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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발 일 시 | 지역 산이름 높이m | 소 재 지 | 산행 시간 | 참 고 사 항 |
12월 13일 8시 | 칠곡 가산(902M)가산 산성길…산림청200대 명산 | 경북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 경계를 이루는 가산 (902m) | 5.5 | 300km 산성길…산림청200대 명산 |
12월 20일 8시 | 관룡산+화왕산 756m | 경남 창녕군 창녕읍 | 5.0 | 250km 일2산 산행 억새 산행 100대 명산 |
12월 27일 | 울산 무거동 녹동가든 | 2018년 총회 16:00~ 총회후 3층 노래방 3시간 2차 | 2018 마지막 모임 회비 2만원 | |
2019년 1월 3일 8시 | -동봉- 갓바위 | 대구 신무동 팔공산 | 6.0 | 450km 100대 명산 갓바위 정초 기도 |
6. 12월 13일 차량운행코스
동천체육관 07:20-학성초교앞 07:22-야음동국민병원앞 07:30-
수암신협 07:35- 시청앞 07:40- 태화로타리 아래 주차장 08:00-
신복로타리 08:10-언양톨게이트 08:25- 영천ic
7. 비상 연락망 : 회장 010 6584 8421 대장 010 8070 4988 총무 010 3338 1534
차량: 동천고속관광 울산 72바 1926호 기사 김항웅 010 3558 7610
산행 예약 좌석표
운전석 | 출입문 | |||
4.대장 | 3.회장 | 2.총 무 | 1.하산주 | |
8.산이G | 7.안순연 | 6.우 드 | 5.석 희 | |
12.산이G | 11.산이G | 10.산이G | 9.최성훈 | |
16.대장G | 15.고바우 | 14.허만용 | 13.강같은평화 | |
20.대장G | 19.박은식 | 18.이명우 | 17.추억 | |
24.이미옥 | 23.은예 | 22.산사랑 | 21.아이되니 | |
28.임대현 | 27.임대현 | 26.명곡 | 25.동반자 | |
32.청파 | 31.류재옥 | 30.총무G | 29.총무G | |
36.엄사장 | 35.엄사장 | 34.이만우 | 33.이만우 | |
40.엄사장 | 39.엄사장 | 38.이만우 | 37.이만우 | |
45.덕자님 | 44.덕자님 | 43.덕자님 | 42.덕자님 | 41.덕자님 |
【산성길 산행, 그 길에서 민초들이 살았을 삶을 함께 느껴보다】
인간들의 삶에 있어 우리 곁의 산은 어떤 존재인가. 산이라는 존재는 우선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매일 눈을 뜨면 볼 수
있고 어둠이 져도 그 자리에 있으니 필요하든 안하든 언제나 기대어 있거나 기댈 수 있는 둔덕 같은 존재가 바로 산이다. 물론 산이 어디든지 있는
것은 아니다. 산이 없는 나라도 있고 산이 없는 지방이나 고장도 있긴 하다. 또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 있거나 모래 바람이 늘상 날리는 황폐한
사막의 땅도 있다. 산이 있는 나라는 복받은 나라이고 그 나라의 국민은 복받은 존재다. 끝없는 수평선이나 지평선만 바라보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고 한다. 그것은 눈이 기댈 수 있는 곡선의 사물이 없어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곡선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산이라는 거대함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산은 살아있는 생명에게 있어서는 위안의 존재이고 기대고
안기고 싶은 품이다. 그래서 사람이 모여사는 곳은 늘 배산의 구조이다. 지금은 도시화 기계화가 되어 있던 산도 순식간에 평지를 만들어 그곳에
하늘로 치솟는 건물이 나날이 주거의 형태가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배산의 구조는 확고하게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은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언제나 받아 주었지 내치지 않았다. 그래서 산은 기쁜일이 있을 때보다 슬프거나 억울한 것들이 있을 때 더 많이 품어 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쁘거나 즐거운 일로는 산에 의지하지 않는다. 좋은 일은 세간에서 여러사람들과 나누고 즐기지만 힘든 일은 혼자 삭이며 그 위안을 받을 대상을
산을 통해 받아 왔다. 평상 시 행복할 때 산으로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세상의 부질없음을 피해 찾아가는 곳이 산이었고, 외세의 침탈이나 약탈을
피해 숨어든 곳도 산이었다. 강력한 국력을 키우지 못한 왕조시대에 산 민초들은 늘 힘겹고 불안한 삶을 살았다. 국난을 당해 치욕을 많이 당한
민족도 아마 우리 조상들일 것이다. 크고 작은 국난이 있을 때마다 숨을 때라곤 산 말고는 어디가 있었겠는가. 산속에 산성이 많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자신의 삶을, 가족의 삶을, 백성의 삶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기에 산으로 들어가 산성을 구축하고 그 속에서 고통의 삶을 조금이라도
위안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살다간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데는 산성을 찾아 그 속을 걸어보는 일이다.
깊이 있게 알 수는 없겠지만 흔적들이 알려주는 그것만으로도 민초들의 어려운 삶은 물론 산이 인간에게 배려하고 품어준 그 은혜가 얼마인지를
느낄 수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찾아가 볼 일이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팔공산의 정기가 뻗어 내리는 '팔공지맥'상에 놓인 '가산산성'이다.
사적 216호인 가산산성은 험준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후기의 축성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 축조된
것으로 6.25 전쟁 때는 격렬한 격전지였다고 해 한스러움과 원망이 듬뿍 묻혀있는 곳이다. 가산은 팔공산 도립공원 가산산성지구에 속해 있어
대구시민들에게는 인기있는 근교산행이지만 팔공지맥상에 놓여 있는 산이자 산성길로 이루어져 있어 전국의 산꾼이라면 한번 쯤은 걷고 싶은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가팔환초'라 불리는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을 잇는 40여Km의 종주코스 출발점이기도 한 가산은 이 지역의 전문
산꾼들이 도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고 걷기도 수월해 절기상 '우수'가 지난 다음 날 이곳을 찾았다. 산행의 시작은
'영남제일관방'이라는 현판이 붙은 산성의 관문인 '진남문'에서 시작한다. 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얼마가지 않는 지점에서 원편으로 꺽어지는
산길을 오르면 산성의 흔적이 묻어나는 산길을 따른다. 그러다 철계단을 만나 그곳을 오르면 '남포루전망대'로 불리는 전망바위를 만나는데
탁월한 조망을 선물해 준다. 뒤돌아보면 대구의 근교산인 도덕산과 응해산이 연무속에서도 불쑥 솟아 다가서고 좌측으로는 팔공산과 가산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팔공지맥이 힘차게 뻗어져 있음에 마음 한켠 감동이 인다. 전망바위를 내려서서 남포루에 이르면 복원된 석축산성이 앞을
막아서며 어느 초병이 접근금지를 외치는 환청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러다 작은 쪽문처럼 생긴 석문을 지나면 산성길에 올라서고 여기서부터
가산바위까지는 잘 다듬어진 산성길 탐방이 이어진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자니 옛 민초들이 이 산성을 쌓고 또 지키기
위해 온 고통을 감내했던 일그러진 얼굴들과 거친 한숨을 품어내는 상상을 하게 한다. 산행을 왔지만 산성길에서는 산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역사 위를 걷고 있다. 처절하고 질곡의 삶을 이어간 산성지기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이 길을 걷는 의미가 없으리라. 그래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이 이처럼 모질고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가산산성 서북쪽 성벽사이에 위치한 '가산바위'에 올라서면 상상은 더욱 머리속을 파고든다.
바위 상편은 평면으로 아주 넓다. 거암이라 옛 당시에는 망루 역할을 했을 것이고 좋을 때는 이곳에서 작은 잔치 같은 것도 했을 터이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산성을 지키는 외로움과 고독, 쓰라린 아픔들도 이곳에서 삭이고 쏟아 냈으리라. 어쩌면 홀로 서있는 이 바위가 더 고독
하고 외로웠을 수도 있어 한이 서린 바위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 만의 생각일까. 그렇게 가산바위를 홀로 남겨둔 채 중문을
거쳐 가산에 오른다. 산성 내의 산이라 그런지 산봉이라 하기엔 좀 머쓱한 평지 같은 곳에 정상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주변은 유적발굴을 하는지
대개 어수선한 분위기다. 표지석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고지에 올라서기 전 신선이 머무른 바위인 '유선대'와 성곽 전망터를 갔다오기로 한다.
맑은 날이면 거산인 팔공산의 유장한 산세를 제일 잘 볼 수 있으련만 연무가 낀 날의 조망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삼각점봉에서 치키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팔공지맥 구간으로써 석축산성이긴 하지만 가파른 자연산세를 이용한 것이 요새 같은 분위기가 든다. 가파른 산성길이 끝나고
숲길의 산성길로 접어들면 그 길에 '할배.할매바위'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럴 듯한 형상에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의 혜안이 외경스러워진다.
'치키봉'은 이정표 기둥에 이름이 써있다. 외국어 같은 산명이어서 혹여 6.25 격전지였던 당시 미군들이 붙인 이름인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산세가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를 골라낼 때 사용하는 '키'와 닮았다는 데서 유래해 그런 이름이라는데 어쨋든 특이한 산봉이다. 치키봉을 뒤로
하고 팔공지맥을 벗어나 하산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처음 출발 시에 지났던 산성탐방지원센터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진남문으로 원점회귀하면
산성길 탐방 산행은 모두 마친다.
오늘 산행의 시작점이자 나중 회귀점이 될 가사산성의 <진남문> 주차장.
진남문을 들어서서 잠시 올라서다 보면 만나는 <해원정사> 입구. (들어가 보지는 않고 여기서 우측으로 따른다)
다시 길을 꺽어 돌아가면 만나는 가산산성의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그 길을 쭈욱 따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은 산행방향이고, 우측 길은 나중 산행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이다.
다시 여기서 산성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려면 좌측으로 향해야 하고, 직진은 산성내 동문으로 이어지는데~~~
산성길이 있는 오름길을 따라 산으로 들면 키만 쭉쭉 뻗은 소나숲길을 만나게 되고~~~
등로옆으로는 석축의 흔적들이 있는 것을 살펴보면서 산성길 산행을 서서히 즐기기 시작한다.
지금은 수림으로 빽빽히 가린 길이지만 옛 당시에는 민둥산이었을 것이고~~~
산속에 굴러다니는 바위나 돌을 힘들게 옮겨다 쌓았을 옛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현재는 과거를 통해서 살고 과거의 그 길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법.
바위전망대가 있는 계단길을 오르다 돌아본 지나온 숲길 풍경과 그 너머로 도덕산이 다가서고~~~
다시 좌측으로 조망각도를 돌려보면 팔공산 비로봉에서 파계봉과 한티재를 거쳐 치키봉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을 바라본다.
다시 바위전망대에 올라 산행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산성길 풍경
바위전망대를 내려서서 석축산성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면~~~
남포루 갈림길을 통과하게 되고~~~
사적 216호로 관리되고 있는 가산산성의 석축 성곽 앞에 서게 된다.
복원과 정비를 통해 성곽의 형태가 갖추어 졌지만 옛 민초들은 이런 돌들을 나르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을 터.
성곽을 들고나는 석문을 통과해 성곽 위에 올라서면~~~
여기서부터는 석축의 산성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다.
그러다 돌아본 풍경 속에 잠시 전에 올라 조망을 즐겼던 전망바위가 저곳에 있었음을 바라보면서~~~
산성길을 따라 걸으며 이 성곽을 쌓고 또 산성을 지켜내기 위해 힘든 삶을 살았을 당시의 흔적을 살펴본다.
외세의 침탈이 많았던 우리나라의 역사는 산이 많이 품고 있고~~~
전국 산지 곳곳에 크고 작은 산성들이 많은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산성이 온전히 보전된 것도 있고 허물어져 관리되지 않는 곳이 많이 있지만~~~
산은 그 역사를 그대로 고히 간직하고 있다. 물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숨겨져 있지만 말이다.
산이라는 존재는 역사적으로도 위대하다. 특히 산성을 통해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왔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역사의 현장이 이 길 위에 존재한다. 찬바람이 부는 이 길을 걷는 우리들은 역사를 읽는 인식이 얼마나 될까.
가까이 다가가 본 <가산바위>, 옛 당시에는 전망대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거암은 그 자체로 역사일 것이다.
신라의 고승 도선의 전설이 있다는 저 바위에 어떤 역사의 기운이 있는지 올라가 본다.
가산바위를 소개하는 안내 표지판을 읽어보고 나서는~~~
가산바위에 올라 되돌아 본 방금 전 걸어온 산성길의 풍경.
산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이 그 길에 서있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바위는 그들(민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도 생각해 본다.
사시사철 망루의 역할도 했을 것이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그들이 허리끈을 풀고 힘든 삶을 잠시 내려 놓았을 쉼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쉬면서 이런 주변 산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힘든 삶을 원망했을 수도, 또 그 원망도 내려 놓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품어주고 안아주는 산의 위안이 있었기에 힘들고 지친 세월들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리라.
가산바위를 내려서서 중문으로 향하는 산성 내 길을 걸어면서도 거친 삶을 산 당시의 모습들이 어련거리는 가운데~~~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 산성 내 '중문'을 통과한다.
중문을 통과하면 가산까지 이어지는 산성 내 등로는 이처럼 평탄길이어서 유유자적하게 되고~~~
유순한 길이어서 숲길을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걸으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여기서 가산방향은 좌측길이다.
가산을 지척에 두고 다시 갈리는 갈림길. (우측은 동문으로 가고, 직진은 가산 방향)
잠시 후면 올라서는 <가산> 정상. (표지석이 왜 여기에 있을까?)
가산 정상에서 바라본 유선대와 전망터 방향의 풍경
유선대. (용바위와 멀리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임)
성곽 전망터에서 바라본 <북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성곽 둘레의 풍경.
성곽 전망터에서 바라본 가운데 유선대와 가산 정상 풍경
성곽 전망터에서 바라본 팔공산 비로봉과 파계봉, 그리고 팔공지맥의 마루금의 풍광
성곽 전망터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의 풍경.
맑은 날 이곳 유선대에 서면 전망이 좋은데 연무가 끼고 역광인 상황에서는 이처럼 조망이 가린다.
유선대를 올라와 가산 정상에서 바라본 치키봉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의 유장한 풍광들.
자연산세를 이용한 것도 대단한데 이 능선에다 부족한 돌을 날라다가 성곽을 쌓은 민초들의 고생이 눈물겹다는 생각이 든다.
중문쪽에서 가산을 거치지 않고 동문을 거쳐 바로 이곳을 오가는 갈림길.
성곽을 따라 걷다가 괜찮은 전망터에서 되돌아 본 가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성곽 둘레길의 모습
세월의 무게가 듬뿍 묻어나는 성곽 터전. 우리는 이 길에서 당시의 흔적을 엿본다.
수림의 등로로 들어선 성곽 둘레길이자 지맥길인 이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민초들의 흔적을 엿보기 위해 걸었을 터.
인공 성곽을 대신한 거암도 자연 성곽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이는 이 지점을 넘어서다~~~
바람불지 않고 따스한 봄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어느 지점을 골라 '홍어삼탁'과 함께 우리들만의 오찬시간을 즐겨본다.
오찬을 마친 후 다시 진행된 등로에서 만나는 사람 형상의 거암 하나.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라고 하는데~~~
할아버지 바위는 형상으로 대충 알겠는데, 맞은 편의 할머니 바위는 형상이 아닌 것 같아 잘 모르겠다.
어쨋든 자연이 빚은 형상에다 이름을 갖다 붙여 놓은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저 봉우리를 올라서는데~~~
함께한 산객들이 이정표 앞에서 서성이며 인증삿을 하기에 왁자찌끌하고~~~
이정표 기둥에 치키봉이라 해놓은 이곳을 끝으로 팔공지맥을 벗어나 원점회귀를 위해 하산한다.
하산길에서의 갈림길. 우측의 휴게정자가 있는 계곡으로 내려서지 않고 직진의 능선을 향해 간다.
하산능선 길에 멋진 전망터가 있을까 싶어 이 길을 따라 내려서지만~~~
능선길은 빽빽한 소나무 숲길만 이어질 뿐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볼 것이라곤 멧돼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둘러쳐진 '철망울타리 산소'가 있는 것 외는~~~
그렇게 내려서면 포장임도를 만나면서 사실상의 산행은 여기서 끝이난다.
포장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 보면 탐방센터에서 올라오는 오전에 이미 걸었던 그 길을 만나면서 역으로 내려서면~~~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해원정사 앞에 다시 서게 되고 잠시 후 진남문을 나서면서 산성길 탐방 산행을 모두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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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신청
23,24번석 이미옥,김종희 예약합니다~^^
22번 예약합니다.
30번예약합니다
참석합니다
다른 일이 있어 24번석 김종희 사정상 산행 취소합니다
즐산하세요~^^
대장님2명자리예약합니다
산행취소합니다 최송합
블랙 취소한 자리 제가 가도되나요ᆢ? 가도되면 가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