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동 장편소설 『훈민정음』 2023 오늘의문학사===
= 책 소개
‘불교 경전’ 연구와 고전 ‘불교문학’ 연구로 저명한 사재동 충남대학교 명예교수가 장편소설 ‘훈민정음’을 집필하였습니다. 이 소설의 원고는 200자 원고지 1848장에 이르고, 신국판 460쪽을 넘긴 대작(大作)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미수(米壽, 88세, 1935년생)의 노익장이며, 특히 중환으로 입원하고 계신 분이 생명의 소진을 무릅쓰고 탈고한 작품이어서 창작 의미가 남다릅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최근의 문학작품과 영화 등에서, 신미 스님을 비롯한 불승과 불제자들의 역할에 부정적 이미지가 만연되어, 양식 있는 불교 신자들은 내면의 아픔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이에 신미 스님을 비롯하여 세종(승왕), 진양대군(수양대군, 승세자) 등이 훈민정음 창제와 활용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장편소설에 담아 불교인들을 자긍하게 합니다.
= 서평 – 리헌석 문학평론가
#1 소설가 사재동 박사의 웅숭깊은 불심(佛心)
소설가 사재동 박사의 장편소설 ‘훈민정음’은 1장부터 13장에 이르는 목차만 일독(一讀)해도 그의 불심이 얼마나 웅숭깊은지 알게 됩니다. 불교중흥을 기원하는 대선사가 스스로 소신공양을 하여 ‘교중불음’의 완성을 유시하였고, 이 바탕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실용하였으니, 인연의 가피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1. 불교는 다시 일어나는가
2. 소신공양의 비원
3. 왕실 불교와 하나 되어
4. 불교중흥의 대방편
5. 훈민정음의 창제
6. 문자 전쟁의 시작
7. 선대 국왕의 숭모·선양
8. 국문불경의 찬성
9. 영상회상 불보살
10. 정음정책의 도전적 시행
11. 궁중에서 내방으로
12. 사찰에서 민간으로
13. 조선은 불교왕국이다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여는 글’ 일부
#2 불교의 소신(燒身) 공양이 훈민정음 창제를 촉발하였다
미수(米壽)에 이른 사재동 소설가의 장편소설 『훈민정음』의 집필 방향은 불교의 쇄신과 중흥에 있습니다. 고려를 쇠망하게 한 불교를 조선 태종이 ‘숭유척불’의 기치 아래 혁파합니다. 그러나 태종의 아들 세종대왕은 애민정책을 펼치며 외유내불(外儒內佛) 정책을 취합니다. 이때 <불교 중흥>의 여망은 ‘만허 대사’의 소신(燒身) 공양으로 전기(轉機)를 맞습니다.
만허대사는 소신 직전의 설법에서 <불교의 위대함과 위신력을 체달하고 사수해 온 여러 스님들, 이제부터 불교중흥에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말로써 펼친 주장을 실증하는 증표로써 스스로 소신하여 <쉽고 편리한 나라 문자를 창제 보급하고, 그 문학과 예술로써 백성을 재미있고 자비롭게 교화하여 모두 즐겁게 살도록 하라>는 유시가 힘을 얻습니다.
# 3. 교중불음이 훈민정음의 바탕이었다.
세종대왕(승왕)은 신미 왕사를 ‘선교 양종의 도총섭’으로 임명하여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승세자)과 함께 새로운 표음문자 창제를 맡깁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모양은 모두 가장 기본적이고 규칙적인 표기, 점(ㆍ)과 직선으로 횡선(ㅡ)과 종선(ㅣ), 직각으로 사각형(□)과 삼각형(△), 그리고 원형(○)으로만> 이루어진 음소(音素)를 찾아내어 ‘교중불음’을 창제합니다.
그러나 교중불음은 불교에 국한된 명칭이어서 세종(승왕)은 <나라의 문자이니, 과인이 직접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외유 내불의 중도적 문자,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간편한 문자를 새로> 만들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초성과 중성 28자를 만들고, 종성은 초성을 다시 활용하는 것 등, 대부분 ‘교중불음’의 음소문자를 인용하였고, 이들이 모여 음절문자가 되고, 다시 단어와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불교에서 오랜 기간 연구한 것들의 활용이었을 뿐입니다.
# 4. 불교계의 훈민정음 활용 사례들
3.1 훈민정음 창제 반포 이후, 유교에서는 ‘용비어천가’를 지어 원문을 한글로 옮기었지만, 그 주요한 내용에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에서 새로 지은 정음을 전폭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2 세종대왕은 나라의 공문서를 정음으로 표기하도록 선포합니다. 당시의 관리와 유생들은 이를 반대하여 불가 상소를 올리며 저항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든 공문은 물론 의식에서도 정음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3.3 지배층, 관리, 양반, 유생들은 훈민정음이 쓰기에 편리한 줄 알지만, 중화사상에 빠져 창제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적극 지지하고 활용하여 정음의 정착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5. 가람 본사(本寺) 전각의 명칭과 배치 요람
불교 본사에 전각에 대한 명칭과 배치 상황은 알려진 바가 드뭅니다. 사재동 소설가는 장편소설 『훈민정음』에서 그 예를 적시하여 좋은 예를 제시하였습니다.
<연화 산봉으로 들러리 한 명찰은 일주문을 거쳐 들어가 별천지를 이루었다. 천왕문과 금강문에 이어 팔상전, 그 좌측에 미륵보전과 미륵대불, 응향각·사리각과 사리탑, 우측에 범종각·종무실, 올라가 원통전과 조응하여 비로전·약사전, 더 올라가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영산전·지장전이 둘러서고, 그 뒤로 강원과 선원, 그 주변에 설법전·윤장전·해장전·도솔전·응진전·봉로전·향적전, 전각 간의 통로에 대양문·조계문·해탈문, 그리고 연등각·천자각 등에 이어 연적당·진해당·무설당·궁현당·척석당·청정당·세이당·호연료·명월료·청풍료·변원료·상남원료·동빈료·서빈료 등과 동상실·중객실, 그리고 동행랑·서행랑과 연화방·종각방까지 전각의 바다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즉 전각의 명칭과 배치에 대한 전범으로써 예증하고 있습니다.
#6 부처님 봉안 과정의 이운(移運) 의식(儀式)이 정연하다
사재동 작가의 이 소설에는 궁궐에 ‘내불당’을 증축하고, 그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는 합당한 절차가 정연합니다.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서술하여 새 부처님 봉안의 전범을 제시합니다. 금동삼신불상, 양가불상, 아미타불상, 보살상의 이운(移運)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옹호게>와 <찬불게>·<출궁게> 등의 가창·염불로 연행하여 여법하게 마쳤다.>
<의식승이 <사무량게>와 <영산지심>, <헌좌게> 등을 염송하여 그 불상들이 봉안되었음을 고하고, <다게>로써 차를 바친 후에 모두가 꽃과 향을 올리고 줄지어 참배하였다.>
<재의승 등이 <옹호게>를 합송하고 <거목>으로 불·보살과 성중을 앙청하였다. 가영승이 노래하여 <귀정례>를 마치고 타악기에 맞추어 〈다게>를 가송하고는 법주가 <탄백>을 유장하게 염송하였다.
여기에 감응되어 범종을 7번 치고 바라를 3번 울렸다. 이어 <할향>·<등게>·<삼지심> 등 음악적 게송이 7편이나 간곡하게 불렸다. <천수경>의 독송이 입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화취진언>에다 <도량게>·<참회게>를 송념한 후에 <거불>로 삼신불께 서원하고 <보소청진언>을 염송하였다.>
<법주가 <앙고전>으로 부처님께 점안의식을 고유하고 그 원만 성취를 갈구하니, 그 법력과 권능으로 감명이 더욱 깊었다. 또한 <정지진언>·<해예진언>·<정삼업진언> 등 신묘한 진언이 타악기에 맞추어 16번이나 계속>되었다.
<<찬법신>과 <찬보신>·<찬화신>에 이어 <찬약사>·<찬비타>와 <찬삼승>·<찬팔부>·<찬희명자> 등이 궁중 악사들의 연주에 맞추어 여악들의 가창과 무인들의 춤으로 정중하게 연행되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순서가 있으니, 이를 확인하고 연행하는 것도 문화유산 발굴의 주요한 사명일 터입니다.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