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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1885년). 같은 해 3월 고흐의 아버지는 산책하고 집으로 오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고흐의 직접적 언급은 편지에 남아 있지 않다. 장례식 때 테오가 함께 있었기에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흐는 테오가 파리로 돌아간 후 편지에서 “삶은 누구에게나 짧은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김민 기자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
노랗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해바라기와 귀를 자르는 기행, 그리고 평생 한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를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게 하는 것은 광기와 좌절 같은 극적인 스토리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늘은 고흐가 그린 정물화 두 점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두 정물은 유명한 해바라기도, 아름다운 꽃도 아닌 바로 책을 그린 작품이다. 하나는 고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1885년), 또 하나는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년)이다.
묵직한 성경책과 노란 소설책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그의 대표작들이 걸린 전시장에서 ‘성경이 있는 정물’을 만났다. 두꺼운 책이 테이블 한가운데에 사다리꼴 모양으로 펼쳐져 묵직한 무게감을 뽐내고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무거운 책 오른쪽 아래를 가벼운 노란 책이 경쾌하게 받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갈색빛 배경 위에 가죽 장정을 한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레몬빛 노란색이 들어간 정물화를 보낸다. 이 그림은 하루 만에, 단숨에 완성한 거야.”
편지 내용을 보면 고흐는 어두운 배경, 펼쳐진 성경책의 흰색, 그리고 작은 책의 노란빛까지 색채의 조합에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 속 책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펼쳐진 책은 이 그림이 완성되기 직전 세상을 떠난 고흐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성경책이다. 아버지가 동생 테오에게 주라고 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책보다 작지만 색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은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1884)’이다. 고흐가 즐겨 읽었던 책이다. 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
1885년, 캔버스에 유채, 65.7×78.5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반 고흐가 1885년에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면서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화'는 그가 추구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비평가들 가운데 일부는 이 작품이 반 고흐가 아버지의 종교인 기독교를 떠나 모더니티(Modernity)의 이상으로 개종한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반 고흐는 탁자 위에 펼쳐진 아버지의 성경책과 불이 꺼진 초 한 자루, 그리고 에밀 졸라(Emil Zola)의 소설책 한 권을 그려 놓았다. 앙드레 크라우스(André Kraus)는 성경책 옆에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했던 현대 소설이 놓여 있는 것을 근거로 들면서, 반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독교를 떠나 모더니티로 귀화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지 성경책과 소설이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반 고흐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잊으려 캔버스 앞에 앉았다. 이때 그린 그림이 '루나리아(Lunaria)와 아버지의 파이프가 있는 정물화'와 '성경이 있는 정물화'이다. 그중 먼저 그린 '루나리아와 아버지의 파이프가 있는 정물화'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애용하던 파이프와 가죽 주머니를 루나리아 전경에 배치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절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루나리아와 아버지의 파이프가 있는 정물화’, 1885년, 종이에 펜, 수채, 7.8×5.8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화폭에 담긴 세 가지의 의미는 그림 오른쪽 위에 놓인 불이 꺼진 초는 네덜란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파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로서 인간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가운데 펼쳐진 성경책 오른쪽 위에는 ‘ISAIE’라는 글자와 로마숫자 ‘LIII’가 있는데, 이것은 이사야 53장(고난의 종)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아래쪽에 놓인 노란 책 한 권이 바로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이다. 반 고흐가 펼친 성경은 고난의 종을 노래한 이사야 53장이다. 이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는 당시 교회가 추구했던 화려한 메시아 상(象)과 대조되는 것이다. 반 고흐는 이 말씀을 삶의 목표로 삼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그는 성경을 단지 낡은 사고로만 여기지 않았으며, 성경을 읽으며 삶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가 찾은 세상을 변화시킬 메시지는 바로 인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고난의 종이었다.
반 고흐가 에밀 졸라의 소설을 성경책과 함께 그린 이유는 그 소설이 이사야에 나오는 ‘고난의 종’을 현대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반 고흐는 그 속에서 성경과 그가 살아가던 시대의 문제들을 하나로 엮는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이웃 사랑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폴린 케뉘(Pauline Quenu)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반 고흐는 이 책에서 죄로 물든 인간에 대한 성육화된 사랑을 보았다
만약 '성경이 있는 정물화'가 일부 비평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반 고흐가 기독교를 떠난 것을 암시한다면 그 이후 그가 지속적으로 성경을 가까이한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반 고흐는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성경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 즉 사랑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교회는 선언만 있었지 행동이 수반되지 않았다. 그는 만일 교회가 과거에 세상을 변화시킨 것과 같은 영향력을 오늘날에도 발휘하고자 한다면 선언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폭 가운데에 커다랗게 그려진 성경은 오늘의 문제들에 대한 혜안을 줄 영속적인 진리를 묘사하고, 그보다 작게 표현한 에밀 졸라의 소설은 이러한 반 고흐의 소명을 반영한다. 반 고흐가 성직자로서, 화가로서 추구한 바는 소외당하고 고통 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가 거부한 것은 그의 순수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리고 신앙 고백과 삶이 일치하지 않았던 당시 교회였다.
반 고흐는 살아생전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던 그의 모습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그의 앞에는 늘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성경과 세상, 성직자와 화가,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
* 루나리아(학명: Lunaria annua)의 학명에 ‘aluna’는 ‘달’이라는 뜻으로 꼬투리가 은색의 달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로는 ‘은선초(銀扇草)’라고 하며, 동전 모양으로 생겼다고 ‘동전초’라고도 한다. 꼬투리가 투명하다고 영명으로는 ‘honesty(정직)’이다. ‘유태인의 동전, 교황의 동전’이라고도 한다. 꽃 모양은 ‘무꽃’과 비슷하고 열매는 우리나라의 ‘미선나무’ 열매와 비슷하다.
유럽 원산의 십자화의 두해살이풀이다. 겨울을 넘긴 이듬해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높이 60cm정도까지 자라며 줄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줄기에 어긋나는 잎은 홑잎이다. 꽃은 5∼6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으로 무리 지어 핀다. 4개의 꽃잎이 십자 모양으로 배열하며, 꽃받침조각도 4개이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는 꽃은 아니지만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종이처럼 얇은 원판 모양의 씨앗 꼬투리를 얻기 위해 널리 심고 있으며, 꼬투리를 말려 장식용으로 가공한다고 한다.
러시아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도 '루나리아(Lunaria)‘ 그림이 있다.
“아버지는 이 시대를 이해 못 한다”
고흐는 집을 떠났다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 무렵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그림에 몰두했다. 이때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편지에서 “모든 것이 갖춰진 집보다 저 먼 습지에 있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다”거나 “아버지는 나의 자유를 향한 갈망,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프랑스 소설책 더미(Piles of French Novels)',
1887년, 캔버스에 오일, 54.4×73.6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여기서 고흐가 언급한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은 그가 그린 또 다른 정물 ‘프랑스 소설책 더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정물화에는 에밀 졸라(Émile Zolat),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등 당대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던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들이 그려져 있다. 게다가 색채가 아주 밝고 경쾌한 톤으로 표현된 것이 인상 깊다. 고흐는 이 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 칭찬했다.
즉, 성경책과 졸라 소설의 대비는 종교와 관념이 지배했던 과거의 사상과 개개인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새로운 예술과 문학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목사였던 고흐의 아버지는 졸라를 비롯한 당대 문학이 신을 부정한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 고흐는 “아버지가 이 시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불 꺼진 촛대 옆 성경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레몬빛 작은 ‘삶의 기쁨’은 밝아오는 새 시대를 보여주는 듯하다.
고전이 열어주는 마음의 세계
그렇다고 고흐가 이 그림에서 성경이나 아버지를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힘든다. 엑스레이로 그림을 보면 성경책을 더 반듯한 사각형으로 고쳐 그린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성경을 더 크고 비중 있게 그리려고 했던 의도였을 것이다. 또 펼쳐진 구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과 수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이사야 53장(구약 성서 중에서도 중요한 장 중 하나로,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예언과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구속의 역사를 이루는지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다.)’으로 고흐가 평소 좋아했던 구절이다.
오히려 그림에서는 ‘벌거벗은 진실’을 갈망한다는 말처럼, 과거든 현재든 자신이 마주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려고 했던 태도가 보인다. 고흐는 성경 속 구절을 실천하려 선교사 시절 교회에서 내준 집을 노숙자에게 주었다가 쫓겨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전기를 읽고 감동받아 시골 농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다.
또 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한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프랑스 문학뿐 아니라 토머스 칼라일의 철학서,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의 문학도 즐겨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흐는 “책과 현실과 예술은 나에게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사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그를 버티게 해준 한 가지는 바로 세상을 깊고 넓은 눈으로 담은 고전 문학임을, 두 그림이 보여주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프랑스 소설과 장미가 있는 정물', 188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출처: 동아일보 2024년 03월 26일(화)[영감 한 스푼(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