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20호
우울한 탱고
박후기
1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중력에 이끌린다
느닷없이 꺾이는 리듬의 관절처럼
춤도 사랑도
예정된 길을 따라 걷는 듯하지만
종종 스텝이 어긋나기도 한다
2
틈,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가 아닌 둘이다
하나 같은 둘이다
은근한 욕망과 절제 사이로
나른한 계절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확, 불 댕겨버리고 싶은 성냥처럼
갈라진 틈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가슴과 가슴이여
3
춤추는 달이
지구를 붙잡고
빙그르르 돌아간다
열정 뒤에 숨겨진 우울을
달은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달의 뒤편처럼
남자는
보이지 않는 여자의 뒤편을
친절하게 더듬는다
달은 45억 년 동안
지구에게 끌려다녔다
달아,
이제 그만
달.아.나. 렴
-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 2006)
***
지난주 금요일에는 춘천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 춘천 밀롱가 ChunCheon Milonga
맥주와 와인 그리고 탱고 공연이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까지 탱고 하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프랭크 슬레이드 역)와 가브리엘 앤워(도나 역)가 탱고를 추던 장면이 전부일 만큼 탱고는 관심 밖이었고 그만큼 탱고에 무지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탱고를 보면서 탱고라는 춤이 문득,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오늘 아침 굳이 박후기 시인의 시 <우울한 탱고>를 다시 꺼내 읽는 까닭입니다.
탱고를 추는 남녀를 자전하는 지구와 자전하면서 지구를 공전하는 달로 비유하고 있지요.
그런데, 탱고 공연을 직접 보고 시를 다시 보니, 3연이 어딘가 조금 어색합니다.
탱고로 비유하자면,
달은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맞지 않을까.
기꺼이 지구와 호흡을 맞추며 탱고 스텝을 밟고 있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니
"달은 45억 년 동안/ 지구에게 끌려다녔다"
"달아 이제 그만 달아나렴"이란 문장은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으로 박후기 시인에게 공연한 억지를 부려봅니다.
억지를 부리다 부리다 마침내
탱고,라는 춤으로 한 권의 시집을 묶어도 좋겠다, 곰곰,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 탓일 겁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2024. 1. 22.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달빛 탱고는 밀롱가와 넘나 잘 어울리네요~^^ 눈 내리는 이 아침의 템포도 그러합니다... 좋은 시 좋은 글 배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