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 24년째 자원봉사활동 -
전교조 초창기 여수중앙여중 해직교사로서 4년 6개월의 해직기간을 거친 후 1994년에 돌아온 교단은 고흥도화중이라는 시골학교였다. 이곳으로 이사하여 도화교회에 나가보니 대부분 노인 분들이었고, 교회가 장례까지 치러주니 홀로 사시는 분들의 상당수가 교회에 나오고 계셨다. 나는 인성교육차원에서 이분들과 중학생 아이들을 연결시킨 무의탁노인이나 독거노인들을 위한 중학생 자원봉사 팀을 꾸려보기로 하고, 면사무소에서 자료를 받아 각 마을로 직접 찾아다니며 이장님의 소개로 봉사대상 노인과 친분을 쌓은 후 그 마을의 학생들과 연결시켜 나갔다. 이렇게 내가 자원봉사활동에 첫발을 내디디며 만든 최초의 조직이 1995년의 ‘고흥도화중 무의탁 노인 보살피기 학생자원봉사단’이었다. 이 후, 매주 토요일 작은 오토바이 뒤에 음료수와 빵을 든 아내를 태우고 학생들이 봉사활동 하는 각 마을 대상 노인 집을 방문하며 다닐 땐 시골길에 사납게 내려 쬐는 뙤약볕도 두렵지 않은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실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쓴 수기집이 만들어져 후배들에게 읽혀졌고(1997. 8. 17. 대한노인복지후원회와 복지연합신문사 주최 제1회 노인돕기생활수기공모전 동상 수상), 마침내 9월엔 도화교회에서 각 마을 봉사대상 전원을 초청하여 위문잔치를 여는 등(광주일보 1997. 9. 3. 기사 참조) ‘도화면을 孝마을로’라고 쓴 깃을 달고 다녔던 내 작은 오토바이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은 곧 ‘도화면 무의탁노인 보살피기 후원회’라는 이름으로 행정기관까지 포함한 면단위 전체 차원에서 논의되기까지 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아들의 고교진학으로 말미암아 여수로 전근을 와야만 했다.
1998년도 3월에 여천실업고등학교에 부임하여 곧바로 시작한 창의적 교육활동도 고흥도화중에서 경험한 무의탁노인 보살피기 학생자원봉사단 창단이었다. 당시 여천실고는 학생 스스로의 자존감이 낮은 편이어서 이를 북돋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라는 긍지가 필요했고 또한 돌산읍도 40여개 마을로 고흥도화면과 비슷한 처지였기에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돌산읍사무소에서 무의탁노인이나 독거노인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마을을 찾아 이장님을 만나 안내를 받은 후, 학생들을 인솔하여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니 역시 ‘여천실고 무의탁노인 보살피기 학생자원봉사단’이 만들어졌고 그 활동 상황은 당시 여수MBC 자체 제작 프로그램 ‘세상사는 이야기’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무렵, 특별히 생각나는 건 방송에서 토요일 오후 돌산 각 마을로 자원봉사 나가는 학생들의 이동이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놨더니 방송을 본 돌산 군내리 수협중매인으로 여천실고 출신 선배 중 몇 분이 봉고차로 후배 학생들을 이동시키는데 책임을 맡겠다고 나서서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는 선순환의 참 좋은 사례로 기억된다.
2002년에 여천고로 발령받았을 때 역시 학생자원봉사단으로 ‘촛불회’를 만들었다. 나를 태워 주위를 밝히자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인데 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고 주로 화장동아파트 등에 거주하시는 독거노인 및 주변의 복지시설들에 봉사를 하도록 안내했다. 마침내 그 해 겨울, 여수중앙교회의 도움을 받아 열악한 사회복지시설들(한빛무의탁노인복지원, 나사로의 마을, 더불어 사는 집 등)을 찾아다니며 운영자들과 면담한 후 그들의 어려움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했다. 이는 훗날 학부모봉사단 창단을 가져오게 했던 좋은 자료로 활용되었고 내게 있어서는 자원봉사활동의 폭을 넓히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이듬해 학부모총회가 열리는 날, 이러한 자료들은 제 몫을 톡톡히 해냈고 드디어 ‘여천고 모자동행봉사단’이 창단되었다. 그동안 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의 한계에 안타까워하며 대안을 모색한 결과,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들이 사회복지시설들에 먼저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하고 그곳에서 자녀들이 함께 봉사활동 겸 봉사학습을 받는다면 폭과 질이 넓어지리라는 생각에 여천고에서 처음 창단한 학부모봉사단은 첫해 80여명의 학부모가 참여한 성공적인 조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부모 자원봉사활동 조직은 곧 이어 내가 발령받아 다녔던 무선중, 여수고, 여수여고, 여천중 등에서 조직되었으며 아울러 이들 조직의 자원봉사활동은 여수의 사회복지시설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여천중 근무 때 서울에서 중화요리음식점을 경영하던 아들이 여수로 내려오고 싶어 하여 조건으로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둘째, 가장 좋은 시설을 만들 것. 셋째, 돈만 아는 장사꾼이 아닌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사업가가 될 것. 이 조건에 아들은 두말 않고 내려와서 웅천에 ‘고고차이나’라는 중화요리음식점을 차렸다. 2015년 2월에 개점을 하게 되니 나는 약속대로 3월부터 가게를 통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가게세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장사가 잘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들에게 무리한 부탁일까 고민하면서도, 나는 ‘소풍’이라는 가게 내의 봉사 팀을 만들어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는 완전히 가게를 쉬도록 하고 복지시설들에 의뢰하여 약 60~70명의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한 후 재능기부에 의한 공연, 탕수육 및 자장면 대접, 후식으로 과일 등을 제공하면서 아내와 아들·며느리 등이 동원된 가족자원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시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약 4년간에 걸쳐 계속해 올 수 있으니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쌍봉복지관에서부터 시작한 여러 복지시설들과의 연락을 통한 어려운 이웃들의 초대는 3년간에 걸쳐 약 1500명 이상의 어르신들이 주로 초대되었고(장애인, 다문화 가정주부들도 포함됨) 올해 들어서는 복지관에도 나오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하여 동사무소에 의뢰하여 초청하기 시작했다. 올 3월의 월호동부터 시작한 이 계획이 여수 전 지역 26개 동을 다 거치려면 약 3년 정도는 걸릴 예정이지만 현재 대교동, 충무동, 문수동 등을 거치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의 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무엇보다 크게 깨닫는 것은 ‘여수시민 우리 모두가 다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고독사’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전남대 여수캠퍼스의 몇 학생들로부터 시작한 ‘이웃사랑실천 대학생 자원봉사단’의 활동을 위해 함께 노력한 월호동 동장님 및 사랑으로 가득 찬 사회복지사님의 정성어린 도움, 고고차이나 중화요리음식점 봉사 팀 ‘소풍’에서 재능기부하고 있는 ‘허숙 판소리 연구소 팀’, ‘여수중앙교회 소속 예울림 국악선교 팀’, 그리고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퇴임한 후 자원봉사로 서빙하고 계시는 ‘부부 봉사 팀’, 함께 하는 가족 모두들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어 감사할 뿐이다.
이제 전교조 해직교사의 아픔을 딛고 복직 후 시작하여 지금까지 수십 년 계속되었던 자원봉사활동의 이야기를 접을까 한다. 생각해보면 자원봉사활동은 내게는 평생의 사명이었을 듯싶다. 마지막, 남은 욕심은 무사히 ‘소풍’의 역할이 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여수의 공적복지제도에 자원봉사활동의 따뜻한 옷, 곧 여수의 마음을 입혀보고 싶은 두 가지다.
리빙스턴의 말대로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에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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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복이 많아선지 쓰는 글마다 호응을 얻는 것 같습니다.
작년 말 여수시 발표 결과 우수작이라고 상금까지 받았던 글을 이제 올리는 것은 시에서 발행된 책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정년 후 여수시와의 관계속에 나머지 인생을 좀 더 적극적인 봉사로 살기 위한 계획속에 출품헀던 것인데 시에서 사실로 인정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앞을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첫댓글 정말 어떤 일이든 사명이 없으면 꾸준할 수는 없어요.
무려 24년을 변함없이 해온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시지만 하늘에 쌓인 상급은 큽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 정신, 그대로이십니다.
여수의 횃불, 문봄의 횃불 감사합니다.
아~ 횃불님, 대단하시고 존경합니다.
님이 있어 사회는 그나마 살만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거듭 가열찬 박수 드립니다.
꾸준히 봉사활동에 헌신하시는 횃불님, 새해에도 더욱 밝은 불 밝혀나가시길 바랍니다!
산 자에게는 젖줄을, 죽은 자에는 이름을 / 남은 삶을 사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정리하며 사니 복잡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니 신념대로 거짓없이 사는 삶인듯 싶습니다.
문봄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감당하는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