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안쪽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무에 붙어 있다
날카로운 부리가 들어 있는 소리
소리는 점점 둥근 모양으로 변한다
둥근 구멍을 내는 소리의 모양을 보고 들었다
나무의 한쪽을 헐어 내는 작업
가지마다 돋아나는 획 같은 나뭇잎들이 떨린다
긴 부리를 넣고 다니는 날개의 공구 통
그늘 천막이 펼쳐 놓은 나무 둘레에
흰 목질의 파편이 쌓여 간다
지금 느티나무에 딱따구리의 서각이 한창이다
나무 한 그루에서 둔탁한 소리들을 다 빼내고 나면
그 자리에 부드러운 둥지가 들어설 것이다
공명으로 파 놓은 둥근 집
서각은 나무의 공명만 남겨 놓고 옆의 표면을 긁어내는 일이다
훗날 나무에 귀를 대면 털 없는 허기가 들릴 것이고
더 훗날 새끼들 다 날아가면
구겨지지 않는 흰 목질에 조류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
나뭇조각들이 낙하할 것이다
부리로 새긴 목독木牘
저 소리 다 그치면 글자들은 조용한 페이지를 얻는다
딱딱거리는 비문
나무의 목덜미에는 흰색의 눈썹 무늬의 문양이
고여 있는 바람의 소리로 새겨져 있다
—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돼요』, 천년의시작, 2024.
첫댓글 딱다구리 다다다닥! 소리가 들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