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루증 여인의 믿음과 간절함
막5:34“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젊은 청년시절 저의 꿈은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학교 교정에서 만난 사환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오직 하나님께서 생명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며 살아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열등의식과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4-50여년이 지난 지금 70대 중반에 다가가면서 남은 한가지 일은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믿는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인지 밝히는 일입니다.
마17:20“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로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치유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12여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많은 의원을 찾아갔으나 병은 고치지 못하고 더 심해지기만했습니다. 마침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여인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무리 가운데 끼어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도 혈루증 여인처럼 동일한 은혜를 받으려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는 믿음과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내면에 내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경에서 읽고 들어서 지식적으로는 알기는 쉽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믿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지식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지만 믿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16: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지나간 열두 해 동안 많은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녀에게 재물도 사회적 지위도 아름다움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혈루증으로 인해 더욱 더 약해진 몸뚱아리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바로 이러한 절박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정한 병을 밝힐수 없었던 그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진정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이생의 자랑이나 즐거움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이 절박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념뿐입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내어 버립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두 해 동안 여인에게 괴로움을 안겨준 혈루증은 자신의 가문과 외모와 학식과 재산과 종교적 열심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녀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게 했고 가장 낮고 낮은 겸손한 자리,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자랑할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가 바로 이같이 겸손한 자리입니다.
참된 자아를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거짓 자아 때문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습니다. 거짓 자아를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참된 자아를 주님 앞에 세울 때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강물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귀한 목숨을 속량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은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매 순간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의 옷자락과 접촉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24. 7. 13 장기옥 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