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주체 못 할 봄기운
應憐屐齒印蒼苔(응련극치 인창태),
푸른 이끼 위에 나막신 자국이 찍힐까 봐서인가.
小扣柴扉久不開(소구시비 구불개).
가만가만 사립문을 두드려 보지만 오래도록 열리지 않는다.
春色滿園關不住(춘색만원 관부주),
뜰 가득한 봄기운이야 막을 수 있을쏜가.
一枝紅杏出墻來(일지홍행 출장래).
발간 살구꽃 가지 하나가 담장을 넘어섰다.
―‘화원 구경을 놓치다(유원불치·遊園不値)’ 엽소옹(葉紹翁·1194∼1269)
* 遊園(유원) : 정원. 공원.
* 不値(불치) :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화원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 應憐(응련) : 아마도 불쌍히 여기다. 應은 아마도. ~~할 것을 꺼려해서일 것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주인의 애호를 뜻한다.
* 屐齒(극치) : 나막신 밑의 이빨 모양의 돌출부
* 小扣(소구) : 가볍게 두드리다. 요즘말로 녹크 이다.
* 小扣柴扉久不開(소구시비구불개) : ‘十扣柴扉九不開’로 기록한 판본도 있다.
* 柴扉(시비) : 사립문.
* 不住(부주) : ~하지 못하다.
* 關不住(관부주) : 가두어 둘 수 없다.
✵ 葉紹翁(섭소옹) : 남송(南宋) 처주(處州) 용천(龍泉) 사람. 자는 사종(嗣宗)이고, 호는 정일(靖逸)이다. 학문은 섭적(葉適)에서 나왔고, 진덕수(眞德秀)와 절친하게 지냈다. 조정에서 벼슬을 했다. 저서에 『정일소집(靖逸小集)』 1권과 『사조문견록(四朝聞見錄)』 5권이 있다. 강호파(江湖派) 시인으로서 작품에서 전원생활을 많이 그려냈으며, 7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났다.
봄의 화원이 궁금했던 시인이 친구네인지 이웃집인지 조심스레 사립문을 두드려 본다. 한데 주인은 도무지 대문을 열어줄 기색이 없다. 부재중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방문을 꺼리는 것인가. 애당초 빗장을 걸어둔 게 한창 푸릇푸릇한 이끼밭을 아끼자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불청객을 반길 리 없다. 괜스레 외인이 풀밭을 휘젓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길까 저어해서 그랬을 터다. 주인의 이 갸륵한 정성을 누가 탓하랴. 화원 구경에 실패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시인의 눈길을 끈 한 장면, 살구꽃 가지 하나가 벌써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제아무리 빗장을 단단히 질러둔들 그게 다 무슨 소용. 바깥세상이 궁금하기는 발갛게 달아오른 살구꽃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투정하듯 시인이 주절주절 내뱉는 한마디. ‘뜰 가득한 봄기운이야 막을 수 있을쏜가.’ 봄의 정취, 봄의 기운을 억지로 가두려 하지 말고 봄의 향연을 함께 누리자는 권유가 완곡하면서 간절하다.
시 말미에 쓰인 ‘홍행출장(紅杏出墻·붉은 살구꽃이 담장을 벗어나다)’이란 말은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다’는 비유로 쓰는 성어인데 바로 이 시에서 유래했다. 시인의 당초 의도와 달리 요즘은 이 성어가 부정(不貞)한 유부녀의 행실을 빗대는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3월 29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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