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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 <샬롬전원채플> 설립해 열방을 향해 선교 … “복음에는 은퇴가 없다”
들꽃은 이름도 없이 피고 진다. 죽으면서 모든 홀씨를 산산이 뿌린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들꽃은 필 때보다 질 때가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영진교회 유덕신 원로목사는 교회 은퇴 후가 더 향기롭다. 오늘, 한 사람의 가치를 진심으로 안다. 허투루 낭비할 수 없기에 부지런히 품고 사랑한다.
1972년 대한신학교를 졸업했다. ‘2만 8천 동네에 우물을 파라’는 김치선 박사의 개척정신에 따라 서울 정능 가난한 산동네에 덕암교회를 개척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뜻하지 않은 폐병으로 사임해야만 했다. 아프다고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눈물로 기도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섰다.
1976년 5월 17일 서울 상계동에 영진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상계동은 변방이었다. 수도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아침이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줄을 섰다. 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직 한 길, 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겼다. 35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누구는 목회가 힘들다고 하지만 즐거운 동행이었다. 영진교회는 인생의 전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 속 교회는 영진교회 뿐이다.
65세가 되었을 때 교회를 은퇴하기로 마음 먹었다. 노회장, 교단 총회장을 지냈다. 노원지역 교회연합회장도 역임했다. 교단 헌법에 70세까지 목회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교회가 정체되었다. 그때 마침 제자가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5년 앞서 은퇴하는 것이 교회가 젊어지고, 생동감있게 성장할 것 같았다. 교회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다음세대에 비전을 던지고, 기존 세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2011년 3월 6일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원로로 추대되었다.
한 평생 목회만을 하며 달려왔다. 이것 밖에 모른다. 막상 현장에서 내려오니 허전했다. 가평 남이섬 자락에 2년간 둥지를 틀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100세 시대다. 비록 교회는 은퇴했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은퇴는 없다. 오히려 더 필요한 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선교를 위한 센터가 필요했다. 영진교회가 준 노후 퇴직금으로 포천 일동면 화동로에 <샬롬전원채플>를 설립했다. 영진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잘 자라서 결혼할 때 주례 서 준 10가정을 중심으로 ‘샬롬세계선교후원회’를 조직했다. 매달 선교회비는 1만원이다. 선교비 보다 소중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다.
건강한 교회 위해 5년 앞당겨 은퇴 … 원로목사의 삶은 조심스럽다
원로목사들과 아름다운 선교 동행, 동네 사람들과도 재미나게 살아
C국 신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세미나 개최
민웅기 목사, 최귀자 선교사, 유덕식 목사, 이종복 목사가 주일마다 돌아가면 설교한다.
샬롬전원채플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고요하고 평안하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쉴 공간이며 열방을 향한 선교센터다. 이곳에는 이종복 목사, 민웅기 목사, 최귀자 원장 네 분의 목회자가 돌아가며 설교한다. 평균 나이 79세, 40년을 목회한 원로들이다. 설교하는 목사는 영성이 살아있다. 말씀을 묵상하고 새벽에 깨어 있어야 설교도 하고, 그 열정으로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가르칠 수 있다. 지금까지 C국을 1년에 5, 6번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태국 치앙라이 화야실 국제신학교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신학생들을 이곳으로 초청해 세미나도 했다. 캄보디아, 베트남에도 선교비를 보내는 등 복음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달려간다.
“선교현장을 오가는 일이 끝나면 우리는 갈 곳이 딱 한 곳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우리가 갈 곳입니다. 그날 주님 품에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날 때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를 합창합니다. 정말로 간절하게 찬양합니다.”
추수감사절 주일 특별 감사 찬양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면서 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재미나게 산다. 유 목사는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살기 좋은 포천 ‘화동로회’를 만들어 회장직을 맡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장독대 마을에 가서 정원관리 수업을 한다. 아름드린 소나무가 많아 아름다운 숲 가꾸기 운동도 펼친다. 한 달에 한 번은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식사도 하고, 생일도 챙긴다. 이날 평생을 함께 한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위한 편지도 써 읽는다. 함께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 삶으로 복음을 전한다.
화동로회 회원 생일 축하 파티
1968년 대한신학교를 입학한 청년 신학도는 이제 75세 노인이 되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다. 앞으로 5년이면 80세, 또 5년 이면 85세다. 오늘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영혼이 가치 있다. 살아보니 현장에서 목회할 때보다 은퇴한 원로목사로 사는 것이 더 힘겹다. 행여 교회에 누가 될까 한 발 떨어져 생각하고 행동한다.
“원로 목사로 사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너무 멀리 떠나 있어도 안 됩니다. 더구나 하고 싶다고 다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덕을 끼쳐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생각해서 진중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자칫 흐트러진 모습 때문에 한국교회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시대의 등불이 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태국 화야실국제신학교에서 강의
유덕식 원로목사는 내려놓음이 무엇인지 안다. 내려놓음은 말이 아니라 자족의 법이다. 그래서 마지막 주님이 부르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으려 한다. 샬롬전원채플도 영진교회에 받치기로 이미 결정했다. 세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 사회에 자리매김하게 도와 준 교회다. 영진교회와 한 평생 살았으니 이 땅을 떠나는 날 다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영진교회 은퇴 후 10년, 유덕식 원로목사의 조용한 행보가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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