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택시 기사
황 지은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에 나는 유성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서울 볼일을 끝내고 고속버스타고 와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당일로 다녀오니 피로하던 차에 마침 개인택시가 터미널에서 대기 중이라 다행이었다. 뒷자리에서 행선지를 말하고 나른하게 기대어 앉으니 뒷거울에 기사 얼굴이 정면으로 보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데 환하게 밝은 표정이 미소가 가득하다. 무뚝뚝한 기색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 가 봐요?” 자연스레 질문도 하게 된다
“네, 그리 보입니까!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스스럼없이 답하며 이야기한다. 기사님 나이가 곧 팔순이 된다고 하니 놀라웠다. 반듯한 뒷모습이 내 눈으로는 칠순정도로 보였다. 친구들은 대부분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데 자기는 이 나이에 활동을 하고 정년퇴직도 없으니 참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일을 하고 있다고 신세타령을 할 수도 있는데 긍정적인 사고이다. 직접 돈을 벌어 손자에게 용돈도 주고 본인이 필요한 곳에 쓸 수도 있으니 행복하단다.
내가 나이가 있는데 피곤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았다. 오후 4시가 되면 집으로 퇴근하며 평생해온 익숙한 일을 하니 특별히 힘들 것이 없다고 했다. 차 내부가 깔끔한 것으로 보아 부지런하고 건강한 분이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는 운전으로 집 앞에 내려주니 편안하게 잘 타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차에서 내리는데 좋은 시간되라고 인사까지 해준다. 평범한 한마디가 흐뭇하게 여운이 되어 남는다.
문득 최근에 택시를 타고 나서 언짢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탔던 택시와는 비교가 많이 된다. 그 날은 유성에서 반대방향에 있는 대전문학관에 갈 일이 있었다. 단체행사 때에 승용차로 한번 가보고는 혼자선 처음이라 길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길치여서 대중교통은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만 탄다. 지하철 연결이 안 되는 곳은 택시를 이용하였다. 그 날도 나는 역시 지하철을 탔고, 가는 도중에 택시 환승이 용이할 것 같은 대전 역에서 내렸다. 역 광장은 빈 택시가 많아서 줄을 서자 곧 내 차례가 왔다. 차에 타고 행선지를 말하니 기사가 대꾸가 없다. 혹시 못 들었나 해서 다시 말을 하니 젊은 청년기사는 대뜸 나에게 퉁을 준다. 다음에 거기 갈 때는 역 뒤편으로 가서 타란다.
나는 무안해서 역 뒤편을 모른다고 하니, 오래 기다려 태운 손님이 장거리가 아니라서 실망이란다. 기본요금 거리는 아닌데 싶었지만 화가 난 기사표정에 주눅이 들어 말이 안 나왔다. 대전 역은 택시타기가 편하다는 생각만 한 것은 너무 단순한 판단이었다. 불편한 침묵을 하며 택시는 차선을 급하게 바꿔가며 빨리 달렸다. 그리고 대로변에서 차를 멈추었다. 젊은 청년 기사는 고개 짓으로 가리키며 이쪽 언덕길 올라가서 모퉁이 돌면 문학관이 있으니 여기서 내려 걸어가란다. 뒷길에 들어가면 손님이 없고 빈차로 나오게 되니 더 이상 안가겠다고 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 여름 날씨에 길치 두려움이 잠시 앞장을 선다.
그러나 나는 당장 택시에서 내려야 헸다. 미터기는 4800원 표시인데 5000원을 받은 기사는 200원 거스름은 당연한 듯이 안준다. 나도 받을 생각을 못했다. 내려서 차문을 닫자마자 뿌앙 소리와 함께 급발진 하듯 택시가 달아났다. 갑자기 그러하니 나는 깜짝 놀랐다. 멀어지는 택시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여 서 있었다. 돈벌이에 급급해서가 아닌 택시기사가 미리부터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목적지는 언덕길 올라가면서 이내 잘 찾았지만 그날 이후로 택시를 타면 나는 운전하는 사람의 표정부터 살피게 되었다. 기사가 성급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손잡이부터 꼭 잡는다. 운전하는 순발력이야 당연히 젊은 사람이 앞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빨리 가기보다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면 마음이 편하다. 나이든 사람이 운전하면 불안하고 답답한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성향이니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겠다.
전국에 택시기사 연령 통계가 65세 이상이 27%인 7만2800명이라고 한다. 아흔이 넘은 기사가 237명이나 되고 최고령 택시 기사는 92세 라고 하니 놀랍다. 생각보다 현실은 예상치 연령을 훨씬 웃돌고 있다. 65세부터 노인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이다. 앞으로 65세는 100세 시대를 대비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되는 나이가 될 것 같다.
운전은 젊다고 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젊어도 사고를 잘 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었어도 안전하게 운행하는 이가 있다.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인 택시는 기사자격기준 심사를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자격이 있는데도 나이가 65세 넘었다는 이유로 노인대열에 들게 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택시를 타게 되면서 경험해본 개인감정의 차원이 아니고 현실이 통계수치로 볼 때 그러하단다.
노인기준의 연령제한 문제는 다방면에서 공적인 사회문제가 연루되니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희망사항을 피력해 보라고 한다면, 노인대열에 들게 하는 연령제한이 십년은 더 올려서 75세가 적합할 것 같다. 그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생각하는 마인드가 젊으니 사회분위기는 더 활발할 것이다. 연령제한을 65세에 두니 갈수록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된다는 생각을 한번 해 보며 다시 한 번 80에 가깝다는 친절하고도 여우가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그 택시 기사를 떠올려본다.
오늘은 그 노 기사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노인문제까지 오지랖 넓게 생각하고 있으나 나 역시 이제 70을 바라보고 있으니 남의 얘기만은 아닌가 싶다. 그런 동병상린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 여유롭던 그날의 택시 기사를 떠 올려본다. 나이는 지긋해 보였으나 환하게 밝은 표정이 미소가 가득했었던 모습의 그 노 기사는 오늘도 어디선가 부지런하게 운전하면서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며 운전을 랄 거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