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선 목사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어느 때는 아무런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이 그냥 지나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같은 말씀이 마치 청천벽력처럼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영혼을 사로잡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늘 익숙하게 읽었던 말씀이고, 농경사회였던 이스라엘 사회의 배경을 담은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해야 했던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이 없어도 우물을 팔 수가 없었고,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양식이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들의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지어 처음으로 곡식을 수확했을 때, 그 감동과 감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 배경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께 드렸던 감사의 제사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께 드린다는 것은 참 멋진 일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저는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어서 그럴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말씀을 읽는데 마치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영어로 이 구절을 읽었습니다. NIV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Honour the Lord with your wealth.' honour라는 단어의 뜻은 ‘존경하다,’ ‘명예를 주다’입니다.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면 ‘네가 가진 재물로 여호와께 명예를 드리라’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명예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마땅히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능력과 권세가 무한하신 높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유 위에 비길 자 없이 홀로 뛰어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로부터 경배와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어요. 그분은 우리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께 명예를 드리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존중과 감사를 끊임없이 드려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원이 되시며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범죄하여 영원한 심판과 형벌에 처하게 된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몸이 백 개가 있다면 그 백 개의 몸을 다 바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내용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모든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명예를 드리려고 애쓰며 삽니다. 그런데 돈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 마음이 움츠려집니다. 다른 것으로, 즉 몸으로 봉사한다거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하겠는데, 돈이 관련되면 자꾸 핑계거리를 찾게 되고 주저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 우리 자신의 모습에 'Honour the Lord with your wealth.'라는 말씀이 다가오니까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내가 내 재물로 하나님을 honour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내 재물로 하나님을 dishonour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오는 제물이 역겹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이 역겹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그들의 재물로 하나님을 dishonour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1장 7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계속해서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조금만 양해해 주시면 될 일 같습니다. 짐승이 다리가 부러지거나 병에 걸리면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 드릴 거면 다리가 부러졌거나 병에 걸렸어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어차피 하나님이 잡수실 것도 아닌데, 불에 태울 거라면 좋은 거나 좋지 않은 거나 별 상관이 없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로 드릴 소나 양은 흠이 없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소떼나 양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제물로 골라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명예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으셔야 마땅한 분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물에 관심이 있으신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장 명예롭게 해 드릴 수 있겠지요. 성경에서 재물로 하나님께 명예를 드린 사람들 중 하나는 엽전 두 개를 드린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게 자기 쓸 돈 전부였습니다. 그것밖에 없었어요. 사실은 드리는 것이 부끄러운 적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신 주님은 그 과부가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누구보다 더 하나님께 명예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일 년 된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한 마리를 또 잡아서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올라가서 비둘기 두 마리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드릴 만큼 살림살이가 되지 않으면 양 대신 비둘기로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양 한 마리를 드리는 것과 비둘기 한 마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똑같은 명예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돈 많은 사람이, ‘아하 굳이 양을 잡을 필요가 없구나. 비둘기로 하자.’ 했다면 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dishonour한 것이 되는 것이지요.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명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가장 귀한 것, 의미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 왕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다가 무심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마시던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누가 나에게 마시게 해 줄까?” 그랬더니 장수 세 사람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그 우물물을 길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다윗 왕이 기가 막혔습니다. 왕의 말 한 마디에 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말합니다.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이 물을 너희들의 목숨값이구나. 내가 어떻게 감히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그 물을 여호와 앞에 부어드렸습니다(대상 11:17-19). 이게 바로 여호와께 명예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10절 보세요.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 합당한 명예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지, 이것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하,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는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dishonour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동기는 무엇을 더 얻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시고 보호자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명예를 드려야 할 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속셈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는지 안하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타락하고 믿음이 없는 세대를 깨우치기 위해서 한 말이지,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의 스탠다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얼마나 드리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둘기 한 마리로 양으로 드리는 제사만큼 하나님께 명예를 드릴 수도 있고,, 엽전 두 개를 드려서 가장 큰 명예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큰 재산을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dishonour하고 분노하시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재물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honour하는 것인지 dishonour하는 것인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으셔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인색함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dishonour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재물로 하나님께 명예를 드리는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