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7일.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기고 하나가 논쟁을 야기했다. 기고문은 창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에 대한 것이었다. 기고자는 "경영대학원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는 "현재 겪고 있는 경영 환경의 변화는 기존 경영 법칙을 무효로 만든다. 여기에는 경영학 석사과정(MBA) 수업에서 교수들이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도 포함된다"고 적었다.
이 같은 논란의 주인공은 '주오라(Zuora)'의 최고경영자(CEO) 티엔 추오(Tien Tzuo)다. 주오라는 구독 모델로 운영되는 결제 솔루션 소프트웨어(SW) 기업이다. 2007년 설립된 주오라는 본사가 자리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머테이오를 비롯해 애틀랜타, 보스턴, 런던, 파리, 도쿄 등 16개 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직원은 850명이 넘는다. 주오라의 결제 솔루션 고객은 박스(Box), 슈나이더일렉트릭, 젠데스크 등이다.
추오 CEO는 고객 관리 SW 업체 세일스포스의 초창기 직원이었다. 그는 세일스포스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최고전략책임자(CSO)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가 포천 기고에서 강조한 점은 세계는 지금 "제품 판매에서 구독 판매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개별 제품의 가격이나 마진보다는 반복적 수익(recurring revenue)에 기업들이 중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기고의 핵심 요지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최근 급부상한 기업들은 구독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구독 정책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많다. 구독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지금,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추오 CEO와 인터뷰했다. 그에게서 구독 경제 시대로의 전환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최근 출간된 추오 CEO와 최근 주오라의 매니징 에디터 게이브 와이저트(Gabe Weisert)의 공동 저서 '정기구독 모델이 당신 회사의 미래가 될 이유(Subscribed: Why the Subscription Model Will Be Your Company's Future―and What to Do About It)'를 토대로 진행됐다. 추오 CEO는 "사람들은 물질적 제품이 아닌 '스마트 서비스'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스마트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은 구독 모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부터 설립되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독 모델에 기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추오 CEO와의 일문일답.
―구독 모델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디지털 구독이 이뤄지면서 제품 경제(product economy)에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로 전환되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잡지, 북클럽 등 제품 배달 방식을 통해 무언가를 구독해왔다. 이제는 디지털 구독이 이뤄진다. 디지털 구독은 고객 반응과 고객 참여를 배로 증가시킨다.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가 고객들로부터 하루에 받는 정보의 양을 생각해보라. 회사가 디지털 플랫폼에 더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고객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디지털 고객들은 소유하기보다 서비스에 접속해 이용하는 걸 선호한다. 넷플릭스 등 구독 모델 기반 회사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대부분의 기업은 이 모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수많은 회사 관계자들과 얘기했다. 디지털 구독 모델로 변화하는 데 조직 내부의 걸림돌이 많다고 말하더라. 임직원들은 유형적 제품 판매 실적에 맞춰 성과급을 받는 구조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그 걸림돌이었다.
물론 한편에서는 진취적으로 사고하는 기업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사의 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구독 모델이 현재 점점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독 모델은 낯선 사람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미 기업이 확보해 성향을 알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앞서 사람들이 구독자가 되는 이유로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이동을 말했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독하는 다른 이유가 있나.
▷디지털 플랫폼이 구독 모델에 힘을 실어준다. 전반적으로는 사회현상이 이를 부추긴다. 앞서 말한 대로 소유 개념에서 탈피해 접속과 접근의 개념이 특정 제품을 빌리거나 어떤 서비스를 구독하게 하는 것 같다. 특히 젊은 층의 다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좋은 경험을 즐기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돼야 할까.
▷그렇다. 구독 모델이 시장 트렌드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물질적 제품이 아닌 스마트 서비스를 요구한다. 실질적인 제품이 있더라도 구독 모델이 적용돼야 한다. 구독 모델 없이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해당 제품이 사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구독 모델 기반 비즈니스의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가격을 꼽았다. 회사는 어떻게 알맞은 가격 정책을 세울 수 있을까.
▷무수한 조사를 해도 막상 시장에 처음 진출하면 알맞은 가격을 바로 세우긴 어렵다. 희소식은 구독은 실험과 혁신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점이다. 가격을 여러 번 바꿔 성공적인 구독 기반 회사가 된 곳이 꽤 있다.
―예를 들어달라.
▷넷플릭스의 가격 정책을 예로 들겠다. 넷플릭스에는 두 가지 가격 모델이 있다. (국내 가격 기준 월 9500원인) 베이식 모델과 (월 12000원인) 스탠더드 모델이다. 베이식 모델과는 달리 스탠더드 모델을 사용하면 두 개의 스크린에 동시에 콘텐츠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넷플릭스가 최근 프리미엄 모델을 선보였다. 울트라HD 화질을 비롯해 네 개의 스크린에 동시 시청이 가능한 기능이 탑재됐다(가격은 14500원이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일반 사용자(casual viewer)들이 소외감이 들지 않게 하는 동시에 열혈 사용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이 더 많은 비용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모든 사용자들의 구독 비용을 올리지 않고 '슈퍼 사용자(super user)'들로부터 수익을 더 거두는 똑똑한 가격 정책이다.
넷플릭스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가격 정책을 어떻게 잘 세워야 할지 배웠다. 2011년을 돌이켜보자. 당시 넷플릭스는 거의 망할 뻔했다. DVD 배송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용자들을 이동시키고 싶었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사업을 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DVD 대여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매달 10달러에 즐길 수 있던 사용자들에게 각 서비스가 매달 약 8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기에 넷플릭스 서비스 이용료를 한순간에 60% 인상시키는 이 모델은 넷플릭스에 치명상을 안겼다. 80만명의 구독자가 빠져나갔고, 회사 주가는 거의 80% 하락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넷플릭스는 가격 정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얻은 교훈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구독 모델 기반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리더들의 공통 특징이 있나.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구독 모델은 실험과 혁신을 불러일으킨다. 세일스포스에서 일하며 마크 베니오프 CEO와 함께했다. 이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 베니오프 CEO는 항상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비공식적 자리를 마련했다. 잠재 고객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의 호기심은 세일스포스 서비스에 큰 보탬이 됐다.
―베니오프 CEO와의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세일스포스에 입사한 후 2~3주가 지났을 때다. 영업 전화(sales call)를 하러 갈 때 나도 같이 가자고 하더라. (잠재 고객과) 통화를 하면서 베니오프 CEO는 세일스포스 제품을 홍보하거나 고객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세일스포스라는 회사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품 디자인 색상은 어떤가" 등을 물었다. 베니오프 CEO의 이런 영업 태도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 같았다. 당시 세일스포스는 생긴 지 얼마 안된 회사였다. 어떤 제품을 선보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베니오프 CEO와 일하면서 알게 된 점은 그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항상 본인의 아이디어, 전략, 비전을 실험했다. 그는 무언가를 판매하는 것은 곧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주오라의 CEO로서 나 역시 누군가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CEO직에 있는 사람들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근시안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 상황이 오면 당신은 지게 된다.
―세일스포스에서의 당신의 경험이 주오라 창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세일스포스의 11번째 직원으로 입사했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지냈다. 세일스포스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주오라 사업 아이디어도 내가 세일스포스에서 일했을 때 탄생했다. 베니오프 CEO, 웹 콘퍼런스 전문업체 웹엑스(WebEx·현 시스코 웹엑스)의 직원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Sas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회사를 위한 좋은 결제 솔루션이 없는 사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회사가 결제 솔루션을 직접 작업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웹엑스 직원 두 명과 나는 주오라를 설립했다(기존 각 사업체가 따로 자사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주오라는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결제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구독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정보기술(IT) 붐이 일다 닷컴버블이 터졌다. 구독 모델 기반 사업에도 버블이 낄까. 버블이 터질까.
▷닷컴버블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 구독 모델 기반 회사들은 고객 이탈률(churn rate)에 민감해야 한다. 늘어가는 구독자 수보다 구독을 끊는 사용자 수가 많아지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구독 기반 비즈니스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모든 회사들은 구독 모델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구독 모델은 우리 시대의 주요 경제 모델이 될 것이다.
한순간에 구독 모델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 현재 알맞은 시스템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면 특정한 제품 라인이나 고객 유형을 대상으로 구독 모델을 시험해볼 수 있다. 점진적으로 구독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150년을 돌이켜보면 대기업들이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나는 이게 이례적인 현상(anomaly)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제품이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알았다. 정육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 빵집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이제 우리는 소비자들이 제품 판매를 하는 회사와 모르는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구독 모델은 개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해하고 이를 기억하게 한다. 이에 맞춰 각 고객에게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해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 기업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판매하던 시대에서 변하는 것이다.
■ 신문 같은 콘텐츠 기업도 구독모델 비즈니스 필요
과거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사람들은 신문, 라디오, 잡지, TV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기업들은 미디어에 광고해 인지도를 높였다. 이는 수익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정보를 인터넷으로 얻는다. 많은 미디어가 제작하고 발행한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한다. 콘텐츠 기업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주오라 CE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콘텐츠 회사가 구독 모델 기반 사업을 한다면 광고의 중요성이 떨어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신문, 광고와 같이 대중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발행사들에 광고는 늘 중요한 수입원이 될 것이다. 사실 구독 모델은 광고에 효율성을 더한다. 구독 모델을 통해 광고주들이 독자가 누군지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콘텐츠 회사들은 더 높은 광고비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 기업은 가장 먼저 광고 예산을 줄인다. 구독 모델이 현재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구독 모델은 광고 기반 모델보다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이라 예측 가능하다.
―광고비와 비교하면 구독 비용은 그리 크지 않다. 구독형 콘텐츠 사업 모델에 광고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예전에 광고비로 얻었던 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제품이나 서비스를 열성적으로 구독하는 사용자층이 탄탄하면 수익을 낼 기회는 많다. 별도 행사, 독점 콘텐츠 등으로 추가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생긴다.
'뉴욕타임스'는 유료 낱말퍼즐(crossword puzzle)과 요리 애플리케이션을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뉴요커' 잡지는 매해 '더 뉴요커 페스티벌(The New Yorker Festival)'이라는 축제를 연다. 이 축제는 1999년에 시작했다. 유명 인사들과 문화계를 선도하는 아이콘 같은 이들이 일반 대중과 만나는 장이다. 미디어 회사 '콘데 나스트'는 자체 비디오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는 콘텐츠가 많다. 구독자 수를 늘리기 쉽지 않을 텐데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말로는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라고 말하고 싶다. 신문은 탐사보도같이 심층 취재한 기사를 생산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영 관련 기사를 심도 있게 다룬다. 내가 볼 때 이런 콘텐츠는 읽을 가치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처럼 대체 불가한 콘텐츠를 생산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 티엔 추오 '주오라' CEO는…
티엔 추오는 미국 코넬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오라클에 입사했다가 1999년 세일스포스로 자리를 옮겼다. 신생 기업 세일스포스의 11번째 직원으로 시작해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거쳤다. 2007년 주오라를 공동 창업하고 현재까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그의 첫 저서 '정기구독 모델이 당신 회사의 미래가 될 이유(Subscribed: Why the Subscription Model Will Be Your Company's Future-and What to Do About It)'는 지난 6월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