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171 (5권 3. 김홍신. 펌글)
다섯 명의 사내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슬아는 차창으로 얼굴을 내민 채 우리들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봐, 아베 선생. 이래도 바른 대고 대지 않을 거야?"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제발 이러지 마십쇼. 할 테니까요."
"그럼 읊어봐라."
아베는 잠깐 뜸을 들였다.
다른 녀석들이 당하는 꼴을 보았기 때문에 혼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아는 것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잔말 더 하면 불알을 뽑아 버릴 테다. 네 조상 놈들이 이 땅에 들어와 어떻게 했는지 넌 알겠지."
"전 그런 감정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없다. 그러나 너 같은 놈만 보면 피가 끓는다. 패죽이고 싶지만...."
"우린 다른 건 몰라요. 다만 우리 조직만 압니다."
"지금까지 네 손으로 팔아먹은 처녀들이 몇 명이냐?"
"삼백 명도 안 됩니다. 다 자원해서 갔습니다. 물어보세요."
"그렇다 치자. 일본으로 데려다가 어따 파냐?"
"파는 게 아니라 취직시킨다고 했잖습니까."
"그것도 좋다. 어째서 일본에 가면 술집이나 창녀촌에 넘기냐?"
"...... ."
"개새끼들...."
나는 또 사정없이 아베 녀석을 쥐어박았다.
데굴데굴 구르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무릎을 꿇고 코가 땅에 닿도록 빌기만 했다.
"옷 벗겨."
애들이 달려들어 다섯 명의 옷을 다 벗겼다.
"박아 버려."
사내들 다섯 명은 어스름 달밤에 계곡 물 속으로 처박혔다.
몽둥이 든 애들이 목까지만 물 밖에 나오도록 사정 두지 않고 갈겼다.
"살려만 주세요. 다 말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쇼."
아베가 이빨을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울었다.
나머지 녀석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너희 네 놈은 쪼그려 앉아. 아베 이 자식은 무릎을 펴지 못하게 해라."
나는 내 동족이 아무리 밉더라도 무릎 꿇고 비는 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베 녀석이 먼저 쓰러졌다.
그리고 뒤따라 사내들이 주저앉았다.
"건져내서 주물러 줘."
"뒈지게 냅두죠."
애들은 중얼거리면서도 아베와 사내 녀석들을 꺼내 물기를 닦아 주고 주물러댔다.
옷을 겨우 입혀 놓자 아베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시면 뭐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빨까지 딱딱 부딪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른 사내들을 먼저 차에 태우게 한 뒤에 아베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 두목은 너냐?"
"예."
"조직은 몇 개 파냐?"
"세 갭니다."
"다른 팀도 있지?"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잘 모릅니다."
"파는 가격은 얼마씩이냐?"
"대중 없습니다. 현지에서 결정하니까요. 그쪽 형님들이 정하니까요."
"여기 데리고 있는 애들은 몇 명이냐?"
"한 육십 명쯤 됩니다."
"뭐해서 먹고 사냐?"
"...... ."
"너 뒈지고 싶지?"
"아닙니다. 말씀 드린다고 했잖아요. 제발 저 좀 따뜻한 데로 데려가 주세요. 죄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좋다. 수 틀리게 나오면 넌 영광스럽게 시체로 돌아갈 거다."
"제발......"
나는 녀석을 차에 태웠다.
훈훈한 기운이 있어도 녀석은 계속 떨었다.
"춘삼이 형 있는 데로 와라."
나는 먼저 출발하며 일렀다.
애들이 모두 차에 올라탔다.
오늘 시작한 김에 조직의 뿌리를 아주 캐낼 참이었다.
슬아는 시무룩해서 차창밖만 쳐다보았다.
밤이 깊어 차량의 행렬이 많이 줄어든 거리였다.
"아베 말고 또 있지?"
"저 친구 말고 더 있어. 누군지 모르지만 저 친구가 쩔쩔매는 사람야.
덩치도 크고 미끈하게 생겼는데 만날 때마다 데리고 다니는 여자애가 달랐어."
"내 일이 끝날 때까지 피해야 돼. 내가 알아서 숨겨 줄 테니까."
"괜찮을까?"
"믿어도 돼."
"다혜한테 미안해."
순박한 계집애처럼 말했다.
"다혜 얘기 그만해."
나는 화난 듯이 소리 질렀다.
한참 열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몰랐지만 호텔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직도 비행기를 타고 있을 다혜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춘삼이 형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애들을 돌려보내고 몇 명만 자리를 지키게 했다.
탈진상태가 된 아베와 사내 녀석들이 체념한 듯 줄줄 쏟아 놓았다.
일본의 지시를 받는 총두목은 사사키란 친구였고, 아베는 한국말과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정도였다.
그들이 나를 노린 것은 한 개의 조직이 무너진 뒤였다.
삼선동 애들은 돈으로 매수하여 세력 다툼인 것처럼 위장한 것도 그들의 치밀한 계획이었고.
다혜 친구인 슬아를 매수한 것도 일본 유학과 경제적 도움을 미끼로,
나를 유혹하게 한 뒤에 삼선동 애들에게 인계할 작전이었다는걸 알았다.
일본 조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큰 것 같았다.
아베도 점조직에 불과해 사사키 이상의 조직과 규모는 알지 못했다.
답답한 건 나였다.
아베 일당을 잡았지만 철저한 점조직이어서 사사키란 총두목의 정체나 소재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아베가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일본의 연락처가 후쿠오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후쿠오카에 연락할 수 있겠지?"
"당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사키는?"
"그건 어렵습니다."
"좋다 연락해라. 내가 너희들 한국내의 조직을 풍비박산냈다고."
"지금 연락하겠습니다."
아베는 전화를 붙잡고 수첩에 적힌 대로 전화를 연결했다.
일본 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대충 설명하는 것 같았다.
"직접 통화하고 싶답니다."
아베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임마 한국말로 해."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전화기를 아베에게 넘겨 주었다.
그쪽 녀석은 한국 말을 할 줄 몰랐고 나는 일본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제가 통역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너희들 조직의 씨를 말리겠다고 해."
아베가 일본 말로 지껄였다.
그리고 난처한 얼굴로 돌아섰다.
"저 쪽에서 끝까지 복수를 하겠답니다."
"개자식들. 정정당당하게 붙어보자고 해라. 뒤통수 치는 놈들 하곤 상종도 하기 싫으니까."
"그럼 초청하겠답니다."
아베가 메모지를 내밀고 말했다.
"날 오란 말이냐?"
"사사키 형님을 만나시랍니다. 그러면 아주 정중하게 모시겠답니다."
"좋다. 가겠다고 해라."
아베가 한동안 일본어로 메모를 끝내고 나더니 씨익 웃었다.
"안부 드리랍니다."
"고맙다 쪽발이들아. 이렇게 전해라."
아베가 씨익 웃더니 몇 마디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사키는?"
"내일 제게 연락하도록 하겠답니다."
"그럼 돌아가라."
"저만요?"
"빨리 꺼져 임마. 그리고 내일 이곳으로 연락해."
아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부석부석한 얼굴이 가련해 보였다.
남은 사내 녀석들은 겁먹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이젠 무릎 꿇어라."
사내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기운 빠진 표정이었다.
"이 속 없는 자식들아. 무슨 짓을 못해서 우리 나라 처녀를 쪽발이들한테 팔아 처먹는 짓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 봐라.
일제시대에 정신대로 끌려간 여자들이 그만큼 당했으면 됐지 더 이상 어쩌라는 거냐?
네 여동생이 팔려갔다고 생각해 봐, 이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아. 쪽발이는 그렇다 치자.
너희들은 네 동족을 팔서 어쩌자는 거냐? 차라리 피를 팔아 목구멍을 지킬 일이지."
"형님, 다시는 이런 짓 않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 사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녀석의 턱을 올려붙였다.
"전부 엎드려라."
사내들은 엎드렸다.
몽둥이로 화가 삭을 때까지 때렸다.
사내들이 쭉 뻗은 채 거품을 쏟았다.
그들은 그동안 처녀들을 팔아먹던 수법을 무용하는 여자들을 정당한 해외 취업이란 명목으로 불러내어,
수속과 취업 알선비란 명목으로 돈을 착취한 뒤에 팔아먹는 수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바람난 계집애들을 모아서 몸 파는 걸 전제로 보내는 수도 있었다.
일본의 여자 값이 비싸다는 데서 한국 여자의 수입이 톡톡한 재미를 붙여 주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어쩌든 속아서 넘어가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여자장사꾼들은 걸러치기 수법으로 한국 여자를 다른 나라로 다시 넘기는 릴레이 판매도 한다고 했다.
동남아 지역에 손을 뻗쳐 여러가지 형태로 여자장사를 하는 애들이기 때문에 조직력은 대단한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대식구가 먹고 살진 못할 거 아니냐? 다른 짓 하는게 있다는 것도 안다."
사내들은 처음에 버티다가 못 견디겠는지 마약 밀매와 밀수행위까지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아베 녀석은 끝까지 밀수와 마약 밀매를 숨겼었다.
그들이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사업의 극비라는걸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어쩌면 마약 밀매와 밀수를 위장하기 위해 여자장사를 법망의 교묘한 탈출과 조직력으로 이끌고 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극악한 일까지 서슴없이 해치울 수밖에 없는 애들이었다.
그러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아서 자잘한 심부름이나 폭력의 전위부대로 그들의 방패 구실밖에 하지 못하는 애들이었다.
중대한 밀수나 마약 밀매를 다루는 건 사사키의 개인조직이나 비밀조직들이 한다는 것도,
조직력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패거리가 되어 비밀을 캐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사내애들을 야무지게 다루어서 보냈다.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애들을 쳐다보며 쪽발이들에게 더 증오심이 복받쳐 올라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걸 과시하면서 사람 값이 싼 우리나라에 들어와 쾌락을 맛보는 게 부족해,
이젠 아예 비밀조직을 이용해 처녀들을 사가는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순진한 처녀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베 녀석과 사내애들이 주절거린 것만 가지고도 얼마나 굴욕적인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사키와 마주 앉았다.
풍채가 좋았다.
단정한 용모와 차림새가 일급 신사였다.
아베가 그 옆에 앉아서 통역을 해주었다.
사사키도 한국 말을 조금씩은 하는 것 같았지만, 끝까지 일본 말로 나를 상대했다.
"당신을 이 자리에서 한 방에 없애 줄 수 있지만 참는 거요. 이유는 단 하나요.
당신을 없앴다고 해서 그 조직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오."
나는 모질게 말했다.
사사키는 껄껄 웃었다.
"우리도 당신을 감쪽같이 없앨 수 있었소. 우린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살려두는 겁니다."
아베가 내게 전한 답변이었다.
나는 한 대 올려붙이려다 참았다.
"형님들이 뵙잡니다. 초청장을 갖고 떠났답니다."
아베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 애들은 나와 결전을 벌이지 않고 타협하기 위해서 정중하게 초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애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가겠소."
나는 무서운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