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사과
김미정
누군가 위태롭게 햇살을 익히고 있다
사과를 먹는 일은
사라진 방향을 오래 바라보는 일
붉은 울음이 씹힌다
휘어진 사과의 밤을 만져봐요 그날 쏟아지던 빗방울의 고백을 잊지 마세요
멀리 날아간 사과 너머의 열병을, 그리고 잎사귀마다 빛나던 그 번개 같은 순간을
사과는 상처가 모여 완성되는 맛인가
너무 시거나 씁쓸해지는 사과들
맛볼 수 없는 사과가 늘어난다
뭉쳐도 자꾸만 흩어지는 날들
풋사과는 풋사과로 지워져요 덜 익은 표정이 가지마다 만발하죠 바람은 모서리를
베어먹으며 자라고 다음은 언제나 다음이에요 뒤돌아서는 초록을 부를 수 없어요
나의 사과는
날마다 어두워지고 깊어지고
사과는 사과에 갇히고 피를 흘리고
우린 주먹을 쥐고 겹겹이 아파한다
첫댓글 읽고 쓰는 모임 행간에서 오늘 다룰 영화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아무도 머물지 않는다 (the past)인데요.
어제 예배 시간에 나눴던 시를 읽으면서 이 영화가 또 떠올랐어요.
겹겹이 풍성하게 나눠주시는 시들이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