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전성은 前 거창고등학교 교장
일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아온 퇴임 교장이 책을 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그의 지난 역사가 그려진다. 진정한 교육전문가가 부재한 현실 속에서 원로 교육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폐부를 꿰뚫는 일침이 된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오정훈
지루한 장마가 끝날 생각을 않던 어느 목요일, 거창에서 막 올라온 전성은 교장을 만났다. 훌쩍 큰 키에 선 굵은 주름과 깊은 눈빛.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일평생을 투신한, 노회한 교육자의 카리스마가 번득이는 외모였다. 몇 시간 버스에 몸을 싣고 온 터라 피로가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성큼성큼 걷는 품이 힘찼다. 마침 때가 되어 근처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는데 노교장은 거리낌 없이 유명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를 가리킨다. 피자를 즐겨먹는 퇴직 교장선생님이라니. 몇 번이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전성은 교장은 40여년 넘게 경남 거창고등학교 등에서 교사,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나름의 교육관과 뚜렷한 교육개혁 정신으로 지난 참여정부 때는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2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일평생 일궈온 주옥같은 교육관을 정리한 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퇴임 교장, 학교의 안부를 묻다
지난 6월 그가 출간한 교육 에세이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가장 원론적인 교육의 의미와 학교의 가치를 묻는 책이었다. 과거 학교의 목적은 철저하게 통치 집단에 의한, 통치 집단을 위한 기관이었을 뿐 아이들을 위한 기관이 아니었다든가, 학교 교육으로는 결코 인격을 바꿀 수 없다는 등 거침 없는 그의 교육론은 지난 세기에는 금지어 취급을 받았고, 오늘날 봐도 가히 혁신적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제국주의적 학교교육 제도 아래서 교육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까? 교육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과연 국익일까?’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우리 학교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오로지 경쟁, 경쟁만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교육 풍토에서 그는 의연하게 ‘교육의 목표는 평화’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마치 경쟁이 교육의 목표인 양, 성공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경쟁은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그것도 제국주의에서나 쓰이던 사람을 통치하던 수단이에요. 학교에서는 경쟁이 아니라 ‘시합’을 해야 해요. 경쟁은 너와 내가 겨뤄서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나가떨어지는 거지만, 시합은 서로 같이 잘 되자는 거거든요.”
그는 경쟁의 한 예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들었다. 과거제는 관료를 뽑기 위한 등용문이었지 절대 진리탐구를 목표로 한 제도가 아니었다는 거다. 조선시대에서나 통용되었던 고루한 가치를 여전히 고집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의 소치다.
전 교장은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 교육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약 2년간 교육 개혁에 힘쓰기도 했다. 당시 그의 주도로 연구하고 쓰였던 ‘참여정부 교육백서’는 현재의 입학사정관제를 탄생시킨 모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교육개혁의 요지는 성적만 가지고 애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91점과 89점이 무슨 차이냐 이 말이죠. 그건 그 학생에 대한 정보가 못돼. 정보라는 건 수학을 좋아하는지, 국어를 좋아하는지, 시를 잘 쓰는지 소설을 잘 쓰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와 같은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포트폴리오에 기록해 놓으면 대학은 그걸 보고 학생을 뽑으면 됩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그 학생의 교육이력을 보고 뽑는 것이 더 상식적이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학교도, 선생도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쳤는지 기록으로 남겨 단순한 선발 경쟁이 아닌 가르치기 경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의 입학사정관제는 잘못 가고 있다며 전 교장은 혀를 찼다.
“준비단계만 5년이 필요합니다. 교과서도 바꿔야 하고 바뀐 교과서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도 교육시켜야 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줄 수 있는 교육시스템도 확립시켜야 하죠. 2008년에 시작됐으면 아무리 빨라도 2012년도에나 적용시킬 수 있는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진행하니 아이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지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도 요동치는 게 현실이다 보니 교육이 백년지계(百年之計)가 아니라 삼년지계도 못 된 지 오래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불신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진정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전성은 교장이 책을 내고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옛 제자들 몇몇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더란다. 그 중 한 명이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책 제목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목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거창고를 다니면서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의 말마따나 거창고등학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학교’다. 수식어도 많다. 울타리도, 교문도 없는 학교, 인성교육과 입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학교 등등.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등과 같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직업 선택의 십계만 보아도 거창고가 일반 고등학교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가 책에 쓴 것, 그리고 교육에 대해 말하는 내용들은 혼자만의 오롯한 생각이 아닙니다. 오늘의 거창고등학교를 있게 한 고 전영창 교장선생님과 원경선 이사장님 두 분으로부터 배우고 얻을 것을 때가 되어 알린 것뿐이죠.”
전성은 교장의 부친이기도 한 고 전영창 교장은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부채가 많은 한 학교를 맡게 된다. 그게 거창고등학교의 시작이다. 오랜 역사만큼 사회적, 정치적 세파로부터 부침도 많이 겪었다. 전영창 교장은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한 학생들을 퇴학시키라는 교육감의 지시를 거부하는 바람에 파면을 당하기도 했다고.
어쨌든 지금은 전교생의 대부분이 4년제 대학에 진학, 그 중 1/4정도 되는 학생들은 소위 SKY대학이라 불리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유명해 매년 우수한 중학생들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는 이 시골학교에 몰려든다. 그 배경에는 전영창, 전성은 전 교장을 비롯 거창고를 거쳐간 수많은 선생님들의 치열한 고민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짜 국력은 아이들 개개인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살리는 거거든. 어떤 사람들은 엘리트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이에요. 삼성 보세요. 10만 명이 뼈 빠지게 일해서 삼성 회장 한 사람 먹여 살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전성은 교장은 진정 옳은 교육을 위해서는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을 보면 학교 설립이 허가제가 아닌 자유로운 신고제임을 알 수 있다. 교과서 또한 국정이 아니라 누구나 교과서를 쓸 수 있고, 학교와 교사, 학부모에 의해 채택 여부가 달려 있다. 즉, 배우는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방법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교육이라는 것이다.
“20년 전에 비하면 얼마나 많이 나아졌습니까? 살기도 좋아졌고, 국민의식도 높아졌지요. 이만큼 사회가 성숙해졌으면 이제 국가가 교육에 손을 놔야할 때가 됐어요. 결정권을 단위학교에 맡기고 행정지원을 해줘야 돼요. 행정을 잘하고 있는지는 컨설팅을 해주는 독립적인 기구를 두고 평가를 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교육청, 교과부도 다 컨설팅을 받아야 합니다. 즉, 상부기관이 하부 기관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보완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학교, 교육행정 기구, 평가 기구 이 셋이 수평적 보완관계를 가질 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른 어떤 사항보다 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바뀔 것이라는 올곧은 희망
매번 교육 개혁이라고 새로운 안이 나올 때마다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사교육 철폐’다. 마치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으면 공교육은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을 심어주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전성은 교장은 이는 교육개혁의 진정한 쟁점을 흐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일침했다.
“전두환 정권 때 과외금지령이 내렸을 때 어땠습니까? 오히려 음성과외가 판을 쳤어요. 사람들은 증상과 원인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을 압도할 정도로 커진 것은 단순히 증상일 뿐입니다. 증상을 없앤다고 해서 원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학원 문제는 결코 교육 문제의 본질이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무상급식 문제도 교육 문제가 아니라 복지문제일 뿐이죠. 본질에 벗어난 쟁점을 던져놓음으로써 교육관련단체들이 말려들게 만들고 그 사이에 교육부는 화살을 피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는 미래를 낙관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 성숙된 만큼 ‘교육 분권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것. 참여정부 시절, 그가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내놓았을 때 결사반대를 외치던 관계자들이 지금은 교과부 요직을 맡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지배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라는 전 교장의 주장은 분명 이상주의자가 꿈꾸는 미래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지금껏 계속 나은 방향으로 흘러왔지 않았냐?”는 확신에 찬 질문을 받고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우리가 좀더 의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지겠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우리 교육 현장은 그만큼 빨리 우리가 꿈꾸는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자유, 평등, 공존…. 교과서 속에나 나오는 가치가 아니다. 그 가치를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교사, 학교가 있는 한 대한민국의 교육에도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