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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에서 겪은 일
김 선 구
강원도 주문진은 동해안에서도 유명한 항구마을이다. 일찍부터 부산항과 원산항 중간에 위치
하였으므로 이곳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중간기항지로 알려졌다. 해안선이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배가 드나들기에 좋도록 천혜적인 양항(良港)의 조건을 구비 하였다.
백두대간을 이루며 뻗어 내린 고산준령에서 맑은 시냇물이 신리천과 연곡천을 따라 동해로
흘려들어가서 차가운 바닷물과 섞이어 풍부한 어족자원을 형성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주문진
항은 일찍부터 속초항과 함께 동해 북부지역의 어업 중심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곳에 어선의 수가 다른 곳에 비하여 훨씬 많았다. 출어(出漁)시기가 되면
수십 척의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시에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가 하면 이른 아침
고기를 실은 어선들이 항구로 들어오면 주문진항은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아침마다 팔딱거리
는 생선들과 고기를 다듬는 아낙네들의 바쁜 손길 속에 하루가 시작되었다. 항구주변 수산시장
에는 신선하고 힘이 넘치는 생선들로 시장판이 펼쳐졌다. 손님을 불러 세우는 난전상인들과
좌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한데 어울려 시장판이 법석을 덜었다.
내가 강원도 대관령에 살던 시절에는 명태를 사러 가끔 주문진에 갔었다. 생선을 덤으로 얹혀
주는 시골인심에 푸근한 인정을 느꼈었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어져 주문진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어 사시사철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에 주문진 항은 명태 잡이가 유명하였다.
주문진에서 잡은 명태는 대관령으로 옮겨와서 황태덕장에 펼쳐 널려져 겨울 한철을 지냈다.
밤의 냉한 공기와 낮의 태양열로 얼렸다가 풀렸다 반복 하다보면 이듬해 봄이 되면 명태가 황태로
변하였다. 이처럼 명태의 고향 주문진과 황태의 고향 대관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래서 대관령을 떠난 후에도 명태나 황태를 보면 주문진을 떠올리게 하였다. 관광차 동해안을
지나다가 주문진에 들려 해안가 수산시장을 거닐며 옛 정취를 느껴보고 생선과 건어물도 사곤
하였다. 주문진 수산시장은 볼거리나 먹거리가 풍부하고 해산물들이 저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
었다.
얼마 전 고향 제주의 한 문인단체에서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만해마을에서 행해지는 제19회 만해
축제에 참석차 사찰문학기행을 계획하여 올라왔다. 나도 여기에 일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오던
날은 인제의 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행해진 만해대상 시상식을 참관하고, 백담사를 탐방한 후
양양의 낙산사 주변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여장을 풀었었다. 이제 설악산 신흥사와 오대산 월정
사를 차례로 방문하도록 계획되었다. 지난 밤 잠자리가 편치 못했다하여 다음날은 주문진에서 하룻
밤을 유숙해 보도록 권유하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낙산사 홍련암에서 동해일출을 보고난 후 의상대에 올라서 동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였다. 이어서 설악산 권금성(權金城)에 올라 자연이 내려준 산의 오묘한 형상들을 감상하였고,
조계종 제3교구인 신흥사에 들려 통일대불을 둘러보고 저녁에 주문진에 도착하였다.
주문진 항이 있는 해안가 거리를 걸어보니 길 양편으로 건어물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점포마다 각종 건어물을 진열하여 손님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환한 전등불로 온 거리가 불야성을
이루었다.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친 터여서 모두가 기분이 홀가분하였다. 주문진에서 풍성한 해산물
로 저녁식사도 즐기고 노래방에 가서 회포도 풀리라하고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미리 안내받은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해변 항구와
수산시장을 지나 한참 걸어서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라는 간판이 우리를 반겼다.
주인은 제주 출신의 여인으로 일찍이 이곳에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동향인이라는
연대감에 반가움이 앞섰다. 객지에서 정착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여겨졌지만 생활력이
강한 제주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식당이라 했지만 우리 일행이 간신히 앉을 정도로 공간이 협소 하였다. 식탁 위에는 이미
홍게가 수북하게 차려져 있었다. 주문도 하지 안했는데 동해바다의 특산물이라고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아 주인이 알아서 잘 대접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홍게를 처음 대하고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주인이 가르쳐준 데로 가위로 다리 마디를 자르고 다리 살을 추려내어 먹었다.
맛은 별로였고 한 마리를 다 먹어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게의 몸체는 살도 없을뿐더러 짜서
먹기가 거북하였다. 일행 중에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좋겠다고 밥을 주문하니 다른 음식을 더 주문
해야 제공할 수 있다했다. 의논 끝에 생선찌개를 시켜서 간신히 밥 한 그릇 비우고 식당을 나섰다.
뭔가 개운치 않은 저녁식사로 기분이 별로 흡족치 못한 것 같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여 회장
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객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것만도 반가운 일이니 저녁식사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상부상조한 것으로 치자’고 위무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호텔 주변에 비치된 벤치에 앉아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L사무국장이 도착
하였다. 매우 기분이 흡족한 표정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식당주인이 배려로 식비를 싸게 지불
했단다. 홍개 한 마리당 2만원까지 하는데 대폭 할인을 해서 일만 오천 원 씩 계산 했다고 했다.
나는 기분이 좀 언짢았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수산시장에서 보았던 홍게 가격이 떠올랐다.
다섯 마리에 일만 원이었으니 한 마리당 2천원 꼴이었다. 게를 쪄내는 수고와 식당의 이득을
포함시켰다 해도 2천 원짜리를 일만 오천 원이나 받았으니 폭리가 지나치다고 생각되었다.
이곳 사정에 어두운 고향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동해안은 게들의 산지이다. 대게, 홍게, 털게, 꽃게 등 다양한 종류의 게들이 잘 잡힌다. 그 중에서도
대게의 인기가 으뜸이다. 맛이 좋고 살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먹어본 대게는 1월에서 3월 사이가
제철이다. 이때에 동해안이 대게가 성시를 이룬다. 다리 살과 몸체 살을 다 먹고 나서 게 껍질에다
밥을 비벼먹으면 한 끼 식사로 흡족하였다. 한 마리에 2만원 이면 대게 중에도 최상품에 속하는
값이었다. 반면 홍게는 맛이 대게만 당치 못하다하였다. 년 중 어획할 수 있으나 제철은 1월에서 6월
사이라 한다. 지금은 한 여름철이라 살이 차지 않고 맛도 덜한 시기이다. 그러고 보니 철이 지나 보잘
것 없는 홍게를 먹고 대게 값을 치른 셈이었다. 그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L사무국장은 감사한
마음으로 밝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오랜만에 고향사람들과 주문진
에서 정취를 함께하고 추억을 만들어보려던 나의 바램은 허사가 되었다. 고향의 여인을 만난 때문에...
(2015. 08. 20)
첫댓글 주문진의 아름다운 항구를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때로는 낮선 지역으로 다니다보면 그렇게 바가지를 쓰는 수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바가지를 써도 좀 심하게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철에 먹는 게도 아닌데다 요금까지 엄청 많이 지불하셨으니 마음이 불편하셨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손님을 자주 골탕 먹인다면 그 식당의 영업은 오래 가지를 못하겠지요.
오랜만에 방문하니 반가운 글을 볼수있네요 고향분들과 동해안 여행 잘 읽었습니다.대게철이 지나서 홍게도 좀 고가군요 홍련암에서 좋은기를 받아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덕장과 명태에 대한 글을 읽으니 지난해 겨울, 동해시 논골담길 건너편 명태덕장 사장님에게 “얼바람태”(동해의 해풍에 말린 명태, 찜집에서 주로 사용)를 얻어 와서 맛있게 먹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얼바람태는 경남 마산 찜집에서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대게와 홍게를 즐겨 먹곤 하는데 식당의 홍게값이 좀 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주문진 사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