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 남릉 하산 중, 장대비는 멎었지만 안개가 자욱했다
계방산은 오대산에서 한강변까지 뻗어 내린 산맥 중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오대산국립공원
의 서쪽에 위치하고, 남쪽의 영동고속도로가 동서로 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1,950
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나,
그 동안 오대산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명산이다.
계방산과 서쪽의 회령봉 사이에 있는 표고 1,089m의 운두령은 산도 많고 따라서 큰 고개도
많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이다. 계방산에서 발원하는 계방천은 내린천으로 흘러 소
양강에 흘러든다.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의 ‘계방산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7월 8일(토), 비, 장대비
▶ 산행인원 : 11명
▶ 산행거리 : GPS 거리 16.9km
▶ 산행시간 : 10시간 3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3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11 - 홍천군 내면 창촌리 광대평 소한1교, 차내 계속 취침, 산행준비
04 : 34 - 산행시작
05 : 57 - 956.1m봉
06 : 30 - △1,024.8m봉
07 : 38 - 뒷골고개
08 : 34 - 1,087.4m봉
10 : 30 - △1,229.7m봉
10 : 55 - 1,380m 고지, 소계방산 갈림길
11 : 08 ~ 11 : 50 - 안부, 점심
12 : 42 - 계방산 주릉, 1,549.9m봉
13 : 18 - 계방산(桂芳山, △1,577.4m)
14 : 05 - △1,278.0m봉
15 : 00 -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삼거리, 계방산 주차장, 산행종료
15 : 30 ~ 17 : 30 - 진부, 목욕, 저녁
19 : 3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와 표고 표시가 다소 다르다)
2. 계방산 정상에서
【고고종단(固高縱斷)이란?】
‘고고종단’은 경남 고성군 삼산면 봉화산에서 강원도 고성군 고성산까지 종단하는 산줄기이
다. 대간거사 님의 고고종단 1구간 때의 산행공지 헌사를 부연한다.
“고고종단(경남 고성에서 강원 고성까지)은 금홍횡단(강릉 금진나루에서 남양주 홍유릉까
지)과 더불어 상고대 님의 역작이자, 오지산행팀 줄긋기 실력의 정화를 보여주는 모범사례
라 하겠습니다. 단맥, 분맥, 지맥 등 정체불명의 개념이 횡행하여 우열과 옥석을 가리기 힘든
난세에, 본 횡단, 종단은 과거의 졸렬한 맥 잇기와는 당최 비교가 불가한 신개념 국토답사행
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어려운 게 발상의 전환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도 맛볼 수 없는 산행의 묘미를 즐겨보시려면, 오지산행팀 고고종단 일정과 함께!”
▶ △1,024.8m봉, 뒷골고개
03시 11분. 광대평 소한1교 앞이다. 다리 아래 자운천(紫雲川) 흐르는 물소리를 자장가 삼
아 차분하니 잔다. 04시 05분. 기상. 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 비비며 주섬주섬 장비 꺼내
산행 준비한다. 지금은 부슬비가 내리지만 풀숲은 흠뻑 젖었을 것이라 스패츠 단단히 매고,
지난 날 오지산행에서 공동구매한 방수치마를 처음 두른다. 이 방수치마를 두르고 싶어서 은
근히 우중산행하기를 기다렸다.
소한1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가파른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물구덩이인 덤불과 잡목 숲을
한 피치 뚫었을까 개활지로 눈앞이 훤히 트이더니 비닐 멀칭하고 블루베리(?) 심은 너른 밭
이 나온다. 일렬로 질러간다. 다시 울창한 잡목 숲이다. 열대야다. 이 새벽이 후덥지근하다.
헤드램프 불빛도 덥다. 마치 화로를 이고 가는 것 같다.
총무인 신가이버 님이 방수치마를 종일 두른 사람에게는 여성동지로 간주하여 회비 중 1만
원을 깎아준다고 했다. 방수치마의 효능은 저간에 대포 님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무엇보다
젖은 풀숲을 헤칠 때 바지가 젖지 않을뿐더러 스패츠 기능까지 겸한다고 했다. 또한 비 올 때
쓰개치마나 배낭커버로 사용할 수 있고 휴식할 때나 점심 때 자리로도 안성맞춤이다.
회비까지 1만원을 깎아준다니 이런 횡재가 또 있을까. 방수치마를 꼭꼭 여몄다.
그런데 한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방수는 곧 방풍이라 우선 더웠다. 바지는 치마 안에서 이미
땀으로 푹 젖었다.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치맛자락이 자주 내 발에 밟혀 몇 번이나 고꾸라질
뻔했다. 회비 전액을 탕감해준다고 하여도 도저히 못 견딜 노릇이다. 벗었더니 한결 낫다. 풀
숲 빗물에 젖는 것이 차라리 시원하다.
밀림 속 소낙비가 내린다. 갈잎들이 먼저 부산하다. 잠시 숲 벗어나 하늘 트인 데 나가면 쏴
아 하는 빗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듣기 좋다. 이때는 등산화 속 양말이 보송보송하것다 여
름산행의 드문 정취로 여겨 걸음걸음이 사뭇 즐거웠다. 더 세차게 쏟아지기를 주문하는 이도
있었다. 바람과 번개와 천둥소리가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빗속에서 △1,024.8m봉을 넘는다. 풀숲을 다 뒤졌으나 삼각점은 찾지 못했다. 정남쪽으로
방향 틀고 고만고만한 표고의 봉우리를 무수히 넘는다. 어디쯤에서 서쪽으로 방향 틀어 뒷골
고개로 내릴까 현골 쪽 지능선들을 예의 관찰하며 간다. 여길까? GPS 확인한다. 1,012.0m봉
을 막 넘었다. 0.3km 정도 더 가야 한다.
990m봉. 메아리 대장님과 오모육모 님이 교통정리하고 있다. 서진하여 뒷골고개로 내린다.
내내 인적 가린 풀숲 무성한 등로다. 비에 흠뻑 젖은 풀숲이다 보니 양팔 벌려 풀숲 헤치는
것이 평형하여 물살을 가르는 셈이다. 뚝 떨어져 바닥 친 안부가 뒷골고개다. 현골 고랭지 밭
이 고갯마루 근처까지 다가왔다.
3. 비 내리는 숲속
4. 비 내리는 숲속
5. 뒷골고개 아래 현골 마을
6. 뒷골고개에서 휴식 중
▶ 계방산(桂芳山, △1,577.4m)
프로의 세계는 언제 어디서다 냉정하다. 수담 님이 도중에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 헤매다 뒤
늦게 뒷골고개에 당도하자 여태 쉬고 있던 일행은 곧바로 일어나 출발한다. 1,087.4m봉이
첨봉이다. 고도 250m를 직선거리 0.8km로 올라야 한다. 방금 전의 산행은 예행연습이었다.
비 또한 그렇다.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기세 좋게 내린다.
수직으로 내리쏟아지는 빗줄기가 장관이다. 덩달아 우리도 신난다. 씩씩하게 걷는다. 겨드랑
이와 앙가슴과 등줄기가 흘러내리는 빗물로 간지럽다. 속속들이 젖어 마침내 벌컥대는 등산
화도 한 장단 한다. 이왕 휴식하려면 타프 치고 이 빗소리를 들으며 탁주 한 잔 마시는 것이
그 아니 흥취가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이 쇄도했으나 갈 길이 멀어 점심 때 그러기로 한다.
길게 오르고 잠깐 내리고 다시 길게 오르기를 반복하며 고도를 저축한다. △1,072.1m봉,
1,121.9m봉, 1,178.8m봉, 1,217.8m봉, 잠시 숨 고른다. 이제는 비가 차갑다. 춥다. 비옷을
입는다. 비옷은 방한용이다. △1,229.7m봉. △1,229.7m봉 삼각점은 ‘봉평 421, 2005 복
구’다. 바짝 피치 올린다. 안개 속 공제선은 자꾸 뒤로 무른다.
Y자 갈림길이다. 왼쪽은 소계방산으로 간다. 그쪽으로 등로가 더 뚜렷하다. 자칫하다가는 계
방산 간다고 소계방산을 가기 쉽겠다. 오른쪽 안부에 내려 점심 먹자하고 줄달음하여 내린
다. 장대비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래도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경쾌하다. 신가이버 님
의 칼국수와 그 뜨듯한 국물, 식후 신마담의 커피가 모두의 한속을 녹인다.
드디어 계방산 품에 든다. 1,372.5m봉과 1,412.2m봉은 오르기 완만하여 수월하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계방산 전 구간을 통틀어서 가장 험난한
구간이 아닐까 싶다. 가파른 진창길이다. 잡목 헤치기도 버거운데 미끄럽기까지 하다. 앞사
람이 미끄러진 자국을 피해 가자해도 새로이 미끄러진다. 미끄러져 엎어지기 몇 번이던가?
앞뒤에서 곡소리 난다. 여러 번 발길질로 한 걸음 오르곤 한다. 불과 수 미터 오르기가 아득
하다. 땀이 다 난다.
계방산 주릉 1,549.9m봉. 쓰러지듯 널브러진다. 이때의 데미지가 뜻밖으로 심했다. 산행계
획을 수정한다. 아까만 해도 당초 계획대로 속사리 신약수교로 내리려고 했으나 이런 길의
내리막 재판일 공산이 크다. 계방산 정상을 오르고(아직 계방산을 가보지 않은 일행이 있다)
주등로인 그 남릉을 내리기로 한다.
7. 뒷골고개에서 뒷골이 땅기게 오른 1,087.4m봉에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8. 등로는 밀림이다
9. 잠시 휴식 중
10. 점심을 마칠 무렵
11. 타프 친 안부 주변
12. 참조팝나무(Spiraea fritschiana), 장미과의 낙엽활엽 관목
1,549.9m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 이르러 계방산이 오대산국립공원에 편입된 줄을 알게 되
었다. 우리가 온 길이 탐방제한구역으로 금줄이 쳐있기에 “얼레, 국립공원 흉내를 내고 있
네.” 했더니,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2011년 1월에 편입되었다. 왼쪽 계곡 길은 청소년 야영
장 쪽으로 간다. 폭우가 내려 계곡 길은 위험하다고 막았다.
요즈음의 날씨가 예전에 꼭 이랬던 적이 있었다. 각사등록(各司謄錄)의 철종(哲宗) 6년(18
55) 6월 17일 충청감영계록(忠淸監營啓錄)이다.
“면천(沔川)ㆍ해미(海美)ㆍ제천(堤川) 등 3읍은 1서(鋤)가 내렸으며, 보령(保寧)은 먼지를
적실만큼 내렸다고 합니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으나 끝내 두루 미치지는 못하였으며, 폭우가 쏟아져 제방이 무너지기
도 했고, 잠간 가랑비가 내렸다가 밭두둑이 곧장 말라버린 곳도 많으며, 또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아 한결같이 비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곳도 10여 읍이나 되어 침수 피해와 가뭄 걱정으
로 읍마다 보고가 각각 다르니, 통합적으로 논하고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비가 내린 양이 적
어 가뭄으로 고민하는 곳이 많습니다.”
계방산 정상. 삼각점은 1등 삼각점이다. 봉평 11, 2013 재설. 비는 멎었다. 사방이 트여 조망
이 좋을 법한데 안개가 자욱하다. 내 그간 계방산에 몇 번 올랐으나 조망을 즐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덕이 부족해서 일 것. 남릉을 내린다. 데크계단 잠깐 내리고 부드러운 오솔길이 이
어진다. 안개 속을 간다. 원근 농담으로 뒤틀린 나무조차 그림이다.
영화 ‘안개 속의 풍경(Topio Stin Omichli, 1988)’을 생각나게 길이다. 그리스 예술영화의 거
장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속 한 대사가 우리가 걷는 이 풍경에 썩 어울린다.
“하지만 우린 행복해요.
우린 계속 가고 있으니까요.”
비가 그쳐서일까? 빗소리가 나지 않으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비에 젖은 후유증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한다. 허벅지 안쪽이 젖은 팬티와 오랫동안 잦은 마찰로 쓸렸다. 맨 살갗이 벗
겨졌으니 걸음걸음 쓰라리다. 상비한 바셀린을 미리 바르는 것을 잊었다. 어기적어기적 걷는
다. 고통의 길이 되고 만다. 소나무 숲길 지나 골 건너 안개에 휩싸인 계방지맥 바라보며 삼
거리 주차장에 다다른다.
14. 계방산 남릉 하산 길
15. 하산 중 바라본 계방지맥
16. 속사리재로 향하는 계방지맥
17. 계방산 남릉 끄트머리의 소나무 숲길
첫댓글 이날 산행 사진은 심마니 팀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