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하나님은 바울 일행을 세밀하게 인도하셨습니다.(행16:11-15)
2024, 8/2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6:11-15절 말씀으로“하나님은 바울 일행을 세밀하게 인도하셨습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일본의 후쿠시마오염수가 방류 된지가 8월 23일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1년 동안 5만 번 이상 방사능 검사를 했는데 단 한번도 기준치를 넘어선 적이 없답니다.
1년 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우리나라가 핵으로 뒤덮일 거라 선동해서 신안의 소금 값을 2-3배로 올려놨고, 수산업자들을 폐업하게 만든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광우병사태 때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다 광우병에 걸려 미친다고 나라를 뒤집어놓았고, 사드를 배치를 할 때도 근처에 가면 전자파에 튀겨죽을 거라고 가발까지 쓰고 춤추며 선동했던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단점은 바로 이런 자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성인 50% 이상이 대졸자인 이 나라 국민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왜 이런 공산주의식 선전선동을 분별하지 못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이런 선전선동을 잘 분별하는 건강한 시민의식과 신앙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11절)
둘째로, 루디아는 주의 일을 하는 성도의 모범입니다.(15절)
셋째로, 우리에게 재충전의 적당한 휴식은 필요합니다.(12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해 가시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11절)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아멘.
사도바울일행이 소아시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여러 노력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아 결국 드로아항구까지 내려왔을 때 밤에 마케도니아사람이 자기에게 건너와서 도와달라는 환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깨닫고 그곳으로 건너갑니다.
11절은 마게도냐로 가는 여정을 말씀하는데, 소아시아에서는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기고 길이 막혀 진행이 어려웠지만 지금 마케도니아 행은 순풍에 돛단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일행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가는 배를 탔는데 당시는 모든 배가 바람을 이용해서 가는 돛단배거나, 노를 저어 이동하는 군사용 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일행은 마케도냐로 갈 때 순전히 바람만을 이용해 가는 돛단배를 탔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때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서는 바람을 잘 만나야하고, 유능한 선장을 만나야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바울일행이 승선한 배는 이 3가지를 다 갖춘 것 같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그들이 마케도냐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의 첫 도시인 빌립보사이에 있는 사모드라게 섬으로 곧장 갔는데, 거기서 물과 식량을 보충한 후 이틀 후에 네압볼리에 도착합니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는 약 25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 거리를 배로 단 이틀 만에 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될 일입니다.
왜냐면 훗날 사도바울이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같은 항로로 드로아에 돌아올 때는 꼬박 닷새가 걸렸기 때문입니다.(행20:6)
여러분!!! 고대의 항해에서 역풍을 만나거나 태풍을 만나면 보통 몇 달씩 항해가 중단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바람이 아예 불지 않아도 항해를 할 수가 없는데, 나중에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혀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어갈 때 지중해에서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15일 동안 바다에서 죽다 살아난 것을 생각해도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마게도냐로 가는 길이 이처럼 순조로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자 즉시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자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우리도 나를 사랑해주고, 무슨 부탁이든, 지시든, 명령이든 믿고 잘 따라주는 사람이 예쁘고 더 잘해주고 챙겨주고 싶은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들을 선하게 인도하시며, 더 좋은 것을 더 풍성하게 챙겨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바울일행이 그토록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길이 막혔던 것을 생각해보십시오.(6-7절)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길이 막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마게도냐의 길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순풍에 돛을 달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형통의 길을 열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볼 때 그의 삶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울왕을 피해 도망갈 때 놉 땅에서 배가고파 율법을 어기고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음으로 그 결과 놉 땅의 제사장 85명과 남녀노소 젖먹이까지 짐승들까지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참사의 원인제공자가 되었습니다.(삼상22:18-19) 그리고 이방인과 교류를 금지한 말씀을 어기고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또한 왕이 되어서는 밧세바와 간음도 모자라 그 남편 우리아까지 죽이고 맙니다.
그랬음에도 그는 죽을 때까지 왕위를 지켰고, 하나님께‘내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 이란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사울 왕과는 달리 하나님말씀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끝까지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신29:9절에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을 불순종하면 어찌될까요? 참으로 인생 어렵게 꼬일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주변의 이방족속들을 쫓아낼 것을 명령합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또 힘이 있으면 그들을 종으로 삼아 경제적 유익을 얻을 목적으로 말씀에 불순종하며 쫓아내질 않습니다. 그 결과 결국 그들이 자기들의 올무가 되어 내내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던 사울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왕위를 잃고 전쟁에서 그의 아들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고, 또 내가 하는 일이 순조롭게 잘 되기를 원하지만 원한다고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되는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그게 바로 바울처럼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즉각적인 순종을 통해서 형통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바로 순종하여 형통의 복을 받으셔야합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루디아는 주의 일을 하는 성도의 모범입니다.(15절)
본문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아멘.
바울일행이 도착한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갔는데 그곳에서 정말 귀한 동역자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 또한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왔다가 바울일행을 만났는데, 그녀는 많은 기독인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준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루디아가 바울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그녀와 집식구들이 전부 세례를 받았고, 바울일행에게 자기 집에 들어와서 기거하라며 간절히 요청했는데, 본문에서는 이를 강권했다고 표현합니다.
강권의 원어적의미가‘강요하다, 재촉하다’는 뜻으로 이걸 볼 때 루디아가 매우 적극적으로 바울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도록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디아가 어떻게 바울을 알아봤는지는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말씀해서 알겠지만, 그녀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신앙은 너무도 신실했고, 그래서 안식일에 기도하러 강으로 나왔는데, 그만큼 그녀는 예배와 기도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루디아는 자기는 물론 집식구들까지 모두 세례를 받게 했는데,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증표입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가족 모두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만큼 신앙의 확신이 있었고, 비록 여자지만 결단력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 세례 받게 하는 것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해 세례 받게 한다면 정말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디아는 바울일행에게 정말 겸손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이렇게 말했는데, 이 말 속에는 자기를 성도로 인정해달라는 부탁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루디아의 이런 겸손한 자세와 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이제 막 빌립보에 도착해서 연고가 없던 바울일행의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빌립보에 복음이 전파되는 복음의 전진기지로 자기 집을 기꺼이 내주었다는 점에서 루디아는 정말 위대한 일을 감당한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그 일을 위해 힘쓰고 애써야할 것입니다. 물론 내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정상 그게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을 보낼 수도 있고, 전도자를 위해 오늘 루디아처럼 물심양면으로, 기도로 도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루디아는 정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바울일행이 유럽에서 복음을 순조롭게 전할 수 있도록 겸손함과 열정과 재력을 가진 루디아를 만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그녀의 마음 문을 열어 목회자로 섬길 수 있도록 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녀의 노력과 헌신으로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유럽이 복음화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루디아를 본받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재충전의 적당한 휴식은 필요합니다.(12절)
본문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아멘.
바울일행이 이틀 만에 드디어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바울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해 바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곳에서 수일을 머물렀는데, 이는 빌립보에 도착해 바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휴식부터 취했다는 뜻입니다. 빨리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해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일이 급해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주의 일이든, 일상의 일이든 일꾼에게 적당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도 가끔 휴식도 없이 일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지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능률도 안 오르고, 사고의 위험도 훨씬 높아지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잖습니까? 그래서 휴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잠시 쉬는 것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마지막 날을 쉬셨고, 우리에게도 7일 째 되는 날을 안식일을 정하여 쉬도록 하셨는데, 이는 우리 몸이 흙으로 만들어진 약한 존재임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 쉬어도 리듬이 깨져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데, 쉬는 것이 몸에 익어 일을 안 하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라는 창조질서를 어기게 됩니다. 살후3: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참고해야합니다.
어쨌든 여러분!!! 바울일행이 복음전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했지만 그럼에도 휴식부터 먼저 취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만약 그들이 빌립보에 도착해 바로 복음을 전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저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심한 배 멀미와 여행의 여독으로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마게도냐는 아시아와 달리 문화도 관습도 아시아와는 다른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는 것은 이곳이 이방종교에 상당히 배타적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인데, 그럼에도 복음을 전했다면 또 다른 문제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일행은 빌립보에 도착해 며칠을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선교전략도 짰을 겁니다. 이렇게 일이 아무리 급해도 적당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더 큰 성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헨리포드’가‘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말을 했답니다.
우리 주님도 제자들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그들에게 잠깐 쉬도록 하셨습니다.(막6:31) 또한 예수님도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 요단강으로 가서 은신하여 휴식을 취하셨는데,(요10:39-40) 이는 마지막 더 큰일을 하기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눅21:37절에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합니다.‘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휴식도 취하시고, 반대로 너무 쉰 사람은 이제 또 열심히 일하셔야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 행복한 삶이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