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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빛 속에서 나는 5라는 숫자를 보았다. 그것은 붉은 불자동차 위에 금색으로 씌어 있었다. 그 자동차는 종을 땡그랑거리며 사이렌을 울리고 바퀴를 덜컹거리며, 어두운 도시를 가로질러, 아무도 모르게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
윌리엄스가 겪었던 지극히 특수한 경험이 드머스의 추상적인 그림을 통해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다시말해, 움직이는 금빛의 숫자 5, 교차되는 광선들의 움직임, 붉은 색의 불자동차를 암시하는 형체들은 한 도시인의 경험을 훌륭하게 시각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머스는 그림안에 시에서 언급된 이름과 약자들을 그려넣어 시각적 재현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하퍼,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미국적 풍경"을 그렸던 화가들 중에서 가장 주목힐 만한 사람은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입니다. 이 그림은 하퍼의 대표작으로, 미국 중서부의 어느 지방도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거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늦잠을 즐기고 있겠죠. 이 인기척없는 거리를 묘사한 그림에선 붉은 색 건물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끝나지 않는 창문의 반복이 보입니다. 위 아래의 여백도 그리 많지 않아서 거리와 하늘은 작은 직사각형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이 길게 늘어선 건물의 1층은 상점들로 메워져 있습니다. 이발소도 보이네요. 건물 2층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보입니다. 아마도 빈민들의 안식처이리라고 생각됩니다. 하퍼는 일종의 낭만적 사실주의자로, 외딴 집들, 혹은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는 외로운 개인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왠지 썰렁하고 버려진 느낌이 풍기지 않습니까? 수평, 수직의 구도를 취하고 있는 그림의 단순함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마치 데키리코의 그림에 나오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볼 때처럼 쓸쓸함과 장중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제부터는 19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194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지는 미국으로 이동하는데, 미국의 문화적 주권은 70년대까지 유지됩니다. 미국의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미국적인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한편, 유럽의 새로운 미술을 배우는데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이 미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떠나 최초로 국제적인 미술 양식을 이뤄낸 것이 바로 "추상표현주의"입니다. 추상표현주의 양식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만, 명백히 유럽의 추상미술과는 구별되는 미국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잭슨 폴락, <연보랏빛 안개> 1950]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는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이라는 한 전위적 작가였습니다. 그는 서부의 와이오밍주 출신으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채 뉴욕으로 향합니다. 한동안 인디안의 전설같은 서부의 토착문명을 상기시키는 그림을 그리던 그는 47년경부터 뿌리기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붓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대신, 뿌리고, 던지고, 튕기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대개 전시실의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초대형 사이즈입니다. 이것도 세로가 7피트 4인치, 가로가 9피트 11인치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입니다. 폴락의 경우 멕시코 벽화 화가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엄청난 스케일의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폴락은 커다란 화폭을 바닥에 놓고 그 주변이나 위를 걸어 다니면서 물감을 뿌려 댔고, 그 결과 아주 독창적인 화면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림을 제작하고 있는 잭슨 폴락]
폴락이 그린(?) 그림은 어떤 사물을 재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그림이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화면에 물감을 뿌리고, 던지고 튕기는 폴락의 행위일 겁니다. 다시말해 폴락의 그림은 그의 움직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체와 아주 밀접한 그림입니다. 그래서 해롤드 로젠버그라는 비평가는 폴락의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폴락은 어떠한 계획도 의도도 없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대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밑칠을 하는데, 폴락은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가 사용했던 것은 보통 화가들이 사용하는 물감이 아니고, 상업용 에나멜 페인트였습니다. 그는 노란색을 뿌리고, 분홍색을 던지고, 또 그 위에 검은색을 뿌리고, 흰색을 또 뿌립니다. 폴락의 행위는 아주 즉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그의 그림에서 어떤 이미지나 느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종종 아주 시적인 제목이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가을리듬>(1950)이라든지, <Out of the web>(1949)같은 것말이죠. 위의 그림도 <연보랏빛 안개(Lavender Mist)>라는 서정성 짙은 제목을 하고 있죠. 사실 이 그림엔 연보라색은 사용되고 있지도 않은데, 이 제목은 그림이 창출하는 분위기와 그럴듯하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폴락의 그림이 그의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미술은 초현실주의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모든 의도를 배제한 자동주의적(automatic) 기법을 통해 무의식을 형상화하려고 했던 초현실주의적 기획이 그의 미술에서도 엿보인다는 겁니다.
폴락이후 많은 미술가들은 폴락과 같은 거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감을 분무기같은 데에 넣고 뿜어댄다든지, 캔버스위를 자전거를 타고 통과한다든지, 물감주머니에 총을 쏘아 터뜨린다든지... 이들 모두는 그들의 행위와 매우 밀접한 작품을 만들어 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윌렘 드 쿠닝, <여인 I> 1950-52]
네덜란드 태생의 드 쿠닝(de Kooning)은 잭슨 폴락과 함께 추상표현주의의 선두주자로 간주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동안 매우 공격적이고 격정적인 형상을 한 <여인> 연작을 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 그림 역시 대형 사이즈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런 격노한 여인의 형상이 초대형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끔찍스러운 일로 느껴질 겁니다. 그림 속의 여인은 참지 못할 분노의 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과 증오가 투쟁하고 있는 형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혹자는 <아비뇽의 처녀들>의 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알고 계시죠?
모든 사람이 드 쿠닝의 여인들을 끔찍스러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사용된 거칠고 과격한 붓놀림은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드 쿠닝의 과격하면서도 파괴적인 붓텃취는 그 난폭성으로 인하여 과장된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실 붓을 다루는 그의 능란한 솜씨는 당대 비평가들에 의해 "새로운 미국회화의 선구자"로 찬양되었습니다. 어쩌면 "액션 페인팅"이라는 용어는 잭슨 폴락보다 드 쿠닝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드 쿠닝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격렬한 움직임과 그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즉 그의 그림은 그의 그리는 과정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윌렘 드 쿠닝, <회화> 1950]
드 쿠닝은 비교적 구상적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였지만, 때때로 지극히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추상적이건 구상적이건 간에 그의 그림은 생생한 표현과 자발성이 두드러집니다. 이 그림 역시 과격하면서도 능수능란한 붓놀림이 돋보입니다. 뿐만아니라, 채 마르지 않은 물감이 흘러내림으로써 생겨난 우연한 형상은 그림의 표현성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폴락과 드 쿠닝의 작품에서와 같은 자발적 표현성이 강조된 추상 미술이 1950년대 미국의 추상 미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양식은 추상표현주의라고 불리웁니다. 그들의 미술은 독일 표현주의자 칸딘스키나 초현실주의자 미로 같은 선배 미술가들의 작품의 뒤를 잇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칸딘스키와 미로도 재현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미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즉흥성과 자발성, 그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추상 미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미술을 어떤 비평가는 "뜨거운 추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그와 같은 뜨거운 추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폴락과 드 쿠닝이외에 추상표현주의에 속하는 작가들이 또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이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릅니다.
[마크 로스코, <오렌지와 노랑> 1956]
추상표현주의라고 불리우는 미술가들은 지난 시간에 보았던 잭슨 폴락이나 윌렘 드 쿠닝같은 "액션 페인팅" 작가들이 있었는가 하면, 커다란 색면을 주로 그렸던 색면 추상(color-field abstraction)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대한 스케일의 화면을 강렬한 색채로 채우는 작업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태생의 화가 로스코(Rothko)는 신비스러운 종교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련의 색면화를 제작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초록, 빨강, 그리고 오렌지>, <검정위의 옅은 빨강> 등이 그의 작품의 제목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앞에 선 관객들은 그의 그림을 그렇게 단순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커다란 사각형은 그저 사각형 모양 이상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것을 사각형이라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노란색의 형태는 일정한 형태로 규정되지 않은채 오렌지색 화면 안으로 스며들어 가는듯 합니다. 어찌보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듯도 하고요,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로스코는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드는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붓대신 스폰지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윤곽선이 불분명해진 사각형들은 미묘한 색채와 함께 애매한 형태를 통해 신비적인 효과를 창출하였습니다. 화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강렬한 색채의 사각형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숭고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커다란 화면이 불러일으키는 신비스러운 신성함은 사람들에게 종교적 상징주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 로스코도 그런 의도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크 로스코, <로스코 채플> 텍사스, 휴스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종교 및 인성개발연구소내에 있는 로스코 채플의 내부입니다. 이 그림들에는 아주 진한 적황색이 거의 균일하게 칠해져 있습니다. 이 사진은 특히나 더 어둡게 나왔군요. 후기로 갈수록 로스코는 영적인 절망감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빠져듭니다. 초기의 밝은 원색 대신 어둡고 차가운 색들이 더 자주 사용되었죠. 그와 같은 절망감은 단지 예술적 경지에만 머물지 않고, 결국 1970년 로스코 자신의 목숨까지도 앗아갔습니다. 로스코채플의 그림들은 그가 자살한 다음해인 1971년에 설치되었습니다.
[바넷 뉴먼, <하나(onement) I> 1948]
로스코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색면을 통해 신성한 정신성을 추구했던 화가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입니다. 그는 원초적 형상을 찾아내기 위하여 두가지 회화언어에 의존합니다. 즉 커다란 색면과, 그 속을 통과하는 단선이 그것입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화면은 인류의 보편적 경험을 형상화합니다. 색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은 번개가 치고, 휘장이 갈라지고,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 같은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뉴먼은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뉴먼에 의할 때 "인류 최초의 표현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비극적 상태에 대하여, 자아인식에 대하여, 그리고 공허 앞에서의 무력감에 대하여 외치는 두려움과 분노의 시적인 절규"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친 "아버지, 당신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을 인류의 보편적인 외침으로 보았습니다. 검은 단색의 면 위를 가르는 빨간 단색의 선은 그 보편적 절망의 순간에 느닷없이 현현하는 구원의 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바넷 뉴먼, <서약> 1949]
뉴먼의 목표는 "아름다움보다는 신비로운 숭고함을 표현하는 미술"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낭만주의적 정조가 물씬 풍기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뉴먼은 아름다움이라는 고전주의적 가치 대신에 신비스럽고 근원적인 느낌을 주는 정조, 즉 숭고라는 낭만주의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겁니다. 단순, 순수, 강렬, 영웅적 위엄성, 성스러움...등이 그의 그림에서 그가 의도하였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추상적 화면을 통해 형이상학적고 보편적인 정신성을 추구했던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몬드리안이 있죠. 그도 단순하고 강렬한 원색과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경험의 보편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뉴먼의 양식이 필연적으로 몬드리안의 것과 관련되긴 합니다만, 그들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아주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우선 뉴먼의 그림이 몬드리안의 그림보다 규모상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큽니다. 뿐만 아니라, 뉴먼의 수직선은 단순히 화면위에 그어진 하나의 선이라기 보다는 회화 평면에 힘을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그 심오한 깊이감, 그것은 여러분이 이 작품을 만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액션 페인팅 계열의 작가들이 거의 충동적일 만큼 즉흥적인 표현성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색면추상화가들은 신비주의에 가까운 정신성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양식이 어찌 보면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것처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소위 추상표현주의자들라고 불리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이었지 외부세계에 관심을 가져 사회적 주제를 선택하거나 주변세계를 찬양 또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잭슨 폴락은 '뿌리기'라는 자발적 표현 행위를 통하여 그의 무의식과 같은 내면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고, 라스코는 화면위에 부유하는 사각형을 통해 형이상학적 정신세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추상표현주의를 그들의 뒤를 잇는 60년대의 추상미술과 구별지어 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