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佛敎)를 망가트린 것은 “승려(僧侶) 자신”이다 !!
“김시습 불교를 말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옛날에는 현자(賢者)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설사 보잘것없는 곳일지라도 수행자(修行者)들이 귀의(歸依)해 총림(叢林절)을 이루었다. ※현자(賢者)-어질고 총명(聰明)하여 성인(聖人)의 다음가는 사람. ※총림(叢林)-한자 자체는 잡목(雜木)이 우거진 숲의 글자인데 산속의 절을 말한다. ※귀의(歸依)-중생(衆生)사회에서 돌아와 부처를 깊이 믿고 의지(依支)함.
지금 승려(僧侶)들은 경치 좋고 공기 좋은(名勝地)곳에 거주하며 배불리 먹으면서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불법(佛法)을 무너뜨리는 것은 세상의 속된 선비들이 아니라 승려(僧侶) 자신들이다】
이렇게 불교(佛敎)를 노골적으로 신랄(辛辣)하게 비판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였을까? 바로 “금오신화(金鰲新話)” 책을 쓴 생육신(生六臣) 김시습(金時習)이 “임천가화(林泉佳話)”에서 한 말이었다. ※임천가화(林泉佳話)-는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모아 놓은 책.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즐거운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주로 은둔자(隱遁者)나 도사(道士)들이 산림과 계곡(溪谷)에서의 생활을 즐기며 나누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중국 문학과 고사(故事)에서 이 책을 많이 응용하고 있다. 자연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문구(文句)로, 고전 문학에 대한 글 쓰는 사람이 자주 인용하는 글이다.
단종이 세종의 찬탈로 죽은 후 김시습(金時習)이 속세를 떠나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아 다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승려(僧侶)가 된 것도 역사에 나오는 말이다. 김시습이 속세(俗世)와 인연을 끊고 불암산 석림사 계곡에서 은거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김시습은 전 생애에 걸쳐 유교와 불교를 겸(兼)한 지식인었다. 그것은 그가 “경계인(境界人)”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경계인(境界人)-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1. 정신의 경계(境界)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2. 사회적 문화적 경계(境界)에 위치한 사람을 의미한다. 즉, 어느 한 쪽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양쪽의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 특히 불교에서 많이 사용한다.
김시습(金時習)은 유교인(儒敎人)의 삶과 불교인(佛敎人)의 삶 어디에도 편안하게 살지 않은 청양고추처럼 맵고 천일염처럼 짜게 삶을 산 사람이다.
김시습은 불교(佛敎)를 비판하면서도 부처님은 “성인(聖人)”으로 구분했다. 김시습은 깨달음의 본질(本質)과 승려(僧侶)의 본분(本分) 당시 불교에 대한 비판까지 말하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당대의 천재였다. 생후 8개월에 글을 떼고 세 살에 시를 지었으며 다섯 살에 사서(四書)를 읽었다는 전설 같은 기록이 있다. 신동이 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세종대왕이 예뻐하였다고 했다.
김시습(金時習)은 세종(世宗)이 끔찍이 아끼던 단종을 위해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 이후 철저히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거열형(車裂刑)을 당해 몸이 조각난 사육신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묻어준 뒤 평생을 은둔하거나 김삿갓처럼 떠돌았다. 2000수 이상의 한시를 남겼는데 권력을 경멸하면서 그 권력 아래 줄 선 자들을 욕하고 비꼬는 내용이 많다.
생애의 절반 이상을 설잠(雪岑)이란 법명의 승려로 살았으며 부여 무량사에서 입적했다. ※설잠(雪岑)-눈 덮인 산봉우리를 의미한다. 잠(岑)은 산봉우리를 뜻한다
불가(佛家)의 예법에 따라 다비(茶毘)를 하는 것이 옳으나 김시습은 매장해달라고 유언했다. 본명인 “시습(時習)”은 논어(論語)의 첫머리인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에서 따왔다고 하였다.
유튜브(YouTube)에서 불교인들이 마치 돈벌이하는 일반 유튜버(YouTuber)와 하등 다를바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김시습을 생각하며 이글을 쓴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