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언(隻言) : 일사(逸士) 노필은 본관이 고성(固城)이다. 젊었을 때 술사(術士)를 만나 운명을 물었더니, 술사가 한참 동안 잠잠히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는 무인년에 으뜸으로 뽑히고, 이듬해 기묘년에 본도(本道)의 안찰사(按察使)가 되지마는 다만 한 가지 흠이 있음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하고, 붓을 들어 절구(絶句) 한 수를 써 주었는데,
진수(미인의 이마)와 아미(미인의 눈썹)가 물러나니 / 屛去螓首蛾眉
삼조가 실색하고 / 三朝失色
상에 웅장(곰 발바닥. 8진미의 하나)과 표태(표범 태. 진미의 하나)가 끊어지니 / 案絶態掌豹胎
모든 짐승이 춤을 춘다 / 百獸率舞
하였다.
노필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부터 과거에 뜻이 없고, 또 무인년이면 내 나이가 50을 넘는데, 어찌 과거에 올라 안찰사가 될 리가 있겠는가. 또 병거(屛去.물리쳐 버림)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니, 술사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모름지기 이 말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무인년이 되면 그 징험이 나타날 것이다.” 하였다.
조정에서 유일(遺逸.과거시험이 아닌 추천으로 벼슬에 나아감)을 찾자는 의논이 일어나자 노필이 유일의 첫째로 뽑히어 바로 주부(主簿)로 임명되었으니, 으뜸으로 뽑힌[擢魁] 징험이다. 이듬해 기묘년에 본도의 도사(都事)로 임명되었는데 마침 감사(監司)에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부인(符印)을 받아 수개월 동안 공사(公事)를 집행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안절(按節)의 징험이다. 그때 마침 여악(女樂)을 폐하고 쓰지 않게 되었으니, 아미(蛾眉)가 물러난 징험이다. 당시 여러 고을에서 어사들에게 바치는 찬그릇이 분에 지나치게 사치하였으므로 그 폐풍을 고치자고 청하는 자가 있어 팔도에 명을 내려 어사들에 대한 사치스러운 대접을 일체 금지하였으므로 높은 손님이라도 오직 나물과 과일 두어 그릇을 놓을 뿐이었으니, 상에 웅장(熊掌)이 끊어진 징험이라. 이야말로 매우 괴이한 일이라 하겠다.
보유(補遺) : 노필은 □□생이고 자(字)는 □□이다. 별과(別科) 천목(薦目)에는, 우애(友愛)가 온 고을에 드러나고 학식이 순정(醇正)하며 또 재행(才行)이 있다 했으나, 낙제(落第)하고 여러 번 전근하다가 경상 도사(慶尙都事)가 되었다. 그때 말하는 사람들은, “경상도는 땅이 크고 물건이 많아서 1년 안 에 두 번 순찰할 수 없으므로 옥송(獄訟)이 침체하게 된다. 만약 좌우도로 나누면 순방(巡訪)하여 민정을 살피기에 쉬울 것이다.” 하였으나, 조정의 의론이 통일되지 않아 가을에 가서야 비로소 도를 좌우(경상좌도,경상우도)로 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사가 혼자 머물러 공사를 행하니 정랑(正郞)으로 승진되었으나, 11월에 언관(言官)이, “별다른 행적이 없는데 처음부터 참상(參上. 6품 이상 종3품 이하) 벼슬을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여 벼슬을 내리기를 청하였으므로, 사직하고 시골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