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를 두 번 읽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상상력의 틀안에 갇히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가 타 시인과 변별되는 지점으로는 김 시인의 상상력이 발동하는 근거가 분명하다는 점이더군요. 일테면,
나는 새들에게 싸였다 (「설맹(雪盲)」
꿈속의 새가
내 베개 위에 침을 흘린다
침으로 기울고 있는
내 얼굴처럼 (「기척도 없이」)
순록들 내 입술 위를 걸어간다
…
순록은 내 입술을 뜯어 먹는다
…
수염고래 한 마리가
내 입술 위로 올라온 적도 있다
…
봄이 되면 내 입술 위의 따뜻한 얼음이 된다
살얼음 아래로 녹아내려 내 입술이 된다 (「내 입술 위 순록들」)
엄마는 아직도 남의 집에 가면 몰래 그 집 냉장고 안을 훔쳐본다 (「간절기(間節期)」)
내 손이 네 가슴으로 처음 들어갈 때
너는 기러기처럼 내 허리를 안고
날아오르려 했다
민란(民亂) 중엔 갓난아기 다리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데
사내는 피가 산보다 질겨야 한다며
너는 내 살을 따라 살며
내 몸 뼈다귀를 만져주며 살고 싶다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자꾸 잊곤 해
이다음에 나는 당신의 무덤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자
우린 어차피 어미의 물속에서
태어난 물거품들이라 한다
뼛속을 드나드는 돌가루를 뱉으며 시만 쓰라 한다
밥솥으로 단풍과 번개는 지을 수 없다 한다
수풀에 우는 아기를 놓고 오라 한다
매운 魂에 떨지 말라 한다
그러나 나는 몸이 가려운 오디 빛 시를 앓을 뿐
이불 속에서 내 발이 당신의 발에
닿을 때마다 서럽다
이승에 노래로는 실패한 쑥국새처럼
그래도 무덤과 봄비만은 쉬이 떠나지 못하겠다
―「파란 피 ―아내에게」전문
김경주 시인 시의 출발점은 주체인 ‘나’ 아니면 ‘내 주변’, ‘내 주변인’이네요. 상상력의 확산과 자유자재가 그 출발이 분명해서 진정성을 획득할 소지가 충분하네요. 해체를 그냥 마구잡이 해체해 놓으면 그냥 그 시인의 스타일로 여기고 말 수가 있는데, 여러 편 보면 그게 그거 같아 보일 소지가 많은데, 김경주 시인 같은 경우엔 개성이 될 특징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권해주셔서 읽고는 흡족합니다. 다만 진심을 다해 시를 썼는가 하는, 고투는 덜 느껴지네요.
#김경주 #고래와수증기 #파란피 #부자부대찌개
첫댓글 김경주 시
고래와 수증기
군침이 당기는군요
읽어보겠습니다
자세한 소개
감사합니다
ㅎ
잘지내시죠?
반갑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