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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1) 성사(聖事)란 무엇인가요?
하느님 은총 받는 구원의 표지, 성사
예수님 탄생을 맞아 하느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며 교회 안에서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마련하신 성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성사(聖事) :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고 거룩하게 하신 성사를 통해 하느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집니다. 성사는 예식 가운데 표현되는 말과 여러 표징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교회는 성사를 ‘구원의 표징’ ‘구원의 도구’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교회 안에 일곱 가지 성사, 즉 세례·견진·성체·고해·병자·성품·혼인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성사를 통해 새롭게 변화된 삶, 하느님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일곱 성사를 세우셨을까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은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고 견진성사로 우리 영혼은 성장하고 견고해집니다. 성체성사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더욱 성장합니다. 예수님은 또 고해성사로 영혼의 상처를 치료받고, 병자성사로 영혼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구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성품성사를 만드셨습니다. 혼인성사로 자식을 낳아 키움으로써 은혜로움이 풍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성사가 성립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
성사의 설정자는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어떤 내용으로든지 감각적인 형식이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 속에 내려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예를 들어, 물로 씻는 세례성사로 눈에 보이지 않게 모든 죄가 씻어지고 생명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사를 받으면 똑같은 은총을 받게 되나요?
성사의 사효성 : 성사가 성립되기 위해선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교회가 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이를 성사의 사효성이라 합니다. 성사에 참여하는 사제와 신자들의 마음이 미흡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이기에 성사 그 자체로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성사의 인효성 : 성사가 교회의 의향에 따라 거행되면, 집전자의 개인적 성덕과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성사 안에 넣어주신 은혜와 더불어 자신의 노력과 마음가짐에 따른 은혜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노력에 따라 은혜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성사들은 언제나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16항 참조)
성사는 가톨릭교회에서만 인정하나요?
성사는 신앙을 전제로 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가집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진 형제 중 동방 정교회는 일곱 성사를 모두 받아들여 세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개신교 중에서 성공회 세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개신교 교파에서 받은 세례는 사이비가 아니면 인정하나 보례를 해야 합니다.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이라는 성사적 표징을 사용하여 행하면, 신자 아닌 사람의 행위조차 유효합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55조, 제59조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38) 교회의 상징과 신비 ② 하느님의 백성, 성령의 성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당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방송 미사를 ‘보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편함을 추구하는 신앙의 행태일 수도 있지만 본당 공동체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을 피해 나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백성을 이루어 당신을 알고 당신을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81항).
지난 2주간에 걸친 교회에 대한 교리를 말씀드리며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뽑으셨고 우리는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곧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세례로 우리는 하느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분명한 목적 아래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그 법으로 지니고 이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82항).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성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셨던 모든 사명에 함께 하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사제이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이며, 모든 이의 종이 되시어 섬김으로써 오히려 왕이 되신 예수님의 직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과 더불어 중요한 교회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령의 성전(하느님의 집)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끈으로 세 위격이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모든 지체가, 곧 하느님 백성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가 되도록 일치시키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계시며, 성령께서는 교회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으로 만드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97항). 교회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며,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교회의 지체들을 완전한 사람으로 키우시며 교회가 신비로운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활동에는 하느님의 말씀, 세례를 비롯한 성사들, 선을 행하게 하는 덕행, 그리고 여러 가지 특별한 은사들이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98항).
치유의 은사,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 등 성경은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은사는 특별한 것이든 혹은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든 교회의 건설과 인류의 선익과 세상의 필요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은사가 사랑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00항). 다시 말해 은사가 참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분명히 확인하고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도록 식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은사를 받은 이들은 교회 목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불순종해서는 안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01항).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 분명하게 일치하여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은사이기에 참으로 성령께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은사를 받은 이라면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갈 책임을 부여받은 목자들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지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신비로운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그 생명의 원리로 활동하시며 각 지체들의 다양성 안에서 이루는 일치의 근원, 교회 안에 존재하는 풍요로운 선물과 은사들의 근원이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09항).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주님 성탄 대축일
이번 주 수요일, 12월 25일은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자주 듣는 영어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the mass of Christ)라는 의미입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교에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만을 기념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주님의 성탄을 경축하게 된 건 300년대 이후입니다. 그런데 동방 교회(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등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지역의 교회)에서는 200년대에 이미 ‘주님 공현’을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1월 6일에 지내던 공현 축일은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도 전파되었습니다.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성탄 축일로 지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에 쓰인 「로마 주교와 순교자들의 사망 일지」 (Depositio episcoporum, Depositio martyrum)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로마에서는 336년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탄 축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해 그날부터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에 앞서 이미 이 축일이 있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12월 25일에 주님 성탄 대축일을 지내게 된 데는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교인들이 지내던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대응책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270-275 재위)는 274년 시리아의 태양신 공경을 받아들여 12월 25일에 이 축제를 지내게 했습니다.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퇴폐적 태양신 숭배 축제에 빠져드는 걸 우려해 같은 날 주님 성탄 대축일을 지내도록 정했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엔 “승리의 태양”(말라 3,20)이며 “세상의 빛”(요한 8,12)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설은 달력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면서 하지와 동지의 시점을 계산해 정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지에 태어났기에, 루카 1,26에 따라 예수님은 그보다 6개월 뒤 동지에 태어났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했던 세례자 요한의 증언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부터는 매일 해가 점점 짧아지는 데 반해, 동지부터는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밤, 새벽, 낮 모두 세 차례의 미사가 봉헌됩니다. 밤 미사는 ‘첫 미사’ 또는 ‘천사 미사’, 새벽 미사는 ‘둘째 미사’ 또는 ‘목자 미사’, 낮 미사는 ‘셋째 미사’ 또는 ‘말씀 미사’라고 합니다. 순서에 따른 명칭 외의 다른 이름은 그 미사 때 봉독되는 복음의 내용에 따라 붙여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게 하려고(Deificatio)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Incarnatio)’. 이는 말씀이신 성자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이유를 단명하게 설명해 주는 오랜 신학 명제입니다. 이제 우리 구원을 위해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겸손하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합시다.
[일상 안에서의 교회문화] 오르간
페달을 밟아 바람을 불어 넣어 울리던 건반악기. 학교 교실에서나 만나던 풍금은 전자 키보드로 대체되어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오르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원래 서양 악기인 오르간을 한자식으로 번역해서 풍금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풍금은 오르간 중에서도 리드 오르간(reed organ)을 말합니다. 이처럼 친숙한 악기인 오르간은 가톨릭 교회와 밀접한 관계 안에 있습니다.
교회가 사용하는 오르간은 파이프 오르간을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포한 전례 헌장 제120조는 “라틴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서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음향은 교회 의식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정신을 하느님 및 천상에로 힘차게 들어 올릴 수 있다.”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는 파이프 오르간을 교회 음악의 한 분야로서 모든 악기에 우선하여 공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르간이 처음부터 교회의 전례 악기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교회에서는 오르간을 포함한 모든 악기를 전례에 들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악마의 소리 악기로까지 여겨져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중세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파되던 오르간은 14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회의 거룩한 악기로 자리잡게 되었고 트리엔트공의회에서 오르간을 교회의 전통악기로 지정하면서 공식적인 교회의 전례 악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에는 실학자들의 저서에서 나타납니다. 홍대용(洪大容)은 『담헌집(1762)』에서 북경의 성당에 설치된 오르간을 본 소감을 기술하고 있으며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1778)』에서도 그 기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파이프 오르간이 처음 설치된 곳은 개신교의 정동 교회(1918년)이고 명동대성당(1924년)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2017년 11월 17일에 축복식을 가진 범어대성당의 오르간은 6천여 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초대형 오르간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오르간에 이어 국내에선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르간이 가톨릭 교회에서 중요시되고 장려되는 이유는 오르간의 소리가 어느 악기보다 인성과 잘 융합되며, 음색이 무궁무진하고 음역이 넓어서 음악의 효과를 잘 낼 수 있고 고요함과 위엄을 모두 갖추어 악기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악기라 해도 전례 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르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믿나이다] (6)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은 의로움
주님이 주신 의로움으로 ‘거짓’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처럼 사도들이 이끌던 초대 교회 때부터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차 깊어 갔습니다. 특히 거짓 설교자들과 교리교사들, 영지주의자들, 지나친 금욕주의자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완전히 갈라 세우듯 자기주장만 해댔습니다.
만일 인간 예수가 복음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그분, 사도들과 교회가 복음서에 기반을 두고 선포하는 그 예수와 다르다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 곧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믿음은 바로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성경적 믿음을 위해 다른 것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징적 암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근거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실제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1」 13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 후 부활하신 역사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20여 년 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놀라운 그리스도 찬가를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그리스도교 탄생 이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런 그리스도론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느님의 신비’에서만, 곧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이해 가능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교 믿음은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공적 계시는 ‘성경’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성경 특히 신약 성경을 읽어나가면 그 안의 모든 말씀과 글에서 주님의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려는 자들과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려 분열시키려 한 자들에 대해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0-12)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세상의 유일한 참된 주님이신 분과 일치와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무기’를 선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무장을 갖추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모든 지체와 함께 일치와 친교를 나누면서 악의 권세들에 대항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의 권세를 물리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 열두 제자들에게 악마를 추방하라는 임무와 치유의 사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태 10,1 참조) 이는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악마를 몰아내고 인간을 치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가르침에 대항해 ‘의롭게’ 살았습니다. 이 의로움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생겨납니다. 의로움은 구원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4-26)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율법의 유다인보다 복음의 그리스도인으로 더 의롭게 됐고, 철학의 그리스인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됐음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은총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저주신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은총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애와 공정, 의로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의로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화의 길로 나아갑니다.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지금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토마스 할리크, 「그리스도교의 오후」 196쪽)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0) 죄(罪)란 무엇인가요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이 죄
첫영성체 교리 중 ‘고해성사’에 대해 알려주니 한 학생이 묻습니다. “선생님,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죄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교에서 죄는 ‘하느님께서 만든 질서를 깨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죄는 하느님 그리고 이웃들과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선(善)과 사랑에 머물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죄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도 나빠집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야고 1,15)는 말씀처럼 죄인의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죄는 행동으로 드러날 때 죄질의 고유한 특성을 보입니다. 이 때문에 죄의 유형은 죄가 어떤 행동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죄의 다양성은 그 행위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입니다.
죄는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원죄 - 인간이 처음 범한 죄를 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입니다. 인류 대표가 죄를 지었으니 그 후손인 우리도 모두 그 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의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 본죄 - 죄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자유의지로 지은 죄를 본죄라고 합니다.
본죄는 다시 대죄와 소죄로 구분합니다.
1. 대죄 -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하느님을 배반하고 떠남으로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죄(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죄 :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등 이런 것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갈라 5,20-21)
- 교회에서 대죄로 규정한 죄 : 초대 교회 때부터 살인·간음·배교·우상 숭배는 4대 대죄로 다스려 왔습니다.
-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정하는 극악한 죄 : 살인, 강간 등입니다.
→ 반드시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2. 소죄 - 하느님과의 우정에 장애를 주거나 교란을 시키지만, 그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소죄는 진정한 참회와 선행을 통해 사해질 수 있으며 고해성사에 임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를 죄로 이끄는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칠죄종(七罪宗) : 다른 죄의 근원이 되는 7가지
① 교만 : 명예·우월 등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으로 겸손의 덕에 반대됩니다.
② 인색 :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 정의에 반대됩니다.
③ 음욕 : 육체적인 쾌락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 대부분 합법적인 혼인 이외의 성적인 쾌락이기 때문에 대죄가 됩니다.
④ 탐욕(탐식) : 음식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 절제의 덕에 반대됩니다.
⑤ 시기(질투) : 다른 사람의 선에 대한 비난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사람의 선을 마치 자기의 악처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선이 자기 품위를 격하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기는 원칙적으로 대죄에 해당합니다.
⑥ 분노 : 보복하고자 하는 무질서한 욕망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기에게 반대하는 것을 없애버리려는 그릇된 욕망입니다.
⑦ 나태 : 어려운 일을 싫어하고 피하며, 본분상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은 게으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소죄에 해당합니다.
→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유혹입니다. 유혹을 견뎌내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