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만큼 집권자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는 시스템도 전세계적으로 없는 듯하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베트남 등지의 공산독재정치 시스템을 제외하고 말이다. 미국도 민주 공화 양당간에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지만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책은 급하게 손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외교정책에는 그렇다. 전 정권 정책에 대한 불만과 문제점을 인지하지만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수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야만 나라의 정책이 순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너무 조변석개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전 정권과 차별화를 두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강하다고 판단이 된다. 전 정권인 문 정부에서도 그랬다. 그 전 정권인 박 정권때 수립한 것을 대부분 바꿔버렸다. 박 정권에서 이뤄진 괜찮은 사안도 손을 대서 유야무야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당시 야당도 전 정권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며 비판 일색이니 전 정권과 다르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전 국방부가 내놓은 국방혁신 기본 계획도 그런 성격의 사안이다. 국방부는 최근 AI(인공지능) 과학기술강군 육성을 앞세운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정부 시절의 국방개혁 2.0을 대체하는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이번 국방 개혁안이 전임 정부와 확연히 다르다는 차별화를 강조했다. 전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다. 물론 정책은 발전해야 한다. 당연하다. 그래야 나라의 발전도 나라의 국방력도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경우 윗선들 몇명만 바뀌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국방부 전체의 혁신안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 정권때 내놓았지만 전 정권 핵심인사들이 채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전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주요 정책으로 삼은 것과는 정반대로 현 정권은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대응하는 자세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방을 좌지우지하는 정책이 전 정권 현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하면 도대체 무슨 장단에 따라야 할지 아마도 국방부 하위그룹이나 일반 국민을 어리둥절할 것이다.
전 정권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온 힘을 기울인 검찰개혁은 아예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전 정권 아니 그 앞 정권때보다 검찰의 힘은 더욱 강해 보인다. 검찰이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것을 뭐라는 것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 너무 왔다갔다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책이 너무 조변석개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냉탕과 온탕을 수없이 왔다갔다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방정책도 마찬가지다. 윗선이 바뀌면 또 바뀌고 그러면 아래에서 직접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일선 군인들은 혼란스럽다. 사단장이 바뀌면 잔디밭이 꽃밭으로 바뀌고 또 다른 사단장이 오면 꽃밭이 잔디밭으로 교체되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력 낭비이며 국비 손실이겠는가.
새 정권과 새 정부가 들어서면 뭔가 전 정권과 다른 점을 부각시키고 싶을 것이다. 새로운 정책을 세워 나라를 멋지게 이끌고 싶은 마음이 왜 들지 않겠는가. 역사에 남고 싶은 권력자 그리고 정부관계자가 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하지만 너무 자주 바뀌고 그것도 극과 극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나라의 흐름이 단절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마치 전 정권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인 모양새이면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박 정권때는 정책 비판에 대해 고소고발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전 정권인 문 정권때는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건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새 정권들어서는 이런 저런 고소고발 건이 발생하고 있다. 아마 이것도 전 정권과 차별화를 두기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서라도 전 정권과 다른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다. 유럽의 대성당들은 보통 몇백년동안 건립됐다. 그동안 왕도 바뀌고 귀족계급도 숱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종교라는 흐름이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렇게 뭔가 비슷하게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었기에 유럽은 새로운 문명을 꽃 피우고 산업 혁명 과학 혁명 그리고 정치 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책의 변화는 충분히 발생해야 한다.시대가 바뀌고 국제 환경이 바뀌는데 정책이라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에게 효과적이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정책을 세워야지 그냥 전 정권에서 수행했으니 당연히 바꾼다는 것은 절대적인 낭비요 시간 허비가 아닐 수 없다. 전 정권에서 수립됐다고 해서 무작정 바꿀 것이 아니라 바꿔야 하는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무조건 전 정권의 잘못된 점만 부각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전 정권의 정책가운데 이런 이런 점은 현재 상황에 맞지 않으니 수정하겠다는 태도가 더욱 믿음이 가는 일이다. 지금 수립한 그들이 야심차다고 판단한 정책들이 다음 정권때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나 소모적인 다툼을 이어가는 것 아닌가. 국비 낭비요 국민 혼동을 야기하는 불상사가 아닌지 모르겠다.
2023년 3월 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