적인 임금지급 의무는 없다"는게 판결문의 취지다. 11월 11일과 12일 연달아 두 이주노동자의 부고가 들려왔다. 방글라데시 출신 비쿠(34)씨는 목을 매고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다리카(32)씨는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었다 한다. 15일에는 4년이상 체류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강제추방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의 이웃들, 노동형제들… 이국땅에서 맞이하던 단 하루의 안식일 곱게 다린 청바지들의 소란스럽던 평화는 아직 안녕한가…Stop Crack down.
Achieve labour 3 rights! 노동삼권 쟁취!
No EPS ! 고용허가제 반대 !
Stop Crack down ! 강제 단속추방 중단 !
* 안양이주노동자의 집,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다큐멘터리 사진 등에서 무단으로 사진을 퍼왔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