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1 [주민현]
부드러운 빵을 먹을 때
나도 한 겹 녹아내리는 것 같다
빵의 내부에 있는 작은 문과 그 안의 작은 문을
차례로 열고 들어가 조각나는 기분
빵이 녹아갈 때마다
나에겐 커피가 필요하고
오늘밤 잠들지 않는 묘약이 필요하네
밤이란 음담패설을 늘어놓기에 좋은 시간이지,
어깨를 주무른 뒤에 웃어넘기기에도,
배가 불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서 작은 창문을 지키네
건너편 창문에 선 당신은 붉은 입술의 중요성과
복장 단정의 이중주를 듣고 있지
나는 상급자를 바꾸라는 전화와
꺾어지는 나이라는 농담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가지
합창은 절규와 비슷한 면이 있고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지
한 손에 빵을, 다른 한 손에 장미를 쥐고 걸어갈 때
부드러운 빵에선 단맛이 난다네, 가시에 피가 도는 것처럼
어지럽네
창문 아래 선 누군가는 한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높고 가볍게 허밍하지
부드러운 노래는 천천히 녹아가는 식빵의 느낌과
장미 잎의 어두운 뒷면을 닮았지
우리에겐 빵이 필요해, 하지만 장미도 필요해*
입을 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하나의 덩어리를 이룰 때
목소리는 도시의 불빛을 따라
달콤한 잼들이 놓인 찬장을 향하여
유리와도 같이 투명하게 흘러 올라가지
* 1912년 로렌스 섬유공장 파업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구호,
"우리는 빵을 원한다. 또한 장미도".
- 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2020
* 수백년의 역사라고나 할까,
여성이 불평등하게 대접 받았던 것이.
백여년 전에도 부드러운 빵과 가시가 달린 장미를 원했다는 여성의 구호는
사실 얼마 전까지도 여전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연장되어 갈지도 모른다.
대략 삼십오년 이상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여성직원들이 받았던 부당함은 많았다.
남성직원의 급여에 비해 80퍼센트만 받았던 때도 있었고,
아침 일찍 출근해 책상을 닦아야 했다.
회의를 하거나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고 날라야 했다.
지금은 좀 많이 바뀌었을까.
일단 내가 다닌 회사는 책상은 자기가 닦을 것, 커피는 자기가 타먹을 것,
급여는 똑같이 줄 것이었다.
그런다고 여성직원이 부드러운 빵과 가시가 도는 장미를 내려놓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진적으로 변화했던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는 그러한 구호도 사라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