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된 우리나라 전통 인형극 중에 꼭두각시 놀음(중요 무형문화재 제3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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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에 의해 많이 공연되었으며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박첨지(朴僉知) 놀음" "홍동지(洪同知) 놀음"이라고도 합니다.
전체의 8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네 한복판의 빈터에 기둥을 네 개 새우고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장막 뒤에서 사람들이 인형을 조정합니다.
여기서의 동네 빈터는 법계의 공(空)함을 네 개의 기둥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四大)를 징막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나타냅니다.
인형들은 각기 다른 탈바기지를 뒤집어쓰고 장막 위로 모습을 내타내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로 그 인형들을 조정하는 것은 장막 뒤쪽에 슴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형들이 입도 열고 춤도 추기 때문에 정작 인형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느켜지지만 그 인형들을 움직이는 주인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제1막이 시작되기에 앞서 부채 하나가 나타나 흔들흔들하며 지나갑니다. 이 부채의 바람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바로 업(業)을 일으키는 근본바람인 무명풍(無明風)을 상징합니다. 무명풍이 업보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부채가 사라지고 나면 흰머리에 흰눈썹과 흰수염을 달고 흰옷을 입은 "박참지"가 나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야! 오늘 사람들이 참 많이 모였다." 고 합니다. 무명풍 속에서 주인공이 되는 "나(我)" 박첨지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박첨지의 흰 색은 아직 때묻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며 오늘 참 많이도 모인 그 사람들은 모두가 박첨지 자신처럼 "부모의 탈바가지를 쓴 꼭두각시"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참 법문이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구체적인 놀음극에 빠져들어 갑니다.
제1막이 시작되면 박첨지가 장막 뒤에서 인형과 대화를 하는 "산받이" 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남사당패의 놀이판에 끼어들었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기 소개를 합니다. 드디어 중생세계의 놀음판에 뛰어든 것입니다.
제2막부터 제7막까지는 위선 • 재앙 • 부정 • 욕정 • 권력의 횡포가 판치는 험난한 세상살이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제2막은 마을 뒷절의 승려가 박첨지의 질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노한 박첨지의 조카인 "홍동지" 를 불려 승려를 내쫓는 내용이요.
제3막은 박첨지가 사돈인 "최영로(崔永老)" 의 집에 가서 새를 쫓고 있는데 이무기가 나타나 그를 잡아먹을 찰나에 홍동지가 와서 구해주는 내용입니다.
제4막에서는 눈을 굳게 감은 "동방노인" 이 등장합니다. 그는 눈을 감고 나타난 이유가 "세상이 부정(不淨)한 때문" 이라고 하면서 어지러운 세상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제5막의 주인공은 "표생원(表生員)" 과 "꼭두각시" 입니다. 표생원은 오랫동안 헤어져 이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났건만 잘해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첩인 "돌머리집"을 상면시킵니다.
마침내 꼭두각시와 돌머리집의 싸움이 벌어지고 표생원이 살림을 나누어 준다면서 첨에게만 후하게 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출가를 하겠다며 퇴장을 합니다.
제6막은 새로 부임해 온 평양감사가 민정은 살피지 않고 매사냥부터 하는 내용이요. 제7막은 모친상을 당한 평양감사가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건만 오히려 좋아하며 그 상여의 향두꾼으로 발가벗은 홍동지를 불려 상여를 매게 하는 내용입니다.
제7막은 죽으면 자식이 소용이 없다는 것과 발가벗은 홍동지처럼 모든 것을 남겨두고 발가벗은 채로 간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 인형극에서 가장 불교적인 것은 제8막입니다. 감사의 장례식 후 박첨지가 나와 "명당에 절을 짓겠다" 고 알리면 승려 두 사람이 나와 절을 짓습니다.
《에루 화산에 절을 지어 뚝딱! 에루 화산에 절을 지어 뚝딱!》
노래를 부르며 뚝딱 뚝딱 하면 절이 순식간에 완성되고 법상(法床)을 차리면 법사가 올라앉아 주장자로 법상을 내려친 다음 법문을 합니다.
《오직 범부의 생각만 비우거라! 성인의 아는 바가 따로 없느니라! 但盡凡情 단진법정 別無聖懈 별무성해》
이 한 마디 법문을 끝내고 다시 한번 주장자로 법상을 친 다음 법사가 냐려오면 곧바로 절을 지었던 두 승려가 절을 하물어 버립니다. 그리고 등장인물과 동물 등이 모두 나와 춤을 추고 노래하며 한바탕 신나게 놉니다.
놀이가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벌가벗은 홍동지가 제 키보다 더 큰 성기를 어깨에 걸치고 등장을 합니다. 홍동지는 그 큰 성기호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을 사정없이 쳐버립니다. 첨지를 치면 첨지가 없어지고 여자를 치면 여자가 없어지며 감사흘 때리면 감사가 법사를 때리면 법사가 사라집니다. 이무기도 매도 꿩도 모조리 다 때려서 없애는데 성기로 때려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을 보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신이 나서 야단입니다.
성기에 맞아 모든 것이 다 없어진 빈 무대! 이것으로 꼭두각시 놀음은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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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꼭두각시놀음에서 관중들의 눈에 보이는 인형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장막 뒤에 있는 속사람의 역활입니다. 속사람이 인형을 밀고 당겨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인형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막 뒤에 속사람이 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속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오고 가고 앉고 서고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모두 속사람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꼭두각시놀음을 구경하듯이 살아갑니다. 인형을 움직이는 장막 뒤의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관심도 주지 않고 인형들의 움직임에만 집착하여 울고 웃고 노하고 즐깁니다.
이렇게 주인공을 잊고 겉모습인 물질과 사람에 집착하여 사는데 어쩌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것이며 머리가 아프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중생의 삶은 꼭두각시놀음과 다를 바가 없으며 바로 이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마지막 제8장을 극적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법사는 낙성법회(落成法會)에서 법문을 합니다.
"다만 범부의 생각만 비우거라! 성인의 아는 바가 따로 없느니라!"
이 법문이 바라 고멸성제요 열반의 정의입니다. 열반락이 따로 있고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러야만 열반을 얻을 수 있는 것리 아니라! 범부의 생각, 범부의 갈애와 집착 때문에 열반락(涅槃樂)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연반락을 얻는 비결은 범부의 생각인 번뇌를 비우는 데 있습니다. 꼭두각시와 같이 실체가 없는 번뇌를 멸하는 것 ! 그것이 고멸성제요. 열반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번뇌를 다스리는 법방망이를 얻어야 합니다. 홍동지의 성기와 같이 모든 번뇌를 쳐부수고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 방망이를 얻어야 합니다. 그 법방만이는 이론이 아닙니다. 실천입니다.
그럼 그 실천의 무엇이 무엇인가? 사람의 근기(根機)가 각양각색이기에 그 길 또한 여러 갈래이지만 큰 틀로 이야기하면 사성제의 마지막인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 곧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입니다.
고멸성제인 열반의 뜻을 보다 상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불교교리총서 《삼법인(参法印) • 중도(中道)》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참조하시기를 당부드리며 고멸성제의 구체적인 내용인 팔정도에 대해 장을 달리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으로 사성제(四聖諦) 고멸성제(苦滅聖諦 )의 공부를 맞치고 다음은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에 대해 공부하여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