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얘기도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 저는 여전히 망설였습니다.
지금 그냥 뛰어넘어가면, 다른 얘기에 밀려 영영 못할 게 빤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니, 하는 수 없었습니다.
짧게나마 하고 넘어가기로 했던 거지요.
오늘은, '통리 5일장'에 대한 얘깁니다.
한 1주일도 넘은 얘깁니다.
우리가 어딘가 낯선 지역에 가서 (일정기간)살게 되면,
오며가며(거리에서)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그러면서도 통반장 다 하는, 그리고 인간성이 나쁠 수 없는 오지랖(?)이 있습니다.
(그건, 한국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 경험으로는 외국에도 그런 사람이 꼭 있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여기 '분천리'에 와서 살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50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분천역'이 있는 '산타마을'에 사는데, 거기서 '낙동강'도 건너고 그 뒤로 36번 국도를 넘어가는 '분천 4리'에도 자주 나타나는......
그 누구하고도 말을 잘 걸고,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기라도 하면 도와주고, 그러면서도 훌쩍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그런데 어느 날 밤 제 손님이 와서, '산타 마을'에 야경을 보러 갔는데,
불쑥 나타났던 그,
처음 보는 사람이었을 제 손님과도 어느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여기는 장보러 가기가 힘들겠어. 더구나 나는 차가 없어서, 큰 마트와 5일장이 있는 '춘양'(억지 춘양장)까지 가야 하는데......" 하고 제가 제 친구에게 얘길 하는데,
"'춘양장'보다 '통리 5일장'이 더 크거든요?" 하고 그가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장이 있나요?" 하고 내가 묻자,
"거기는 강원도 '태백'인데, 여기서는 기차로 가면... 아침에 가서 장을 보고, 오후에 돌아올 수 있지요."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장이 훨씬 더 큰데다... 어물장이 풍성하다고도 하드라구요.
동해안에서 잡아온 생선들을 다루는......
그래서 잔뜩 흥미를 느꼈던 제가 딱 달라붙어, 그 사람에게 '통리 5일장'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는데요,
들을수록,
재미있을 것 같드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이 늘 자유로운 것 같아서)
"그럼, 언제... 나랑 그 장에 함께 가주지 않겠소?(나보다 훨씬 젊기 때문에) 내가 그 장을 모르기도 하고, 여기서 기차 타는 것도 아직 해보지 않은 초행길이니, 일단 나하고 그 장에 가 주면... 내가 왕복 차비와, 장에 가서 최소한 점심(예를 들어, 장마다 있는 '국수' 같은)을 살 테니까." 하고 제안을 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그 사람이 늘 시간이 많은 것 같아서 했던 소리였고, 이 시골 마을에서의 일상이 지루한 것 같아서도, 제가 제안을 했던 건데요,
일단,"그러지요." 하는 긍정적인 답을 듣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제 일상도 바쁘기만 해서, 그리고 그 약속이란 것도 확실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도 그와 마주치면,
"언제라도 00씨 시간이 될 때, 나에게 말해 주면... 내가 시간을 맞춰 보겠소." 하곤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공동체의 제 바로 옆집(106동)에 입주한 여인이(이미 까페에 언급된, 이 마을에 귀촌하기 위해 합류한), 00씨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면서,
00씨가 이 곳에 더욱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는데,
제가 여기 온지 이제 보름이 넘어가다 보니,
처음 제 집을 실어왔던 조카 부부와 함께 장을 봐왔던 식료품들이 하나 둘 떨어져가고 있기도 해서(특히, 우유, 당근, 달걀... 그리고 제 자전거의 자물쇠도 필요해서),
제가 장을 보러 나가야만 할 시점인데,
마침 00씨 말이, 그저껜가(13일),
"내일이 '춘양장'인데요." 하기에,
'나도 장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제(14) 새벽에 꽃밭을 만든답시고 풀을 뽑고 돌을 정리하는 등 힘을 쏟았더니 지쳐서,
아침에 이 마을에서 출발한다는 '농촌버스'(봉화 자체에서는 공짜라고 함)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김이 샜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일(15일)이 '통리 5일장'일 텐데, 어차피 교육은 없는 날이기도 해서(광복절),
'거기나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미쳤는데,
00씨 한테 물어보니,
자기는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혼자라도 가지......' 하고 인터넷에서 기차표 시간을 검색하는 등 하다가,
저녁 무렵에 00씨가 또 106동에 들렀기에,(유리 창으로 다 보였습니다.)
"00씨, 나... 내일 혼자라도 통리장에 가려고요." 했는데,
106동 여인이,
"나도 가고 싶어요. 화가 선생님!"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은 여기가 고향인데, 아직도 그 장엔 가본 적이 없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그럼, 00씨, 우리 함께 셋이서 갑시다!" 하고 다그쳤는데도,
그는 못 간다고 했는데,
동창인 106동 여인이 자꾸 꼬시니(?),
언뜻 갈 것 같기도 해서(자신의 시간을 조정해도 될 듯 말하기에),
"그럼, 나는 00씨도 가는 걸로 알고 있겠소!" 하고 밀어붙였고,
106동 여인도,
"그래요. 셋이서 가면 재밌겠네!" 하면서,
정말 셋이서 가는 걸로 방향을 잡게 되었답니다.
물론 그 뒤로도 약간의 실랑이는 있었지만,
결국, 오늘(15일) 우리는 셋이서 '통리'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는 장 이름이 '통리'지, 기차를 내리는 곳은 '철암'이라는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00씨가 어릴 적 초등학교를 거기서 다녀서 너무 잘 안다고 해서,
저는 인터넷 검색으로 '동백산'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줄 알았는데,(혼자 갔다면 그렇게 갔을 겁니다.)
00씨가 하자는 대로,
일단 '철암'역까지 기차표를 왕복으로 끊고,
근데요, 아침이다 보니 해가 동쪽에서 떠서... 우리가 앉은 자리엔 해가 너무 강하게 비춰,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고, 사진을 찍어도 아래와 같이 나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방의 경치는 참 좋았답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는 둥 마는 둥, 어느새 '승부'역에도 도착했고(아래),
또 다른, 그러면서도 비슷한 '협곡'으로의 철길을 따라 '석포'도 지나, '철암'에 닿았는데,
'분천'에서는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드라구요.
근데, 여기 '철암'은 강원도 '태백'시에 속해 있어서,
저는 최근에 생각지도 않게 두 번씩이나 태백에 오게 된 꼴인데요,
버스 안의 모습도 사진으로 몇 컷 남겼는데,
제 모습도 사진으로 찍혔더라구요. (106호 여인 작)(위)
그렇게 '통리장'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었는데(00씨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던 거지요.),
아닌 게 아니라, '통리장'은 상당히 컸습니다.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도 하던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장의 물건들도 다양하고 좋드라구요.
아침을 먹고 갔는데도 장에 도착하니까 약간의 허기도 져서,
우리는 우선 '계란빵'을 하나씩 먹었는데요,
제법 맛도 좋았고, 속도 차드라구요. (아래)
그 빵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었고,
상당히 긴 통로를 가는데, 정말 다양하드라구요.
그리고 듣던 대로 해물시장도 활기찼구요.
(요즘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좀 잡힌다네요. 그래서 작년에 비해선 싸다고도 하던데......)
그렇게 빙 한 바퀴를 돌았는데, 햇볕이 얼마나 강한지... 지치는 기분이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수'를 먹기로 합의를 했고,
00씨와 저는 '장터 국수'를, 106동은 '메밀 국수'를 시켰는데, (맛있드라구요.)
106동 여인이 '오징어 한 접시'와 초장을 사왔고(옥수수 막걸리도 한 병) 해서,
이렇게 푸짐한 상차림을... 그 옆의 옥수수 밭에서 먹는 즐거움도 있었답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있는 순간이 너무 소중하기도 했고 재밌어서,
"우리 셋이 다 들어간 사진 한 장을 찍자."고 했더니,
106동 여인이 그 옆 좌석의 손님에게 부탁해서, 사진 몇 컷을 찍었는데(위, 아래),
00씨가 어찌나 웃기는지,
아무튼... 사진이 저렇게 나왔답니다.
즐거웠답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아, 시골 장에 온 맛이었지요.
(옥수수 막걸리가 달기만 했지, 제 입맛엔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 잔을 마셨더니 약간 술기운도 들었구요.)
근데, '분천역'에 서는 기차는 하루에 네 차례.
시간이 너무 띄엄띄엄 있었기 때문에,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돌아오는 기차를 탈 수 있어서,
00씨의 어릴 적 살았다는 '철암' 역 주변을 조금 돌기도 하는 등,
지루한 오후를 보낸 뒤,
5시 넘어서야 기차를 타고 다시 '분천'으로 돌아왔는데요,
돌아오면서의 풍경도 좋았답니다.(아래)
저는 '자전거 자물쇠'도 샀고, '코스모스 씨앗'도 한 봉지, 당근, 단호박 등을 사는 등...
(우유는 큰 게 없다고 해서, 또 '춘양' 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빠트릴 수가 없어, 제가 좀... 무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어설픈 글을 쓰는 것도 힘들어요......
아, 참고로요.
'통리 5일장'은 말 그대로 끝자리가 5자인 날만 서는 장이구요,
'0'일 서야 할 장은, '통리' 대신 '철암'에서 선다네요.
그러니까 '철암 0일장'이라는 거지요.
두 군데서 나눠서 서는 장인가 봅니다.
첫댓글 시골 장터 나들이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대체로 여자들은 달달한 막걸리를 좋아하더군요... 저는 작가님처럼 달지 않은 걸 좋아하는데요...^^
주말을 맞아 여기 공동체의 젊은이가 서울로 돌아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서울 막걸리를 사오겠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