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유강희
어떤 작가는 성당을 작업실로 썼다지만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긴 철제 사다리가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러나 결코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은 아님)
그리고 작은 창이 달려 있고
녹색 양철 지붕이 있는 집,
이 산불감시초소에서 한 계절을 나고 싶다
나는 매일매일을 뜬눈으로 지샐 것이며
밤에는 모르는 별의 문자를 해독하고
잠 못 드는 새의 울음소리를 채집하여
나의 자서전에 인용할 것이다
(그건 아직 먼 후의 일이지만)
그리고 나는 먼 구름을 애인으로 둔
늙은 바위로부터 겨우겨우 모은 전설을
바람의 피륙에 한 땀 한 땀 기록하리라
나는 또 사라진 짐승들의 발자국을 쫓아
하루종일 숲속을 헤맬 것이다
나의 관심은 그러나 그것들에 있지 않다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의 불타오르는 내면을
나의 열렬한 정부로 삼고 싶을 뿐,
멀리 도시의 불빛을 잠재우고
나는 홀로 외롭게 마음속 산적을 불러
그들과 함께 녹슨 칼을 푸른 숫돌에 갈며
절망이 타고 가는 말의 급소를 노릴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산불을 지르고 도망칠 것이다
비겁의 검은 숲을 모조리 불태울 것이다
아직 펄펄 숨쉬는 짐승들의 시간을 불러올 것이다
비명, 비명, 비명의 바윗돌을 구르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친 듯 길길이 산비탈을 뛰어내리며
결국 아무것도 태울 수 없는 빈산이 내 안에 있음을
숨죽여 몸서리칠 것이다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문학동네, 2018) 중에서
첫댓글 바람의 피륙.
감사합니다. ㅎㅎ
@별빛 잘 고르셨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