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누른다고 해서 잊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부인하여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본인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냥 불쑥 튀어나옵니다.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지낼 것입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있는 것이지요. 느닷없이 등장하는데 주로 폭력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 아닌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 됩니다. 혹 주변에 그 사람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처리하게 됩니다.
아니야, 괜찮아. 아무리 외쳐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괜찮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계속 출혈을 하고 있는데 입으로만 괜찮다고 뇌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혈을 해주지 않으면 피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나도 모르고 남도 모릅니다. 그래서 흔히 그냥 지나가지요. 그리고 가끔 영문도 모르게 사고가 발생합니다. 일단은 본인조차 왜 그러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특히 남성은 그것조차 자존심 상할까 드러내지 않습니다.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버팁니다. 애매한 사람이 고생할 수 있지요.
고향이지만 더 이상 머물거나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형은 뭣 때문에 거기 살고 있는 미성년자 조카를 자기에게 맡기고 간단 말인가? 죽은 사람 원망하기도 그렇고 한 마디로 죽을 맛입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습니다. 방법은 조카를 데리고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조카인 ‘패트릭’이 결사반대합니다. 하기야 자기 모든 삶의 조건이 거기에 있는데 어떻게 낯선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합니까? 학교를 옮긴다? 말은 쉽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보면 무인고도로 쫓겨나는 기분일 것입니다. 차라리 아무도 없다면 다시 시작한다,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어렵지요.
심장병을 가지고 있던 형을 가끔은 와서 도왔습니다. 어린 조카를 돌봐주었지요. 마땅히 형수가 지켜야 하는데 착한 남편에 비해서 처신이 좀 그렇습니다. 결국 헤어졌으니 형이 맡았고 형이 문제가 있으면 동생에게 구원을 청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며 잡역부로 일하고 있는 ‘리’는 때로 형에게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하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납니다. 문제는 변호사에게 맡긴 유언장입니다. 고등학생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수락하자니 그렇고 거절하자니 그렇고 고심합니다.
어느 추운 날 새벽 잠깐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오는 동안 집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아내는 목숨을 건졌지만 2층에서 자고 있던 세 아이가 다 불속에서 숨졌습니다. 멀거니 쳐다보며 지켜야 했고 결국 아이들의 주검을 보았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고의가 아닌 사고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누구를 정죄할 문제가 아니지요.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들고 놀았지요. 그것도 모자라 친구들 내보내고도 또 더 마시겠다고 그 늦은 밤 슈퍼마켓에 갔지요. 벽난로 제대로 간수도 하지 않고 나갔지요. 분명 아내로부터 온갖 폭언과 저주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도 곁을 떠났습니다.
형이 그렇게 아끼던 배를 조카인 ‘패트릭’이 기어코 물려받으려 합니다. 물론 ‘리’도 형과의 추억이 깃든 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낡고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누군가 옆에 지켜야 하고 때로 움직여야 합니다. 더구나 비싼 경비를 들여 엔진도 바꿔야 합니다. 이래저래 이제는 가지고 있어봐야 짐이지요. 그러나 ‘패트릭’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네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 말썽도 생깁니다. 조카와의 불협화음에 동네사람들과의 엇박자 등등 아무튼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떠나고 싶은데, 물러나고 싶은데 여의치 않지요. 그래도 어기적거리며 견딥니다. 삼촌 ‘리’의 아픔을 조카도 차츰 눈치 챕니다. 그래서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풀려갑니다.
형이 죽은 후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특히 형수도 재혼을 하였지만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리’의 전 아내도 우연히 길에서 만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리’에게 사과합니다. 사실 아픔은 홀로 진 것이 아니지요. 표현이 없었을 뿐 남편도 그만큼 아프고 힘들었으리라는 것을 이해해줍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리’는 친구의 집에서 드디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패트릭’을 위해서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을 찾아냅니다.
조그마한 어촌입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져 상처투성이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여 주는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도 인생이 쉽지 않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삶이라도 아주 아름답게 빚어질 수 있음을 보게 되지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한번 봐야겠네요.
예, 괜찮습니다. ^&^
좋은영화
감사 합니다.

거운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