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22호
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을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발 한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 『슬픔이 나를 깨운다』(문학과지성사, 1990)
***
눈비 내리는 회색의 아침입니다.
주말에는 먼지 뒤집어 쓴 오래된 시집들을 꺼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문장들 몇 개를 꺼내 소리내어 읽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황인숙 시인의 34년 전 시집에서 한 편 골랐습니다.
- 슬픔이 나를 깨운다
그다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육십 년 가까이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일생이란 게 구할의 슬픔과 일할의 기쁨으로 살다 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한때는 일할의 기쁨으로 구할의 슬픔을 견디어내는 것이 삶이다, 라고 쓴 적도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일할의 기쁨이 구할의 슬픔을 견디어낼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슬픔을 그냥 일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자고, 슬픔과 친해지자고 말입니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함민복)는 문장처럼 말입니다.
황인숙의 시 「슬픔이 나를 깨운다」가 34년 전에는 슬펐는데
34년이 지난 지금은 슬프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제야 편안히 읽히는 까닭입니다.
오늘은 멀리 공주서 대하소설 『금강』을 쓴 김홍정 소설가가 춘천에 옵니다.
올해 김홍정 형의 장편소설을 내기로 했거든요.
허리 치료 때문에 과음은 못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소주 한잔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4. 2. 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좋은 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