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탄생을 예고한 고딕 로맨스의 고전!
히치콕이 영국에서의 마지막 연출작으로 선택한
‘서스펜스의 여왕 듀 모리에’의 걸작.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 세계를 연 탁월한 심리 서스펜스 드라마
‘서스펜스의 여왕’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칭송되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자메이카 여인숙Jamaica Inn.19세기 영국 콘월 지방에 전설처럼 전하던 난파선 약탈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메이카 여인숙』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영국에서의 야심찬 마지막 연출작으로 선정한 「Jamaica Inn」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TV 드라마, 연극 등으로도 여러 차례 새롭게 각색되었는데, 올해 2014년 4월 BBC1에서 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주연의 3부작 드라마로 또 한 번 만들어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모든 독자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1936년 출간된 『자메이카 여인숙』은 듀 모리에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처녀작 『사랑하는 영혼The Loving Spirit』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그녀는 이 작품을 펴내면서 마침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자메이카 여인숙』을 썼을 때 듀 모리에의 나이는 불과 스물아홉 살이었지만, 『레베카』(1938년 작)에서도 나타났던 영국 콘월 지방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심리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내는 내면 묘사, 우아하고 암시적인 필치는 『자메이카 여인숙』에서 이미 보이고 완성되었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의 판본이기도 한 2003년 개정판 서문에서 영국 비평가 사라 더넌트는 이 작품에 대해 “듀 모리에는 사실상, 이미 『레베카』를 쓰고 있었다”는 말로 『자메이카 여인숙』을 평한다.
실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
이 책의 무대인 ‘자메이카 여인숙’은 실제로 콘월 지방의 보드민과 론서스턴을 잇는 국도 변에 자리한 여인숙으로, 1750년에 지어진 이래 보드민 황야를 가로지르는 여행객들의 쉼터 노릇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운영되고 있다. 듀 모리에 가족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콘월에서 여름을 보냈으며 보드민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포이 근처에 별장을 마련했는데, 그녀는 이곳을 매우 좋아하여 매년 여름마다 찾았다고 한다.
『자메이카 여인숙』은 주인공 메리 옐런이 이모가 사는 자메이카 여인숙을 찾아 불안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 폭풍우가 부는 보드민 황야를 건너가는 여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음산한 황야를 거쳐 도착하게 된 여인숙에서 메리는 폐인이 된 이모와 흉포한 이모부 조스 멀린,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이모부의 남동생 젬과 기묘한 프렌시스 데비 목사 등과 엮이면서 이상한 일들에 휘말린다.
이 이야기는 듀 모리에가 실제로 겪은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1930년대 초 어느 여름, 그녀는 말을 타고 황야에 나갔다가 짙은 안개로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던 끝에 자메이카 여인숙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쉬던 중 그 지역 목사를 만나 여러 가지 괴기스러운 이야기와, 이 고장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밀수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외로운 황야 한가운데 독불장군처럼 서 있던 여인숙은 밀수꾼들의 소굴로, 전설 속의 밀수꾼들은 난파선 약탈자로, 입담 좋던 목사는 앨터넌의 프렌시스 데비 목사로 환생한다.
소설의 성공 이후, 실제 자메이카 여인숙은 전 세계 듀 모리에 팬들이 일종의 순례처럼 찾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이 여인숙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명패가 붙은 17개의 객실이 있으며, 부속 건물에는 듀 모리에의 집필용 책상과 더불어 밀수꾼들이 사용한 여러 도구가 전시된 ‘밀수꾼 박물관’도 개설되어 있다. 자메이카 여인숙은 2014년 봄 경매에 붙여져서 200만 파운드(약 35억 원)에 팔리며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를 잇는 로맨틱한 고딕 소설의 대표작
평자들은 듀 모리에의 작품들이 브론테 자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또한 듀 모리에 스스로는 제인 오스틴으로부터의 영향을 언급했다. 적막한 황야에 자리한 으스스한 여인숙이 배경인 『자메이카 여인숙』은 특히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과 종종 비교된다.
『자메이카 여인숙』의 시대적 배경은 1820년대로, 고아가 된 스물세 살의 처녀 메리는 혼자서도 농장을 꾸려가려고 마음먹고, 포악한 남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등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지만, 이따금씩 스스로가 여자여서 겪게 되는 한계에 대해 토로한다. 여기에는 듀 모리에가 10대 사춘기 시절,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내면이 남자라는 생각에 정신적 방황을 겪기도 한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당대의 사회 분위기도 이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작품 활동을 하던 20세기에는 여성 인권 의식이 고취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지위는 19세기 초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자메이카 여인숙』의 메리를 비롯해 듀 모리에의 다른 작품들과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능동적인 여성상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모습들은, 이런 시대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간 이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무엇보다 ‘로맨스’이다. 심리적 미로에 봉착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 영국 여성 작가들의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여성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면서도 해피엔드가 거의 없거나, 어둡고 음산한 작품 분위기 때문에 이들 작품은 전통적인 연애소설보다는 오히려 18세기에 발달한 소설 양식인 ‘선정소설’(감상소설, sentimental novel)로 분류된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로 듀 모리에 자신은 일부 평자가 자기의 작품을 ‘연애소설’로 분류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듀 모리에의 작품은 드물게도 대중소설과 정통 고전 문학의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킴으로써 대중문학과 예술의 경계선상에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35권에 달하는 그녀의 많은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도서관 대출도서 순위에서 부동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