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음으로 값 없이 구원을 얻었지만 끝까지 인내함으로 최종적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많이 제시한다.
마태복음 10장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론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이러한 구절들이 믿음에 혼선을 많이 가져 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구절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면 구원의 확신에 걸림돌이 될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절로 인해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 얻었지만 최종적인 구원은 인내로 견디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영원히 구원을 못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불안으로 구원의 확신은 가질 수가 없다.
미래에 어떻게 될른지 모르는데 구원의 참 기쁨을 누릴수가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효력이 결국 나의 인내에 따라 최종 구원이 좌우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면 구원이 값 없는 은혜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는 가?
나의 인내로 구원 얻으면 그것이 어떻게 값 없는 은혜란 말인가?
또 무엇을 견디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은혜도 복음도 아니다.
말씀을 달랑 한 구절 떼서 주장하면 안 된다.
성경 전체의 핵심 메세지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값 없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가 아닌가?
로마서 3장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히브리서 10장
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믿는 자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
중간에 변동이 없다.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칭의는 법정적 용어이다.
판결이 끝난 것이다.
이미 완료 된 것이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 이해가 가는가?
그래서 마태10장 같은 난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본 구절은 마지막 종말때 유대인들의 상황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시록에 있는 수 많은 종말의 다양한 교리적 관점을 얘기해야 한다.
지면상 일일히 다 말할수는 없고 여기서는 종말론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 구절을 그냥 문자대로 읽으면 구원의 탈락의 주장처럼 해석 되는데 "견디는 자"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죄의 형벌로 부터 구원 받는 것이 "견디므로" 달성된다는 말씀은 없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구원은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나타난 구원은 영적인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 육체적인 의미의 구원으로서 믿는 자들이 고난을 견디어 육체적인 구원을 도모 하라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성경은 육체적인 구원을 구원이라 표현하는 곳도 많다.
실례로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는데 이때도 구원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사도행전 27장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28장 1절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 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이 말씀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육체의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가 무엇을 참고 견디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불투명하고 참고 견디어서 구원받는다는 것 자체가 십자가의 은혜와 동 떨어지기 때문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당할수 있다.
그러한 고난이나 핍박을 견디는 신자, 영혼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신자들이 현재 고난을 인내하라는 의미에서 격려의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구원이 완성됐지만 우리 몸의 구속을 위해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시니까 고난 가운데 소망으로 견디라는 말씀이다.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몸의 구속을 위해 곧 주님께서 오시니 소망으로 참고 끝까지 견디어라" 그러면 이미 영적으로 이루어진 구원이 주님 오실때 실제로 신령한 몸으로의 구원으로 완성된다 라고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구원론적인 성경 말씀과도 부합되고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십자가의 구속의 복음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분이 이미 거듭났으니 구원에서 탈락 안된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참으로 자신이 거듭났는지 확증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구원의 확정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근거로 나의 구원을 확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증거를 해 주신다는 것이다.
교회는 "에클레시아" 구별된 무리, 부름받은 모임, 즉, 성도를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거듭난 줄 모르면 어떻게 교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주님의 신부라고 부를수 있겠는가?
로마서 8장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 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지 확증하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 후서 13장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