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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신혼여행 일지 - (4)경주 도착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하자 신랑은 신이 나서 창 밖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회 십자가들에 놀란 것 같았다.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한국에는 정말 교회가 많은 것 같다.
한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 사는 곳엔 언제나 교회가 많다.
하와이에 사는 한인은 대략 3만 명 정도라고 추정이 되는데 전화번호부에
올라온 한인 교회의 숫자가 40개쯤 된다.
전화번호부에 오르지 않은 작은 교회들이나 미국 교회 건물만 빌려서
따로 한국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까지 계산하며 50개는 쉽게 넘을 것 같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만 명 인구라봐야 서울의 작은 동 하나 인구 밖에 안 될텐데....
오죽하면 미국에 이민 올 때 중국 사람들은 식당을 차리고
일본 사람들은 전기 제품을 만들고 한국 사람들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하와이가 그 정도이니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LA의 경우는 더 하다.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LA에 한인 교회가 천 개라고 들었다.
지금은 천 개가 훨씬 넘을 것이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이면 LA 경찰들이 속도 위반 티켓 띠러 한인타운
근처로 모인다고 한다.
예배에 늦은 한국 사람들이 하도 위반을 많이 한다나......
얘기가 옆으로 빠졌군.
어쨌든 신랑은 신나게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러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게 틈만 나면 잔다.
시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얼떨결에 잠이 들었는데 신랑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담배 연기 땜에 잠을 못 자겠다고 야단이다.
신랑은 개코다.
특히 담배 연기를 병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금방 반응을 보인다.
물론 담배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기차 안에서는 금연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옆 칸에서 사람이 들어오면서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기차 칸 사이의 공간에 남자들이 몰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랑은 의기양양하게 저것 보라고 야단이다.
아, 오늘도 즐거운 여행은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신랑이 얼마나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셔츠를 올려 코와 입을 막고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걸면 셔츠를 잠깐 내려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경주까지 오는 동안 신랑은 마치 범죄자처럼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인 채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어제 덕수궁에서 본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진짜 같았다. (-_-)
경주에 도착해서 호텔 셔틀 버스를 찾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아저씨들이 우르르 우리를 향해 돌진을 해온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이었다.
경주가 관광 도시이다 보니 역 앞에서 기다리다가 손님을 잡는
모양이었다.
셔틀 버스 탄다고 말해도 끈질기게 붙는 아저씨도 있었다.
계속 응수를 하다가는 한도 없을 것 같아서 버스를 찾아 막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묶는 호텔의 버스는 없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버스마다 차례로 물어보고 다닌 끝에 겨우 찾았다.
호텔 이름 좀 크게 써놓을 것이지....
버스에 타서 한숨 돌리는데 신랑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묻는다.
신랑: 아까 그 사람들은 뭐야?
니나: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
신랑: 근데 왜 자꾸 따라와?
니나: 관광지는 원래 그래. 손님 잡느라고....
신랑: 싫다고 그래도 그렇게 따라와?
니나: 그런 사람 있으며 대답하지 말고 그냥 도망가는 거야, 알았지?
신랑: 오케이!
호텔에 도착하자 신랑은 기분이 좋아진 듯 하다.
익숙한 방 구조에 맘이 들었는지 침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어보기도 한다.
물론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뛰었다.
안 그랬다간 천장에 구멍 뚫린다.
호텔 앞 호숫가를 산책해서 물래 방아까지 가기로 했다.
가다가 보니 커다랗게 기와 담장이 둘러쳐진 상가가 나왔다.
새로 지은 민속촌 쯤 되나보다 하고 들어섰더니 웬걸, 마당을 뺑
둘러싸고 모두 가게와 식당들이다.
평일이고 추운 날씨라 마당을 지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가게와
식당들도 모두 문이 닫혀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고적한 분위기를 내며 둘이 상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난다.
옆을 돌아보니 식당 문이 옆으로 요란하게 열리면서 웬 아줌마가
튀어나온다.
쓸쓸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신랑과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넘어질 뻔했다.
아줌마: 손님, 식사하고 가세요!!!
니나: 아, 저기......
그때 갑자기 신랑이 나를 잡아끌고 뛰기 시작한다.
셔틀 버스에서 도망가자고 얘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가게들을 지나치는데 문 닫은 줄 알았던 가게들은 우리가
막 뛰어지나갈 때마다 차례로 문이 열리며 사람 얼굴이 튀어나온다.
뛰고 있어서 그런지 튀어나오는 얼굴들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어떤 아줌마는 가게 밖으로 나와 마당까지 우리를 쫓아오기도 했다.
마리오가 되어 오락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_-)
한 달음에 달려서 상가 밖으로 나왔다.
신랑은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점점 더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보고 "아프로?" (아프리카 사람을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가 온다, 하며 떨었다.
니나: 아프로라고 하지마.... 아줌마야.... 결혼한 여자란 뜻이야
신랑: 아줘마?
니나: 그래
신랑: 그럼 너도 아줘마야? 결혼했으니까?
니나: 음.... 결혼했다고 다 그런 건 아니....
신랑: 아줘마구나? 아줘마다!!!!! 아줘마, 아줘마...
그 후로 신랑이 내게 놀릴 때마다 써먹던 숏다리 라는 말에
아줘마라는 말도 더해졌다.
물래 방아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근처에 있는 "반용" 이라는 찻집에
들어갔다.
경주에 오기 전에 이수미라는 분이 만든 경주 관광 홈피에서 추천한
찻집이었다.
(경주에 가실 일 있으면 이분 홈피에 들러보세요. 아주 괜찮거든요.
http://wwwk.dongguk.ac.kr/~leesm/who/frame1.htm)
신랑은 별로 내키지 않는 척 하더니 할 수 없이 따라온다.
신랑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차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무지하게 짠돌이기 때문에 찻값에 돈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쓰다보니 우리 신랑이 참 별종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커피나 차도 안 마시다니....
소다도 다이어트만 마신다.
어쨌든 별로 생각 없다구 괜히 비실대며 따라 들어오더니 문을 열자
마자 우와~ 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국처럼 인테리어에 목숨 거는 찻집이 거의 없는 미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듣는 바로는 주인이 미술가라든가.
신랑은 춥다고 해서 유자차를 시켜주고 나는 파르페를 시켰다.
신랑은 파르페를 보더니 또다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장식이 너무 거창해서 놀랐나보다.
꼭대기에는 조그만 미키 마우스 종이 인형까지 꽂혀있어서 더욱
반가와 하는 것 같더니 결국 뽑아서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왔다. (-_-)
그냥 참자고 하는데 기어코 사진도 찍겠단다.
신랑이나 빨리 한 장 찍어주고 말려는데 뒤 배경이 좋아야 한다며
홀 중앙에 설 테니 찍어달랜다.
한국에 온 이후로 얼굴 들고 다니기가 힘들다. (-_-)
그래도 다른 손님이 별로 없어서 후다닥 한 장 찍어주었다.
그랬더니 둘이 같이 찍은 것도 있어야 한다며 웨이터에게 부탁을
하라고 야단이다.
할 수 없이 부탁했더니 웨이터가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라고
알려주었다.
사진 찍기가 싫었는데 괜히 그 말을 듣고 보니 신랑이 실망할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열불이 났다. 웨이터를 잡고 늘어졌다.
니나: 한 장만 찍어줘요, 네?
웨이터: 저기 쳐다보고 계신 분이 주인이시라서....
니나: 이 찻집 방송에도 나왔다면서요
웨이터: 저기 저 분이 주인이신데.... 저는 여기 아르바이트 생이구요
니나: 미국 가서 자랑하려구....
웨이터: 저기 저 분이 주인.....
니나: 알았어요, 알았어! 사진 한 장 찍는 거 가지구...
신랑: It's ok.... Calm down....
신랑이 내 팔을 잡고 만류하자 웨이터는 미국 사람은 알아듣고
오히려 점잖게 있는데 이 여자는 왜이래, 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난 원래 사진 찍지 말자고 그러고 있었는데....
서둘러서 찻집을 나왔다.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와서 샤워를 하려고 가방을 뒤지는데 속옷
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이럴수가.... 신랑 속옷도 같이 넣어놨는데 보이질 않는다.
니나: 속옷 가방 없어. 빼먹었나봐.
신랑: 뭐?
니나: 어떡하지?
신랑: 야한 잠옷도 두고 왔어?
니나: 앗! 그럴 수가....
서둘러서 짐을 뒤져보니 야한 속옷은 귀중품 가방 안에 잘 들어
있었다..... -_-
속옷을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2박 3일 동안 우리는 밤마다
속옷을 빨아서 널어놓고 아침에 대충 마르면 입고 다녀야 했다.
신혼 여행의 환상이 왜 자꾸 깨지나.....
[니나] 신혼 여행 일지 - (5) 경주 둘쨋날
오늘은 대망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는 날이다.
애초에 신랑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자랑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주를
신혼여행지로 정했었고 그 동안 갖은 사진과 엽서, 팜플렛 등을 이용해
예습까지 시켰다.
신랑도 불국사와 석굴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호텔 1층의 식당으로 갔다.
호텔 투숙객에게는 공짜 아침 식사가 나와서 짠돌이 신랑이 기쁨을 감추지
못할 줄 알았는데 표정이 별로다.
어제 저녁에 같은 식당에서 뷔페를 사먹었는데 가격만 비싸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짜가 어디냐고 내려가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신랑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어떻게 된 호텔이 공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냐고 하면서 무지하게
먹어댔다.
한국에 온 이후 신랑은 이렇게 오락가락 한다.
대한 항공 기내식이 최고인 줄 알았다가 두 번째로 나온 기내식을 먹고는
최악이라고 했던 것을 비롯해서 피자헛에 갔다가는 한국 사람들 정말
피자 못 만든다고 투정하더니 미스터 피자에 가서는 맛있다고 한 판을
다 먹고....
아직까지도 신랑은 한국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우선은 오락가락한 나라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국사에 도착했더니 과연 신랑이 감탄을 한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여행을 왔었던 나로서는 불국사가 이번이 네
번째인데 역시 신랑과 오니까 기분이 틀리다.
신랑은 불국사에 있는 수많은 방을 하나 하나씩 다 들여다 보고 사진도
엄청 찍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나올 때까지 불국사 뒤 쪽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종이도 토씨 하나 안 빼고 다 읽었다.
세 시간이 넘게 불국사를 돌아다녔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어보니까 불국사 답사는 한시간 반으로 되어
있던데 그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밖으로 나와서 석굴암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 석굴암 주차장에서 내렸더니
이슬비가 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겨울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고 있던 우리는 그 비를 꼼짝없이
맞으며 덜덜 떨었다.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 올라가는 오솔길은 그래도 운치가 있었다.
이슬비 때문에 안개가 자욱한 게 멋있었던지 신랑은 안개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막상 석굴암에 도착한 신랑의 표정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팜플렛을 보면서 사실 불국사보다 석굴암을 더 기대하고 있었는데 유리
칸막이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고 한마디로 썰렁함의 극치라는 것이었다.
이게 뭐냐고 찡찡대면서 짠돌이답게 입장료가 불국사랑 같다니 순 사기라고
야단이다.
불국사의 감동이 스러지면서 신랑은 다시 한번 한국의 문화 유산에
대해서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다시 나오니 버스가 오려면 20분쯤 기다려야 하는데 비는
계속 내린다.
젖은 스웨터는 춥고 무겁고.....
가지도 별로 없는 빈약한 나무 아래에 둘이 서서 떨고 있었다.
갑자기 웬 아줌마가 우리 쪽으로 뛰어온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뽀글뽀글 아줌마 머리를 찾아내는 신랑은 단번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뜻밖에도 아줌마는 우리에게 우산을 씌워주려고 오고 계셨다.
아줌마: 아니고 세상에.... 다 젖었네, 불쌍해라
그러면서 가지고 온 우산을 우리에게 씌워주시고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것이었다.
막 감동이 되면서 또 막 자랑스럽기도 했다.
(거봐라, 한국 사람 마음씨가 얼마나 좋은데...... ^^)
기다리는 김에 아줌마한테 어느 식당이 맛있냐고 물어봤더니 아줌마가
아는 곳을 추천해 주셨다.
사실 지나갈 때마다 사람이 뛰쳐나와서 붙잡는 식당은 들어가기가
무서웠던 것이다.
버스가 오자 아줌마도 우리와 함께 뛰었다.
니나: 고맙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아줌마: 이 우산 가져가라
니나: 아줌마는 어떡해요?
아줌마: 괜찮아, 나는 요기서 일하고 나중에 또 데리러 오는 사람도 있고
니나: 아, 그래도..... 아줌마 비 맞으시고 가시면...
아줌마: 괜찮아, 괜찮아. 가져가라
아줌마가 억지로 버스에 우산을 밀어주고는 가버리셨다.
신랑은 어떨떨한 표정이다.
아프리카 머리의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천사로 보이나부다.
다시 한번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줌마가 가르쳐 준 식당으로 갔다.
조금만 상가 안이었는데 조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상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역시나 문들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열리고 사람들이 막 튀어나와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가르쳐준 식당은 간판도 작아서 잘 안 보이는데 튀어나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겨우 구석에 밖힌 집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 식당에 딸린 방에서 화투들을 치고 계셨다. -_-
뭐이래, 하고 나오려는데 순식간에, (정말로 놀라운 속도였다) 화다닥
방을 치우더니 식당은 춥다고 한사코 그 방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가자 신랑은 눈이 풀리면서 늘어졌다.
양말을 벗어 아랫목에 말리고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메뉴가 나왔는데 몽땅 5천원이다.
신랑은 역시나 젤 좋아하는 비빔밥을 시키고 나는 추워서 된장 찌개를
시켰더니 아줌마가 찌개는 그냥 끓여 줄 테니까 둘 다 비빔밥 먹으라고
하신다.
배고프고 추워서 그랬는지 여태 먹어본 식사 중 최고였다.
신랑은 거의 찌개를 마시다 시피 했다.
밥을 먹고 나서 내가 만원을 놓자 신랑은 깜짝 놀랐다.
이 많은 반찬에다가 찌개도 먹었는데 겨우 미국 돈으로 9달러?
찌개는 그냥 끓여주셨다니까 짠돌이의 눈에 다시 감동이 서렸다.
우산 아줌마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중에 미국에 돌아와서 신랑에게 한국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뭐냐고
물었다.
불국사라고 그럴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물건 살 때 세금 안 내는 것과
식당이랑 택시에서 팁 안줘도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지독한 인간이다)
점심을 먹은 뒤 통일전에 들렀다.
김유신 장군의 업적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
벽의 한 쪽 끝에서부터 걸어가면서 읽게 되어있었다.
나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별 생각 없이 그냥 걷고 있는데 신랑은
스토리를 읽어보더니 이해하지 못한다.
신랑: 이거 이상해.... 왜 세 나라가 싸워?
니나: 서로 영토 넓히려구 싸우겠지 뭐....
신랑: 이제는 한 나라인데도 싸워?
니나: 뭔 소리여? 통일이 안 됐으니까 세 나라지....
신랑: 이상하다.....
영어로 쓰여진 내용이 문법상 틀린 점이 많은가, 하고 읽어보았더니
우리가 그림의 끝부분부터 거꾸로 돌고 있었다. -_-
신라 역사 박물관에 갔다.
앗, 박물관에 도착하니 아줌마들 보다 더 무서운 패거리들이 와 있었다.
바로 수학 여행 온 여학생들이었다.
예감이 불길했다.
신랑은 석굴암 모형 전시실에서 아까의 실망을 되살려 보기 위해
진지하게 석굴암의 구조를 검토하고 있었다.
팜플렛의 화려한 예찬에 비해 너무 썰렁했던 석굴암이 믿어지지 않았던
가 보다.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여학생들은 (나도 예전에 그랬지만) 코스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들어왔는지 구경은 제대로 안 하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신랑은 보더니 소리쳤다.
여학생 1: 어, 멋쟁이!!!!
여학생 2: 뭐라구?
여학생 1: 저기봐! 얘들아, 멋쟁이다
나머지 여학생들: 꺄아아아아 ~
나도 저 시절엔 세상에 무서운 것도 쪽팔린 것도 없었다.
여학생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학생 1 : Oh, ye!!!! Hello, handsome!!!
발음이 엉망이다.
신랑은 자기한테 하는 소린지도 모르고 석굴암 모형만 보고 있다.
여학생 2 : Hello, hello, oh ye~
신랑, 여전히 모르고 있다.
나도 덩달아 못 들은 척 석굴암 모형을 노려보았다.
아~ 이곳에서 다시 한국인의 이미지가.... 하는 생각이 들며 식은땀이
흘렀다.
여학생 1 : English, oh ye~
근데 이것들이 발음도 엉망인데 말끝마다 오,예~ 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신랑이 낌새가 이상했는지 여학생들을 돌아본다.
여학생들: 끼아아아아아 ~
신랑은 혼비백산한 표정이 되었다.
여학생 3: You, very handsome~ Oh~ ye!!!!
신랑: ......hhh Hi.....
여학생들: 끼아아아아아아~
신랑이 석굴암 모형 옆 구석에 서 있는 동안 단체 관람 온 여학생들은
지나가면서 차례로 손을 흔들었다.
신랑도 구석에 박혀서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가끔씩 여학생들이 저 꾀죄죄한 여자는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나도 같이 째려 주었다.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영어를 마구 지껄이기도 했다.
신랑이 박물관에서는 조용히 하는 거라며 내 입을 막았다. (-_-)
박물관을 나와서 신랑에게 말했다.
니나: 저 나이 때는 원래 저래, 이해해....
신랑: 뭘 이해해?
니나: 소리 지르고 그러는 거.... 무서워 하지마.... 좋아서 그러는 거야....
신랑: 안 무서워...... 나 잘생겼다구 그러는 거지?
내가 무섭게 째려보는데도 신랑은 흐뭇한 표정이다.
아줌마들은 무서워하면서 젊은 처자들은 좋다 이거지....
나보군 박물관에서 떠든다고 그러더니 소리 지르는 것들한테는 손
흔들어주고 말이야....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돌아왔더니 둘다 지쳐 쓰러졌다.
몸도 으슬으슬 추웠다.
그래도 신랑은 흐뭇한 표정이다.
니나: 애들한테 인기 많아서 좋아?
신랑: 아니, 이 우산 땜에 기분이 좋아.
그 후로도 신랑은 한국을 돌아다니며 매너 없는 아줌마들 땜에
여러 번 기분이 상했었다.
아줌마의 본색에 대해서 경주에서 잠깐 오락가락 한 걸 빼면 대부분은
두려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신랑은 첨 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아줌마 땜에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누가 신혼 여행 이야기를 하면 경주에서 가져온 우산부터
보여준다.
불국사나 석굴암보다 더 좋은 걸 보여주신 아줌마, 고맙습니다. ^^
[니나]신혼 여행 일지 - (6)자전거로 경주 돌기
경주에 오기 전 관광일지를 짜느라고 경주에 관한 사이트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전거 코스가 아주 환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전거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근데 신랑의 예기치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신랑: 난 문무 보고 싶어.
니나: 그게 뭔데?
신랑: This guy.
신랑이 가리킨 것은 팜플렛에 나와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이었다.
니나: 거기 못가. 시간 없어
신랑: 왜?
니나: 거긴 차타고 한시간 넘어서 바닷가까지 가야 한단 말야
신랑: But I like Moon Moo
자기가 언제 문무대왕을 봤다고 무지 친한 척 한다.
니나: 가 봤자 수중릉에 들어가지도 못해.
신랑: 왜?
니나: 멀리서 그냥 바다 한번 보고 오는 거랑 마찬가지란 말야
신랑: I like Moon Moo.....
으이구, 이 애기를 언제 키워서 데리구 사나....
전 세계에 하나 뿐인 수중릉이라고 거창하게 팜플렛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 안 가보고 싶을리가 없었다.
어쨌든 거긴 너무 멀어서 안된다고 했더니 신랑은 금방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하도 실망을 한 거 같아서 대신 다른 거 꼭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보라니까 신랑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며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사진을 가리킨다.
신랑: This guy!!!!! He's cool!!!!
김유신 장군의 동상과 묘였다.
신랑은 어제 통일전에서 김유신 장군의 업적에 대해 배운 뒤로
무척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자전거 코스는 천마총, 첨성대, 안압지 부근이었고 김유신 장군 동상은
코스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서 다시 장군묘는 왔던 길을 거쳐서 몇 정거장을 더 내려가야 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택시비 아낄려고 수중릉을 포기했는데 이젠 자전거 타고 경주 일주를
하게 생겼다.
사실 동상이야 한국 어딜 가나 있는 것 아닌가.
김유신 장군 동상이 몇 천년 된 유물도 아닌데 굳이 거길 가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다.
문무왕 수중릉을 양보했기 때문에 김유신 장군 만은 양보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우선 동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경주역에 짐을 맡기고 근처에서 두 사람이 패달을 밟는 자전거를 빌렸다.
죽어라고 패달을 밟으며 가는데 어떻게 된 게 가도가도 나오질 않는다.
길 가면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그때마다 대답은 이 길로
쭉 계속 가라는 것이었다.
오늘따라 날씨는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얼굴은 얼얼하고 귀가 멍했다.
겨우 동상에 도착하니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나오자 이번에 김유신 장군묘.....
지도를 보니 경주역에서 여기까지 온 거리를 지나 한참을 더 내려
가야 했다.
지도를 보자 눈 앞이 아찔하면서 무릎이 꺽였다.
신랑은 그래도 고집을 꺽지 않는다.
김유신 장군이 땅 속에서 감동하실 것 같았다.
이렇게도 장군을 존경하고 추종하는 관광객을 언제 또 보겠는가.
할 수 없이 자전거에 올라탔지만 패달은 대충 밟는 척만 하면서 신랑
등에 매달려 있었다.
매달려 있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찬바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입이 얼어서 말도 하기 힘들었다.
김유신 장군묘 가는 길에도 중간에 여러 번 내려서 물어봐야 했다.
아무리 가도 나와야 말이지.
사람들 말이 역시 이 길로 쭉 계속 가란다. -_-
겨우 표지판을 발견했다.
악! 표지판에서부터 무덤까지는 오르막길이다.
아찔해서 말도 안 나오는데 신랑의 얼굴은 오히려 기대에 부풀어
있는 듯 하다.
도저히 더는 못 가겠다고 주저 앉았다.
신랑이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_-
신랑은 김유신 장군묘에 새겨진 12지인상에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자기는 용띠라고 무덤에 새겨진 용 조각에 바짝 붙어서서 사진도 찍었다.
확실히 외국인의 감상은 한국인과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 사람 중에 누가 자기 용띠라고 그런 사진을 찍겠는가 말이다.
장군묘에서 천마총, 계림 등이 있는 시내 쪽으로 다시 갔다.
입이 얼어서 말도 안 나오는데 팔다리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무작정
떨리고 있었다.
천마총에 다다르니 우리처럼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눈에 뜨인다.
다들 재밌어 보인다.
우리 처럼 비틀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막상 유명한 유적들은 여기 다 모여 있었지만 자전거 타느라 지쳐서
관광이고 뭐고 모든 게 귀찮기만 하고 배도 무지 고팠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기차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고 그전에 첨성대랑 안압지는 꼭 봐야
할 것 같아서 가까운 곳으로 들어갔다.
아, 관광지 식당 중에 그런 곳도 있다니...
서비스 정말 엉망이었다.
들어가니 손님은 우리 뿐이다.
물과 수저를 가져다 주는데 어떻게 된 게 물은 한 컵만 가져오고
신랑은 숟가락, 나는 젓가락만 준다.
니나: 아줌마, 물하고 숟가락, 젓가락 더 필요한데요
아줌마: 네, 갑니다
아줌마는 물을 갖다 주더니 주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니나: 아줌마, 숟가락 젓가락이요....
아줌마: 네,네
대답만 하고는 나타날 줄을 모른다.
니나: 아줌마
아줌마: 왜요? (-_-)
니나: 숟가락, 젓가락......
아줌마: 아, 참!
숟가락을 놓더니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니나: (미치겠네.....) 젓가락 주세여!!!
아줌마:........
니나: 아줌마!
아줌마: 왜요? (-_-)
니나: 젓가락 주세요.... -_-
손님이 우리뿐인데도 이런 식이다.
음식을 시킨 지 한참이 됐는데 젓가락도 안 갖다 주다니....
신랑이 그냥 나가자고 한다.
하지만 어디 가서 또 식당을 찾으란 말인가, 시간도 없는데.....
겨우 음식이 나왔다.
맛 정말 없다.
신랑 얼굴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식탁을 엎어 버리려는 것 같았다.
어제 추위에 떨다 들어간 식당에서 받은 좋은 이미지가 다시
구겨지면서 신랑은 오락가락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치는 또 왜 이렇게 큰 거야.....
배춧잎 사이즈 그대로 나와서 먹을 수가 없다.
니나: 아줌마, 여기 김치 좀 잘라 주세요
아줌마: 알았어요
대답만 하고 10분이 넘어도 나타나질 않는다.
니나: 아줌마, 김치요...
아줌마: 이거 어쩌나, 가위가 없는데
니나: 식당에 가위가 없어요? (-_-)
아줌마: 가위보다 더 좋은 거 있어요
그러더니 김치를 손으로 잡고 쭉쭉 찢기 시작한다.
신랑의 눈이 황소눈이 되었다.
아줌마가 열심히 김치를 찢어놓고 사라지자 신랑이 더는 못
먹겠다며 나가자고 야단이다.
난 아직 배고픈데....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분명히 만 2천원어치 먹었는데 만 7천원이라고 적혀있다
니나: 아줌마, 계산 잘못 됐는데요
아줌마: 아이구, 미안해요
계산서를 가지고 가더니 소식이 없다.
니나: 아줌마, 계산서.....
이 식당은 뭐든지 두 번 이상 물어봐야 해주나 보다.
계산서 고쳐서 겨우 돈 내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식당에서만 한 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아직도 배가
고팠다.......
(식당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천마총 들어가는 입구에 있으니까
그 주변에서 식사 하시려면 잘 알아보세요. 절대로 갈 곳이 못 돼더군요)
자전거를 미친 듯이 밟아서 후다닥 첨성대, 안압지, 경주 박물관을
돌고 경주 명물이라는 황남빵도 샀다.
죽어라고 패달을 밟자 기차 시간 20분 전에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광을 했는지 노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팔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건 물론 바람에 날린 머리도 산발이다.
앞에 앉아서 바람을 다 맞고 간 신랑은 눈까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쳐서 말하기도 귀찮았다.
절대로 남들이 생각 못하는 곳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신랑인지라
갑자기 자전거 탄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한다.
대학 4년 내내 자전거로 통학하던 인간이 새삼 무슨 자전거 기념
사진이라는 건지.
경주역 주차장에서 중학생에게 카메라를 건내주고 우리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니나: 카메라에서 돌아가는 소리 날 때까지 누르면 돼요
주차장을 한바퀴 돌고 왔다
니나: 찍혔어요? 고맙습니다.
학생: 돌아가는 소리 안 나던데요....
니나: 어, 그럼 안 찍힌 건데... 다시 한번 부탁해요....
주차장을 한바퀴 더 돌았다.
니나: 됐어요?
학생: 아니요.... (-_-)
니나: 한바퀴 더 돌고 올께요.....
이 중학생이 촌놈 중에 상촌놈인지 도데체 사진을 못 찍나부다.....
내 카메라는 좀 오래 눌러야 찍힌다고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안 돌아간단다....
찍힐 때까지 자전거 타고 주차장을 미친 듯이 계속 돌아야 했다 (-_-)
다리가 쑤셔서 이젠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니나: 우리 기차 타야 해요... 헉헉....
학생: (이젠 거의 울상이다) 안 돌아가요..... 어떡해요.....
니나: (미치겠다) 헉헉.... 할 수 없죠.... 기차....헉헉, 에구 힘들어
신랑도 지쳐서 표정이 말이 아니다.
결국 사진 찍는 건 포기하고 카메라를 다시 받아서 기차를 탔다.
정말 오늘 자전거 원 없이 탔다.....
기차에 타서 카메라가 고장이 났나 하고 자세히 보니.... 이런,
필름이 다 돌아가 있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그걸 모르고 여태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았단 말인가.
신랑에게 말해 주려고 옆을 보니 신랑은 그새 잠이 들어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흔들어도 마냥 잔다.
서울에 도착하자 밤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신랑과 서로 부축하며 겨우겨우 걸어나왔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우리의 초췌한 몰골을 보더니 끝내주는 (?)
신혼의 밤을 보내고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_-
나중에 미국에 와서 사진을 현상해 보니 경주역 앞에서 자전거
타는 사진만 11장이 나왔다. (-_-)
필름이 없어서 안 돌아간 게 아니구 그 중학생이 필름 다 쓸 때까지
찍어놓고도 자기가 찍은 줄 모르고 있었던 거다.
어린 녀석이 가는 귀를 먹었었나....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도 못 듣다니....
덕분에 우린 자전거 죽어라고 타고 필름 11장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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