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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웅아, 네가 던지는 글은 카르멘이 던지는 꽃이다!"<신우재>
지난해 오늘(2021.12.11)
글방에 실린 글 두 편 재록
신복룡의 졸고
신복룡
방장님께,자주 만나야 이바구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데,
세월이 원망스럽습니다. 글 한 편 보내오니 소납하시기 바랍니다.
식구들, 늘 평강하시기를 빌며,
신복룡 드림
...........................
숙제 1, 2
백연수('마사모'/마르코글방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님, 양종석 부회장님, 김승웅 방장님을
비롯하여 글방 식구 여러분들의 존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돌아보니 한 해가 저만치 흘러가고, 벌써 초동(初冬)입니다.
《예기》(禮記)(38) 「삼년문」(三年問)에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는데”(人生如白駒過隙)라는 말이 나오데,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 장과
《사기》(史記) 「열전(列傳)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에도 이 말이 나오고,
특히 《삼국지》에서 강유(姜維)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고사성어입니다.
문득 그 구절이 생각나면서 인생의 초조를 느낍니다.
《숙제 1》
뒤늦게 손옥철 선생님의 숙제를 제출해서 죄송합니다.
답안지 제출이 늦어진 것은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본디 게으른 데다가 손 선생님 같은 고수가
숙제를 내시니 가위가 눌려 바로 대답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임철순 주필까지 침묵하고 있으니 태풍전야의 정적 같아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참다못한 손 선생님께서 먼저 모범 답안을 내시니 무안한 마음으로 저도 답안지를 제출합니다.
손 선생님이 제출하신 액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손 선생님께서는 이 액자를 아래와 같이 번역하셨습니다.
咀實其測(열매를 씹어서 그 맛을 음미하라 : 글을 읽으면 깊이 사색하고 체득하라.)
含英之出(입 안에 머금었던 꽃을 뱉어내라 : 마음에 고이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라.)
그런데 위와 같은 손 선생님의 의견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손 선생님께서는 이 두 폭이 개별적인 것이라고 여기시는 듯한데
필체로 볼 때 대련(對聯)으로 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으로 쓴 것이라면 含英之出에도 낙관이 있어야 하는데 낙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래 것과 대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것을 대련으로 볼 때 咀實其測 含英之出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含英之出 咀實其測의 순서로 보는 것이 옳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통상 낙관 찍힌 것이 뒷장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앞장에 낙관을 찍는 서법은 없습니다.
앞장에는 흔히 두인(頭印)을 찍는데 이 액자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대련이라고 생각할 때 공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로로 쓰는 대련은 드물고,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럴 경우에는 두 대련을 아래 위로 거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거는 것을 드물게 본 적이 있습니다.
셋째로 이 대련의 앞뒤가 중요하다는 두 번째 지적의 연속에서,
그것이 중요한 것은 선후가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그러면, 번역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의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해석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시 본문을 다시 살펴보면, 含英之出 咀實其測입니다. 여기에서 첫 번 구절의 갈지(之)의 번역이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之를 쓸 때 소유격 조사 “의”로 읽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구절에서 之를 “....의”로 읽으면 번역이 안 됩니다.
백화(白話) 이후에 대체로 적(的)으로 바꿔 쓰게 되었지만, 고문에서의 지(之)는 소유격 조사가 아니라
목적격 대명사로 써서 “그것”(it)으로 번역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우에 지(之)는 입장을 바꿔 “그것을” 생각해 본다고 번역하고,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할 때 매듭을 지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혼란을 피하고자 含英其出이라 쓰지 왜 含英之出이라고 썼느냐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지만,
대련에서는 같은 글자인 其를 아래위로 거푸 쓰지 않는 운법(韻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지(之)를 “그것”으로 번역한다면
含英之出 咀實其測은
“꽃닢은 입에 머금어 보았다가 그것을 뱉게 마련이지만
열매는 씹어보고 그 맛을 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은유(隱喩)는 손 선생님의 번역(意譯)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유는 어디까지나 은유이기 때문에 누구의 해석이 맞고 틀린가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가가 출제하신 시(詩)를 풀이하려니 포철(浦鐵) 앞에 대장간을 차린 듯하여 오금이 저립니다.
부족하고 틀렸더라도 널리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숙제 2》
2번 숙제는 하태형 교수님과 오고 간 신윤복의 미인도에 관한 저의 졸렬한 재론입니다.
아마도 하 교수님께서는 저의 글을 읽으시고 복부불쾌감으로 몇일 고생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을 대접하시느라고 내색하지 않으시고
안으로 삭이신 아량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그 화제(畫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반박흉중만화춘 盤礴胸中萬化春
필단능여물전신 筆端能與物傳神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반박(盤礴)이었습니다. 하 교수님께서는 이 대목을 설명하시면서,
《장자》의 대목(宋元君 將畵圖,衆史皆至,受揖而立,舐筆和墨,在外者半。
有一史后至者,儃儃然不趨,受揖不立,因之舍。公使人視之,則解衣般礴臝。
君曰:‘可矣,是眞畵者也)을 인용하시고, 解衣般礴臝에 중점을 두시어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우니”라고 번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나오는 대로 “般礴을 다리를 쭉 뻗고”라고 해석하여,
이를 미인도에 대입한다면 해석이 안 된다는 의미로 말씀드린다는 것이 “오역”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경솔했다는 후회가 들어 등이 서늘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윤복의 시에 나오는 반박(盤礴)을 “다리를 쭉 뻗고”라고 해석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전을 담론하기 위해 제가 만나는 소모임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더니
누구는 “옷고름을 풀며 넓은 가슴을 헤치니 만 가지 춘정이 풍기는데”라는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그래도 심에 차지 않은 저는 백방으로 찾아보다가 <百度漢語字典>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찾아냈습니다.
盤礴이라 함은
(1)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다.(舒展两腿而坐)
(2) 광대무변하다.(廣大无邊)
(3)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傲視)
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서 위의 세 가지 해석을 대입해보면
그 여인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다는 해석이 적실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러면 광대 무변하다는 뜻일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 (清)나라에서 가장 현학적이었던 엄복(嚴復)이 〈甲辰, 出都呈同里諸公〉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中國山川分兩戒
南嶺奔騰趨左海
東行欲盡未盡時
盤薄嶙峋作奇怪
거듭 말씀드리자면 엄복은 영국에 유학하고 진화론을 중국에 소개하는 책을 썼는데
너무 현학적으로 글을 써 양계초(梁啓超)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양계초가 엄복을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의 책은 제가 봐도 무슨 뜻이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엄복의 말이, “개나 소나 다 알아들으면 그게 글이라 할 수 있나?” 했습니다.
그런 그가 위의 시를 썼으니 그 깊은 뜻을 알기가 쉽지 않겠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제가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의 산천은 둘로 나뉘어 있어
남쪽 산맥은 내달리듯 복주(福州)에 이르고
동쪽으로 끝까지 가 보고 싶으나 세월이 허락지 않는데
그곳의 넓고 가파른 산세가 기괴하도다.
여기에서는 盤薄이 “넓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인도에는 역시 적절치 않는 용례입니다.
그래서 제가 착목(着目)한 것이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제가 언제인가 혜원 신윤복 특별전을 연다기에 미술관을 찾았더니,
해설하는 큐레이터가 말하기를, 혜원의 인물화의 핵심은 “눈길”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화제를 다시 번역해 보면 이렇다고 여겨집니다.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슴 속에 만 가지 춘정이 일어나는데
이 붓끝으로 감히 그 신묘한 뜻을 전할 수 있을는지...
이것이 저의 최종 번역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건대 《장자》를 인용하시면서 이를 미인도에 적용하신 것은
하태형 박사님이 盤礴을 “오역”한 것을 보신 탓이라는 나의 지난 글은 경솔한 표현이었음을 고백하며,
이제 이 글을 통하여 복부불쾌감을 푸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번역은 하 교수님이 맞았습니다.
선현들이 말씀하시기를, “누구인들 실수가 없으랴, 고치면 선함이 되느니라”(人誰無科 改之爲德) 하셨으니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만날 때 이번에는 제가 벌주로 쌩맥주 500CC를 대접하겠습니다.
즐거운 세모, 보내시기 바라며,
신복룡 드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한국근현대사, 한국정치사상사), 건국대 중앙(상허)도서관장, 대학원장 역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수상(2001, 2011)/저서: 60여권/근간: "삼국지", "플루타크"영웅전>
정치외교학과 배경에 대한 공감
김향자
서울약대 재학시절
안녕하세요?
Kathy hyangzah kim 입니다.
서울대학 문리대 정치외교학과의 배경과 환경에 많은 공감을 갖게 되며
자유민주주의와 학원의 자유를 제일로 목표로 삼고 훌륭하신 서울대학교 교수님 스승님들의 말씀을
초롱초롱 두눈을 뜨고 귀담아 들으며 공부하던 대학시절을 새롭게 생각나게 합니다.
문리대 도서관, 운동장, 마로니에와 은행나무, 동숭동 거리,
낙산다방, 그리워지는 추억의 캠퍼스 입니다.
김기엽 장로님과 점심같이 하고 담화하였습니다.
글 보내주셔
감사드립니다.
캐티드림
<재미 약사/LA거주/경기여고~서울대 약대 졸>
2022. 12. 10. 오후 7:17 (1일 전) | |||
지난해 오늘(2021.12.11)
글방에 실린 글 두 편 재록
신복룡의 졸고
신복룡
방장님께,자주 만나야 이바구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데,
세월이 원망스럽습니다. 글 한 편 보내오니 소납하시기 바랍니다.
식구들, 늘 평강하시기를 빌며,
신복룡 드림
...........................
숙제 1, 2
백연수('마사모'/마르코글방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님, 양종석 부회장님, 김승웅 방장님을
비롯하여 글방 식구 여러분들의 존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돌아보니 한 해가 저만치 흘러가고, 벌써 초동(初冬)입니다.
《예기》(禮記)(38) 「삼년문」(三年問)에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는데”(人生如白駒過隙)라는 말이 나오데,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 장과
《사기》(史記) 「열전(列傳)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에도 이 말이 나오고,
특히 《삼국지》에서 강유(姜維)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고사성어입니다.
문득 그 구절이 생각나면서 인생의 초조를 느낍니다.
《숙제 1》
뒤늦게 손옥철 선생님의 숙제를 제출해서 죄송합니다.
답안지 제출이 늦어진 것은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본디 게으른 데다가 손 선생님 같은 고수가
숙제를 내시니 가위가 눌려 바로 대답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임철순 주필까지 침묵하고 있으니 태풍전야의 정적 같아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참다못한 손 선생님께서 먼저 모범 답안을 내시니 무안한 마음으로 저도 답안지를 제출합니다.
손 선생님이 제출하신 액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손 선생님께서는 이 액자를 아래와 같이 번역하셨습니다.
咀實其測(열매를 씹어서 그 맛을 음미하라 : 글을 읽으면 깊이 사색하고 체득하라.)
含英之出(입 안에 머금었던 꽃을 뱉어내라 : 마음에 고이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라.)
그런데 위와 같은 손 선생님의 의견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손 선생님께서는 이 두 폭이 개별적인 것이라고 여기시는 듯한데
필체로 볼 때 대련(對聯)으로 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으로 쓴 것이라면 含英之出에도 낙관이 있어야 하는데 낙관이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래 것과 대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것을 대련으로 볼 때 咀實其測 含英之出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含英之出 咀實其測의 순서로 보는 것이 옳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통상 낙관 찍힌 것이 뒷장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앞장에 낙관을 찍는 서법은 없습니다.
앞장에는 흔히 두인(頭印)을 찍는데 이 액자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대련이라고 생각할 때 공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로로 쓰는 대련은 드물고,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럴 경우에는 두 대련을 아래 위로 거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거는 것을 드물게 본 적이 있습니다.
셋째로 이 대련의 앞뒤가 중요하다는 두 번째 지적의 연속에서,
그것이 중요한 것은 선후가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그러면, 번역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의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해석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시 본문을 다시 살펴보면, 含英之出 咀實其測입니다. 여기에서 첫 번 구절의 갈지(之)의 번역이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之를 쓸 때 소유격 조사 “의”로 읽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구절에서 之를 “....의”로 읽으면 번역이 안 됩니다.
백화(白話) 이후에 대체로 적(的)으로 바꿔 쓰게 되었지만, 고문에서의 지(之)는 소유격 조사가 아니라
목적격 대명사로 써서 “그것”(it)으로 번역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우에 지(之)는 입장을 바꿔 “그것을” 생각해 본다고 번역하고,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할 때 매듭을 지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혼란을 피하고자 含英其出이라 쓰지 왜 含英之出이라고 썼느냐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지만,
대련에서는 같은 글자인 其를 아래위로 거푸 쓰지 않는 운법(韻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지(之)를 “그것”으로 번역한다면
含英之出 咀實其測은
“꽃닢은 입에 머금어 보았다가 그것을 뱉게 마련이지만
열매는 씹어보고 그 맛을 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은유(隱喩)는 손 선생님의 번역(意譯)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유는 어디까지나 은유이기 때문에 누구의 해석이 맞고 틀린가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가가 출제하신 시(詩)를 풀이하려니 포철(浦鐵) 앞에 대장간을 차린 듯하여 오금이 저립니다.
부족하고 틀렸더라도 널리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숙제 2》
2번 숙제는 하태형 교수님과 오고 간 신윤복의 미인도에 관한 저의 졸렬한 재론입니다.
아마도 하 교수님께서는 저의 글을 읽으시고 복부불쾌감으로 몇일 고생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을 대접하시느라고 내색하지 않으시고
안으로 삭이신 아량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그 화제(畫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반박흉중만화춘 盤礴胸中萬化春
필단능여물전신 筆端能與物傳神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반박(盤礴)이었습니다. 하 교수님께서는 이 대목을 설명하시면서,
《장자》의 대목(宋元君 將畵圖,衆史皆至,受揖而立,舐筆和墨,在外者半。
有一史后至者,儃儃然不趨,受揖不立,因之舍。公使人視之,則解衣般礴臝。
君曰:‘可矣,是眞畵者也)을 인용하시고, 解衣般礴臝에 중점을 두시어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우니”라고 번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나오는 대로 “般礴을 다리를 쭉 뻗고”라고 해석하여,
이를 미인도에 대입한다면 해석이 안 된다는 의미로 말씀드린다는 것이 “오역”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경솔했다는 후회가 들어 등이 서늘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윤복의 시에 나오는 반박(盤礴)을 “다리를 쭉 뻗고”라고 해석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전을 담론하기 위해 제가 만나는 소모임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더니
누구는 “옷고름을 풀며 넓은 가슴을 헤치니 만 가지 춘정이 풍기는데”라는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그래도 심에 차지 않은 저는 백방으로 찾아보다가 <百度漢語字典>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찾아냈습니다.
盤礴이라 함은
(1)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다.(舒展两腿而坐)
(2) 광대무변하다.(廣大无邊)
(3)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傲視)
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서 위의 세 가지 해석을 대입해보면
그 여인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다는 해석이 적실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러면 광대 무변하다는 뜻일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 (清)나라에서 가장 현학적이었던 엄복(嚴復)이 〈甲辰, 出都呈同里諸公〉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中國山川分兩戒
南嶺奔騰趨左海
東行欲盡未盡時
盤薄嶙峋作奇怪
거듭 말씀드리자면 엄복은 영국에 유학하고 진화론을 중국에 소개하는 책을 썼는데
너무 현학적으로 글을 써 양계초(梁啓超)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양계초가 엄복을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의 책은 제가 봐도 무슨 뜻이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엄복의 말이, “개나 소나 다 알아들으면 그게 글이라 할 수 있나?” 했습니다.
그런 그가 위의 시를 썼으니 그 깊은 뜻을 알기가 쉽지 않겠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제가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의 산천은 둘로 나뉘어 있어
남쪽 산맥은 내달리듯 복주(福州)에 이르고
동쪽으로 끝까지 가 보고 싶으나 세월이 허락지 않는데
그곳의 넓고 가파른 산세가 기괴하도다.
여기에서는 盤薄이 “넓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인도에는 역시 적절치 않는 용례입니다.
그래서 제가 착목(着目)한 것이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제가 언제인가 혜원 신윤복 특별전을 연다기에 미술관을 찾았더니,
해설하는 큐레이터가 말하기를, 혜원의 인물화의 핵심은 “눈길”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화제를 다시 번역해 보면 이렇다고 여겨집니다.
도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슴 속에 만 가지 춘정이 일어나는데
이 붓끝으로 감히 그 신묘한 뜻을 전할 수 있을는지...
이것이 저의 최종 번역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건대 《장자》를 인용하시면서 이를 미인도에 적용하신 것은
하태형 박사님이 盤礴을 “오역”한 것을 보신 탓이라는 나의 지난 글은 경솔한 표현이었음을 고백하며,
이제 이 글을 통하여 복부불쾌감을 푸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번역은 하 교수님이 맞았습니다.
선현들이 말씀하시기를, “누구인들 실수가 없으랴, 고치면 선함이 되느니라”(人誰無科 改之爲德) 하셨으니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만날 때 이번에는 제가 벌주로 쌩맥주 500CC를 대접하겠습니다.
즐거운 세모, 보내시기 바라며,
신복룡 드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한국근현대사, 한국정치사상사), 건국대 중앙(상허)도서관장, 대학원장 역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수상(2001, 2011)/저서: 60여권/근간: "삼국지", "플루타크"영웅전>
정치외교학과 배경에 대한 공감
김향자
서울약대 재학시절
안녕하세요?
Kathy hyangzah kim 입니다.
서울대학 문리대 정치외교학과의 배경과 환경에 많은 공감을 갖게 되며
자유민주주의와 학원의 자유를 제일로 목표로 삼고 훌륭하신 서울대학교 교수님 스승님들의 말씀을
초롱초롱 두눈을 뜨고 귀담아 들으며 공부하던 대학시절을 새롭게 생각나게 합니다.
문리대 도서관, 운동장, 마로니에와 은행나무, 동숭동 거리,
낙산다방, 그리워지는 추억의 캠퍼스 입니다.
김기엽 장로님과 점심같이 하고 담화하였습니다.
글 보내주셔
감사드립니다.
캐티드림
<재미 약사/LA거주/경기여고~서울대 약대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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