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숲 시인의 처녀시집 『요즘 입술』에서 김종회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시작하고 있다.
‘필자는 여러 번 놀랐다. 저 남쪽의 한 지역에서 오랜 습작으로 시를 쓰고, 마침내 시집 한 권을 묶는 신인의 시가 이렇게 웅숭깊은 의미망을 형성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인의 단계에서 흔히 보이는 미숙함이나 어설픈 치기가 거의 없고, 각기의 시가 진솔하고 질박하여 은연중에 시 읽는 기쁨을 누리게 하지 않는가. 그의 시에는 지적 유희나 이미지의 과장과 같은 생경한 제스처가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가운데서 소재를 얻고 이를 재치 있고 순발력 있게 시화(詩化)한다.’
다소 긴 해설은 인용한 것은 읽는 나도 해설자처럼 놀랐고 그 감흥 또한 같았기 때문이다. ‘각기의 시가 진솔하고 질박하여 은연중에 시 읽는 기쁨을 누리게’ 했다는 말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있다.
시에 대해 오태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 있다.
‘소위 시의 품격과 위의威儀를 담보하는 요소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를 타고 흐르는 정서다. 시가 언어로 표현된 이상 어떤 형식이든 화자가 지니는 정서의 결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안이숲 시인의 시에 개성을 담보하는 정서의 결은 무엇이 일까? 그의 시를 읽어 보면 첫 번째로 죽음이나 죽음에 버금가는 재난에 대한 고찰과 위무, 두 번째로 육체노동과 관련된 핍진한 이야기, 그리고 세 번째로 생의 시난고난한 일상이 이루는 정서의 결이 안 시인 시의 개성이 아닌가 한다. 특히 육체노동과 관련된 여러 사건과 사유는 여성 시인들이 잘 다루지 않는다는 면에서 좀 독보적이다. (얼핏 느끼기에 인테리어 쪽 일을 하는 듯한) 풍부한 현장경험이 주는 삶의 시난고난은 진정성이 그 바탕을 이루면서 상당한 파급력(사실은 파괴력이라고 해야 맞을 듯 싶은)을 시가 가지고 있다.
안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용암이셨다. 가족 중에 내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업보다.’
아버지에 관련된 시를 한 편 옮겨본다.
알고 있제?
이래 뵈도 내가 뼈대 있는 자손이라 캐도
하루 벌어 하루 묵고살아도
아무때나 오징어맨키로 덥썩덥썩 오그라질 수가 없는 기라
니는 나한테 그런 편견이 없어서 참 좋다
나랑 쬐끔 닮은 구석이 있거등
사흘들이 꼬부라지는 기 세상이라 캐도
내색은 안 하는 기 사내 아이가
니도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니 몸속에 뼈가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 된다이
세상이 니한테 이단 옆차기를 해도
발등에 말목을 박고 딱, 버티고 있으면 되는 기라
세월 가면 다 맷집이 되는 기라
무슨 소리 하고 있노?
디스크라니 말도 안 된다
아직 시멘트 한 포대는 손가락에 힘만 까닥 줘도 들 수 있다니깐
실비집 아지매 마음 벗기는 거보다 더 쉽다니깐
어젯밤 용당 아지매 함 봐라
내가 고마 탁자 위에 이만 원을 탁, 던져 놓으니까
하루 종일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는 기
눈가가 실밥 터진 거 맨치로 실실 풀어지더라 아이가
그라고 보니 돈도 든든한 뼈가 되는 기제
그런 소리 하지도 마라
밤 되면 사지가 오그라지는 거는
빳빳한 종이도 똥 눌 때면 구겨야 되는 거이니까
돈은 또 일 나가모 버니끼네
니는 인자
내 걱정일랑 탁, 붙들어 매라니까
―「아버지」전문
안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다음의 말을 이어갔다.
‘이번 생은 어쩌겠노? 용암은 용암이라서, 다시 뜨겁게 흘러간다.’
시인의 삶도 그렇지만 문단의 삶도 세상의 삶보다 더 지독하면 지독했지 덜하지 않다. 안 시인이 묵묵히 타오르는 용암처럼 흘러갔으면 한다.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를 거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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