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형 회장의 범곡(諱 찬호)公에 대한 시각
⌈위대한 멘토와 똑똑한 멘티(mentee)로 역사는 유지되고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남기신 유무형의 씨족문화를 하나도 폐기하지 않고 더욱 중흥시키고자 진력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와 관계하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범곡公과의 관계는 저의 5살 연상인 사회의 선배요, 피의 결정체인 씨족의 측면에선 같은 항렬의 형님이 되십니다. 씨족의 거대조직을 창설하여 이끌어 오시고 퇴임 후에도 음으로 양으로 보살펴 주심에 후임으로서 늘 존경의 예를 표합니다. 아직도 “나를 따르라”는 솔선수범의 외침이 귀에 맴돕니다. “뭉쳐야 산다”는 두 눈의 광채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와 삼십 년 가까운 기간을 동고동락했습니다.
公의 키워드(key word)는 준비된 지도자, 불도저 같은 강인으로 축약됩니다. 두 키워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후세들을 풍요롭게 합니다. 군인으로서 전쟁을 통해 배우고 익힌 리더십을 사회의 각 조직에 적용해 성공의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결국, 몸담은 여러 조직에 동일한 전략적 패턴을 구사해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조국근대화 및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확산시켰습니다. 두 키워드는 피와 땀과 눈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지역민들의 눈물을 닦으려 정계진출을 꾀하셨으나 낙선으로 고난을 자처하셨습니다.
公은 위문 역사의 귀감입니다.
선배로, 형님으로, 전임자로 남기신 숭고한 뜻을 소중히 받들었고 받들고 있습니다. 위대한 멘토와 똑똑한 멘티(mentee)로 역사는 유지되고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남기신 유무형의 씨족문화를 하나도 폐기하지 않고 더욱 중흥시키고자 진력했습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철학 삼아 사람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않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로지 사람의 관계가 씨줄과 날줄이 얽히고 설켜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고 여기셨습니다.
일찍이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을 전수해 기술입국과 교육입국의 철학으로 산업전사 양성에 앞장서서 진두지휘하시고 여기에서 얻어진 수입으로 고향인 순천에 학교 부지를 매입해 학교를 신축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장학사업과 농촌지역개발을 위해 다리를 놓고 농로를 포장하는 등 정부가 해야할 일을 사비로 시행해줘 조국근대화 사업에 이바지하셨습니다. 가히 살신성인의 모범이라 하겠습니다.
헌신과 열정과 고난은 성공의 삼위일체입니다.
그 실천의 마지막 걸음이 피의 결정체인 장흥위씨 재경종친회 참여와 더불어 전국규모의 대종회 창립에서 나타났습니다. 씨족문화창달, 후진양성에 진력을 다하셨습니다. 특히 재단법인 장흥위씨 장학회와 하계수련회를 출범시켰고 씨족문화연구소를 바탕으로 종보창간, 장흥위씨요람과 장흥위씨 천년세고 등을 발간하여 장흥위씨의 유구한 역사를 집대성하고 지성사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흥위씨 중흥의 초석을 다진 모선의 주역이요, 문중의 큰 바위얼굴이라 부릅니다.
2019.03.23.
송담 위자형
(출처 : 범곡 위찬호 전기)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존중하는 것은 예(禮)에 속합니다. 범곡公과 송담회장님의 관계가 그 모델입니다. 10년 가량 지근에서 살펴보니 송담회장님께서는 서울역 인근에 소재한 범곡公의 집무실을 자주 찾아 식사를 대접하고, 건강을 기원하며,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셨습니다.
그때마다 범곡公께서는 매우 흡족해 하시며 송담회장님께 흔쾌히 조언하셨고 송담회장님의 덕성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귀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