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때가 되면 엄마한테 전화해드려야지, 했었는데
오늘도 어제도.. ‘아, 엄마는 이제 전화를 못 받으시지..’
생각해보니
엄마가 임종한 시간은 엄마가 기억한 첫아들인 내가 태어난 시간과 얼추 비슷했다.
생각해보니
맨 처음 문상객도 맨 마지막 문상객도 리아 지인들이었다.
엄마의 관을 이송하는 리무진 차량은 가족 세 명만 타게 되어 있었다.
차가 출발하려는데 둘째 동생이 급하게 달려와 차문을 두드렸다.
“셋째!” “셋째!”를 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동생이 내리고 셋째 동생이 차량에 동승했다.
엄마가 생전에 가장 걱정을 많이 하고 보고 싶어한 자식이었지만
가장 집에 찾아오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녀석이 내 옆에 앉고 우리들 뒷칸에는 엄마의 관이 실려 있었다.
문득 “아, 엄마가 녀석을 보고 싶어서 부른 것이었구나...”
셋째는 술을 하도 많이 먹어서 정작 발인날에는 못 올 것 같다며 자기 집으로 잠을 청하러 갔다.
‘느린 마을’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집에 돌아가 계속 마시려는데 어쩐 일인지
한 잔도 못하겠어서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눈을 떳다고 한다.
셋째가 하는 말이 ‘엄마가 나를 깨웠구나’
엄마 집에서 자던 나도 눈을 떠진 시간은 다섯 시였다.
장례식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면을 하다가 엄마 침대 주변에서 엄마의 수첩을
발견했다.
이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오늘 이재용이 포승줄에 묵여서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
다같이 평화롭게 지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외숙모의 딸이 문상을 왔는데 나는 그녀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이도 많지 않은 그녀가 부조금을 50만원이나 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내 둘째 동생이 말하기를
"걔가 그랬어.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
한번은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된 남친 데리고 자기 친엄마 집에 왔는데 친엄마는 지청구만 늘어 놓았는데
마침 그곳에 방문한 울엄마가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서 자기랑 남친에게 대접하더래. 그때도
아, 큰고모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친엄마처럼 여겼다고 하더라구"
그녀도 또 그녀의 다른 형제 자매들도 자신들의 모친에 대해 지극하게 효도를 하는 것으로
집안에 소문이 자자한 터다.
여동생의 딸- 조카는 곱게 자란 초미인이었는데 열심히 장례업무를 도왔다.
잠시 아빠 옆에 앉아 있는 조카에게 내가 물었다.
“요새는 운전 할 줄 알지?”
“네.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아빠가 술 취하고 그러면 대신 운전해줄 수 있어?”
“그럼요. 근데 내가 운전대 잡으면 옆에 계신 울아빠 술이 확! 깨실 걸요”
ㅋㅋ
엄마 장례식에서 공부한 것.
슬퍼하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것.
꺼이꺼이 가슴이 터져라 울으면서도 울지 않는 것을 배움.
이상
다들 고마운 마음에 5월 9일 다 같이 실컷 먹고 놀기로 하였다.
오후 네 시 올댓힐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