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6장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3.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사도직의 의무를 요구한다
이 교본의 다른 곳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것도 우리의 임의대로 취사선택(取捨選擇)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통과 박해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안에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영광의 그리스도만을 맞아들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나뉘어질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실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평화와 행복을 찾아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다 보면 때때로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을 겪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요소가 섞여 있어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통 없이 승리가 없고, 가시관 없이는 왕좌가 없으며, 쓰라림 없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왕관이 있을 수 없다. 하나를 얻고자 손을 뻗으면 다른 하나도 함께 딸려 오게 된다.
이 원리는 우리의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성모님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놓고, 그중 우리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골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모님이 겪으시는 고통을 함께 하지 않으면서 성모님이 누리시는 기쁨만을 함께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 성인이 했던 것처럼 성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고자 한다면(요한 19,27 참조), 성모님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성모님의 어느 한 면만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성모님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성모 신심이란 성모님의 고귀한 성품과 사명의 온갖 측면을 재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주된 관심을 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성모님을 고귀한 모범으로 여기고 그분의 덕목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일은 값진 일이다. 그러나 그분의 덕목만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모님에 대한 부분적인 신심이자 참으로 인색한 신심이 될 것이다. 성모님께 아무리 많은 기도를 바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삼위께서 성모님을 맞아 그느르시고, 성모님에 의지하시고, 성모님으로 하여금 성삼위의 속성들을 드러내도록 하신 깜짝 놀랄 수많은 방법들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모님은 이 모든 공경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분이시고 실제로 그러한 찬사를 받으셔야 하시지만, 그러한 찬사는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성모님에 대한 맞갖은 신심은 오로지 성모님과의 일치를 통해서만 완성된다. 일치란 필연적으로 성모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의미하며, 성모님의 삶은 주로 찬미를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전달하는 것에 있다.
성모님의 한평생과 사명은 먼저 그리스도의 어머니, 그 다음으로는 인류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St. Augustine)의 말처럼, 성삼위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깊이 생각하신 끝에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쓰시려고 성모님을 준비하시고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을 잉태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날 성모님은 당신의 놀라운 활동에 발을 들여놓으셨고, 그 후로 줄곧 집안 살림을 맡아 돌보는 바쁜 어머니가 되셨다. 성모님이 맡으신 이 일은 처음 얼마 동안은 나자렛 마을에 국한되어 수행되었다. 그러나 나자렛의 이 작은 집은 온 세상을 아우르는 집이 되었고, 성모님의 아드님은 전 인류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돌보는 성모님의 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고, 나자렛으로부터 크게 번창한 그 일은 성모님 없이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을 돌보아 드리는 것은 성모님이 하시는 돌봄을 보충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사도는 성모님이 하시는 어머니로서의 직분을 거들어 드릴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모님은 “나는 원죄 없는 잉태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사도직이로다.”라고 선언하실 수 있을 것이다.
영혼들을 돌보는 어머니 역할은 성모님의 본질적 임무이고 성모님의 삶 자체이다. 그 결과 우리가 성모님의 어머니 역할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성모님과 참으로 일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밝히고자 하는 것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는 영혼들을 위한 봉사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모님이 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스도교 신자가 사도직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사한 생각을 드러낸다. 전자든 후자든 둘 다 불완전하고 비현실적이고 실체가 없으며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는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모님과 사도직이라는 두 원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라는 단일 원리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 원리는 사도직과 (올바로 이해된)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아우른다.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할 때 행동은 전혀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바라기만 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아무 가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모님께 말로만 봉사를 드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도직 임무가 ‘내게도 일이 주어지겠지’ 하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하늘로부터 저절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렇게 태만한 신자들은 아무 일도 맡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사도가 되는 단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사도직 활동을 맡아 착수하는 것이다. 사도직 활동을 맡아 시작하게 되면 성모님은 즉시 우리의 활동을 당신 품에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어머니 역할 안에 넣어 주신다.
더욱이 성모님은 우리가 도와 드리지 않으면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실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성모님처럼 큰 힘을 지니신 분이 나약한 우리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인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느님 섭리의 한 부분이다. 성모님이 간직하고 계시는 은총의 보고(寶庫)가 넘쳐흐른다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도와 드리지 않으면 성모님은 그 은총을 나누어 주지 못하신다. 만일 성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신다면 온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회두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께 협력할 때까지 기다리셔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가 도와 드리지 않으면 성모님이 어머니의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영혼들은 굶주려 죽게 된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마음대로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성모님은 열렬히 환영하시며, 거룩하고 알맞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약하고 부적절한 사람들까지도 하나하나 모두 다 활용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사람들이라도 모두 다 필요하기 때문에 성모님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가장 미약한 사람이라도 성모님이 지니신 힘을 영혼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좀 더 나은 사람을 통하여 성모님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신다. 이는 맑은 유리창으로는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오지만, 때가 잔뜩 낀 유리창으로는 힘겹게 들어오는 이치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조상이 범한 죄를 기워 갚기 위해서 고통과 사랑 속에 십자가 나무를 함께 지고 가신 새로운 아담과 하와가 아니신가? 예수님은 샘이시고, 성모님은 그 수로이시다. 이 은총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우리의 천상 보금자리를 되찾게 된다.”(교황 비오 12세의 1940년 4월 21일 담화)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자비로우신 어머니, 우리의 모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하느님 은총의 중재자, 하느님 보화의 분배자로 높이 들어 올리셨다. 주님과 함께 우리도 성모님을 높이 받들자. 성자께서는 당신 나라의 영광과 위엄과 권능으로 당신의 어머니를 빛나게 해주신다. 인류 구원의 위대한 사업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와 협조자로서 순교자의 왕이신 예수님과 일치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은 영원토록 예수님과 일치해 계시면서, 구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분배하는 일에서 무한한 힘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계신다. 성모님의 왕국은 성자의 왕국처럼 참으로 넓기에 성모님의 지배를 벗어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교황 비오 12세의 1940년 5월 13일 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