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0장 24-33절 주신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길을 가게 되는 가를 설명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승리를 갖게 되는 이유가 성령의 임재와 증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권능을 받고 지혜를 받으며, 순결을 지킨다 할 지라도 예수님을 능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박해할 것입니다. 그것을 24-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이 부분은 조금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앞 뒤의 문맥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써 일을 할 때 박해를 받게 될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시다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해석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선 24-25절을 현대어 성경 번역을 참고로 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위대할 수 없으며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큼 되고 종이 주인만큼 된다면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 집주인인 나를 바알세불이라고 하였으니, 너희에게는 얼마나 더 심한 말을 하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박해를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박해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쉽게 해석한다면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지않느냐? 그런데 스승도 바알세불로 몰아가면서 박해를 한다면 나만 못한 너희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심한 박해를 하겠느냐?”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스승도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그 제자들은 얼마나 더 만만하게 보며 업신여기겠느냐는 말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가서 전도할 대상들을 사랑하며, 또 긍휼히 여기면서 전도를 할지라도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많은 권능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고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일할 때는 얼마나 더 많은 말들을 만들어대며 모함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말한 바알세불은 귀신들의 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귀신들의 왕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하여는 얼마나 막말을 하며, 또 갖은 되지도 않은 말들을 만들어 내면서 공격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너희는 그런 박해를 각오하고 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지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때가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진실이 드러내실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실입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실입니다. 26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진실이 드러날 때 거짓을 말하던 사람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6-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보라고 이름하는 도시에 도착을 합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총독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총독 옆에는 거짓선지자요 마술을 하는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을 만납니다.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엘루마로 총독 옆에서 여러 가지 거짓으로 속이면서 거짓 것을 믿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예수가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방해합니다. 바울이 총독인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총독은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입지에 위협을 느낀 거짓선지자요 마술을 하는 바예수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방해를 놓습니다. 이로인하여 복음을 전하면 훼방을 놓고, 또 가서 복음을 전하면 훼방을 놓고 하면서 총독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총독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다가 의심하고, 또 믿으려다가 의심하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사도 바울이 총독 앞에있는 바예수에게 말합니다. 9-11절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자 엘루마는 순식간에 시각장애자가 되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인도할 사람을 여기저기 이야기해서 구하는 것을 보고 총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이 복음을 전할 때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이런 방식은 엘리야선지자에게도 있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엘리야 선지자 자신과의 공식적인 대결을 벌였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참 신인가를 가려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로인해 엘리야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이 드러났고 바알과 아세라는 인간이 만든 거짓신이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하나님이 누가 진리를 전하고 있는지 그 진실을 드러내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거짓으로 말을 지어내며 박해 하던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옳다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람이 친구에게 말하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에서 말입니다. 기도의 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방에서 조용히 주님의 말씀을 구하면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는 지를 주님은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말씀을 공개적인 장소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사명을 주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들은 것처럼 전하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게 될 제지들과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진정 두려워할 자는 몸만 죽이지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만 큰 힘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멸하실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참새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29절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모든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의 생명의 주권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며 여러분들을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결코 여러분 한 사람과 바꾸지 않으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감취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협박하고 갖은 고문을 다하며 채찍질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심지어 죽이기도 하는 그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생명과 영생을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 손에 있는 여러분의 생명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여러분들이 생명의 가치를 참새에게 비교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30-31절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지극히 세세한 것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시며 지켜주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 박해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제자와 그렇지 못하고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이 드러나고 영적으로 갈라집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32-33절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들을 시인하시고 부인하시는 일이 바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심지어 박해를 받다가 죽는 그 순간에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느냐 부인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신앙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신앙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승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임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명자들은 박해자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왕들 앞에 끌려가서도 위축되지 않고, 또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에게 일어날 일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에 사로잡힌 여러분들에게 이 놀라운 축복과 믿음이 주어져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보면 사명에 사로잡힌 사도 바울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자기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훨씬 더 귀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우게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들 가운데 그 믿음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면 꾸짖지 않고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과 믿음을 한량없이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바로 여러분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